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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괴물’ 은 머리로 던진다

중앙일보 2018.10.01 00:02 경제 6면 지면보기
부상에서 회복한 류현진이 LA 다저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29일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류현진. 다저스는 30일에도 승리해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부상에서 회복한 류현진이 LA 다저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29일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류현진. 다저스는 30일에도 승리해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류현진(31·LA 다저스)은 머리가 좋다. 팀 동료인 클레이턴 커쇼가 "자다 일어나도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안다”고 말할 정도로 운동 신경이 뛰어나지만, 야구 지능도 발군이다. 구종이 다양한 변신의 귀재다.
 
지난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AT&T파크. LA 다저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승부처에서 류현진이 등판했다. 샌프란시스코 선발 투수는 메이저리그(MLB) 특급 매디슨 범가너였다. 1번 타자는 류현진의 천적 헌터 펜스(상대 타율 0.419)였다. 류현진은 초구로 빠른 공을 선택했다. 시속 140㎞가 찍혔다. 예상보다 느린 속도. 다저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이날 류현진은 24일 샌디에이고전 이후 불과 나흘 만에 등판했다. AT&T파크는 꽤 쌀쌀했고, 바닷바람도 세찼다. 정민철 해설위원은 “초구를 던진 뒤 류현진이 ‘오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전략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1회 투구 수 13개 중 직구는 3개뿐이었다.
 
류현진은 6이닝 동안 안타 4개, 볼넷 2개만 내주며 1실점으로 막았다. 정 위원은 “류현진은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고 느낀 뒤 철저하게 장타를 피하는 공 배합을 했다. 몸쪽 승부를 줄였고, 하이패스트볼을 거의 던지지 않았다. 바깥쪽으로 낮게 던지는데 집중했다”고 분석했다. 류현진은 2회 닉 헌들리에게 컷패스트볼을 던지다 솔로홈런을 맞았지만 3회 이후 안정감을 되찾았다. 이닝이 거듭될수록 류현진의 빠른 공 위력도 살아났다. 단 한 경기 동안 그의 피칭패턴이 서너 번쯤 바뀌었다.
 
류현진 구종 변화

류현진 구종 변화

 
이날 다저스는 3-1로 역전승했다. 류현진은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7승(3패)째를 따내며 평균자책점을 1.97까지 낮췄다. MLB에서 규정이닝을 채우고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뉴욕 메츠의 제이컵 디그롬(1.70)과 탬파베이의 블레이크스넬(1.89)뿐이다. 올 시즌 류현진은 사타구니 부상 탓에 규정이닝의 절반(82와3분의1이닝)만 던졌지만, 투구 내용은 MLB 톱클래스였다. 동료 저스틴 터너는 “부상으로 쉬지 않았다면 류현진은 (리그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 후보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라도, 구속이 잘 나오지 않는 날에도, 특정 변화구가 잘 듣지 않아도 류현진은 안정적이다. 대량 실점을 하거나 연패에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정 위원은 “핵심은 변환 능력이다. 류현진의 직구·커브·체인지업·슬라이더(또는 컷패스트볼) 등 4가지 구종 모두 수준급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여러 무기를 바꿔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류현진이 ①경기 전 불펜에서 몸을 풀 때 ②1회 피칭을 시작하면서 ③상대가 피칭패턴을 읽었다고 느낄 때 매뉴얼을 바꾼다고 했다. 1년 전 류현진, 한 달 전 만났던 류현진, 앞선 타석에서 상대했던 류현진이 다르다는 것이다. 타자 입장에서 류현진은 ‘요물(妖物)’이다.
 
2013년 MLB에 진출한 류현진은 직구·체인지업에 의존하는 투 피치 투수였다. 두 구종의 위력과 정확성으로 2년 동안 28승을 거뒀다. 한화 시절 괴물(怪物)로 불렸던 그 모습이었다. 그러나 왼 어깨 부상으로 인해 류현진의 직구 평균 구속(2014년 147.3㎞→2017년 145.8㎞)이 조금 떨어졌다. 그러자 직구 비중(2013년 54.4%→2018년 31.6%)을 줄였다. 대신 커브를 더 많이 던졌고, 고속 슬라이더와 컷패스트볼을 장착했다. 스피드 완급 조절에 구종 다양성까지 갖춘 입체적 투수로 거듭난 것이다.
 
‘괴물’을 ‘요물’로 만든 건 탁월한 학습 능력이다. 손재주가 워낙 좋은 류현진은 변화구를 빠르게 익힌다. 변주곡을 연주하듯 각도와 속도를 현란하게 조절한다. 균형 잡힌 투구폼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커브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는 공을 뿌리는 지점(릴리스 포인트)이 대체로 높다. 고(故) 최동원·정민철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공을 잘 던졌던 커브볼러였다. 슬라이더를 잘 던지는 투수들은 공을 최대한 앞으로 끌고 나온다. 김시진·선동열이 옆으로 휘는 슬라이더를 잘 구사했다. 종(縱)과 횡(橫)의 움직임이 잘 조합된 류현진의 폼에서는 커브와 슬라이더가 모두 자유자재로 발사된다. 정 위원은 “손에 완전히 익지 않은 공이라도 류현진은 실전에서 던지며 만들어 가는 용기를 가졌다. 또한 파워히터를 상대로 느린 커브를 던져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다. 이건 정말 대단한 용기”라고 덧붙였다.
 
류현진 덕분에 ‘빅게임’을 잡은 다저스는 30일에도 샌프란시스코를 10-6으로 꺾었다. 이날 콜로라도가 패배하면서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1일 시즌 최종전 결과에 따라 1위는 디비전시리즈로 직행하고, 2위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간다. 다저스와 콜로라도가 나란히 이기거나 지면 두 팀은 순위결정전(1경기)을 치른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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