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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문 나서니 ‘신용 유의자’ 딱지가 붙었다

중앙선데이 2018.09.29 00:48 603호 1면 지면보기
회사원 문모(27·여)씨는 올해부터 학자금대출 2000만원을 갚아야 한다. 수도권 소재 대학을 다니면서 받은 학자금대출은 농어촌출신 학자금 융자 1600만원, 취업 후 상환 학자금(ICL) 400만원 등이다. 농어촌출신 융자금은 졸업 후 2년이 되면, 취업후상환 학자금은 대출상환기준소득(2018년의 경우 연봉 2013만원) 이상 봉급을 받으면 의무 상환 대상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두 가지가 한꺼번에 몰려 왔다.
 

덫이 되는 학자금 대출 연체
광주·대전·제주 지역서 졸업한 뒤
취업 못한 경우 연체 확률 높아
“양질의 일자리 부족하기 때문”
거치기간 짧으면 재학 중에도 고통

문씨는 “월급이 200만원 초반대인데 올해 상환해야 할 금액이 매달 50만원 정도”라며 “자취비 등 생활비를 빼고 나면 갚을 여력이 없어 연체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문씨처럼 학자금대출을 제때 상환하지 못한 연체자는 2016년 현재 7만9000여 명. 연체자 한 사람당 연체금은 평균 488만원 정도다. 졸업 후 취업에 도달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학자금대출 가운데 일반상환 학자금대출이나 농어촌 대출을 받았다가 갚지 못한 연체자는 최악의 경우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신용유의자란 딱지가 붙는다.
 
한국장학재단은 지난 8월 한국장학패널을 대상으로 ‘의사결정나무 분석(Decision Tree Analysis)’을 통해 학자금 연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해 ‘학자금대출 연체 특성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의사결정나무 분석이란 학자금 연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줄기와 가지로 나누고 확률로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 2년제 또는 3년제 전문대 졸업자가 4년제 대학 졸업자보다 연체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후 첫 번째 직장의 월급 수준이 연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전문대 이공계열을 나온 윤모(29)씨가 대학 재학 중 빌린 일반상환 학자금대출 총액은 1500여만원. 중소기업에 입사해 받는 월급이 180만원 정도였다. 윤씨는 “거치기간(3년)이 지난 뒤 지금 월급으로는 원리금을 상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지역의 대학을 다니고 졸업했는지도 연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소재지가 광주·대전·제주이며, 현재 대학원을 다니지 않고 미취업 상태라면 연체 확률이 높게 나왔다. 같은 조건이라도 취업 상태인 경우엔 연체 확률이 70%였다. 첫 번째 직장의 월급 수준이나 출신 대학 등은 구조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장학재단 정홍주 장학정책연구소장은 “특정 지역에서 연체 경험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해당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공도 학자금대출 연체와 관련성이 많았다. 학부를 기준으로 인문·사회계열 전공자에 비해 예체능계열 전공자의 연체 확률이 높았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학자금 대출 연체자 중 예체능계열은 1만5036명(19%)이다.  
 
인원으로 따지면 사회계열(1만8633명)이나 공학계열(1만6412명)보다 적지만 이들의 연체금액은 총 873억원으로 계열 중에서 가장 많다. 이는 예체능계열을 졸업해 취업이 잘 안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교육부의 2016년 대졸자 계열별 취업률 통계에서 예체능계열(62.5%)은 인문계열(57.5%)보다 높지만 취업 후 12개월간 유지취업률은 최하위다. 첫 번째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예체능계열에서 취업률이 가장 낮아 40%대를 나타낸 기악과 성악은 취업에 성공하고도 12개월간 유지취업률이 각각 46.6%와 48.8%였다. 졸업자의 절반 이하가 취업하고 그중 다시 절반은 12개월 안에 그만둔다는 것이다. 
 
지출(교재비·대출상환금·교통비·사교육비·주거비) 패턴도 연체율에 영향을 미쳤다. 매달 지출하는 지출금액의 조달 방법이 부모 또는 가족에 의존할 경우 연체 확률이 100%였다. 같은 조건이라도 부모 또는 가족의 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 연체하지 않을 확률이 81%로 나온다. 의존적인 태도가 연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체자는 대학 재학생 중에서도 나온다. 학자금대출 중에서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은 거치기간 이후에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돼 있는데 거치기간을 짧게 설정하는 바람에 연체자가 되기도 한다.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에 다니다 휴학 중인 이모(26)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2년째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대출한 금액은 1400만원. 이씨는 “공시에 합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학자금대출이 더 괴롭다. 지난달엔 학자금 대출이 장기간 연체돼 신용유의자로 등재될 수 있다는 문자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씨의 대출 조건은 이자가 2.2%. 거치기간을 3년 이내로 잡는 바람에 현재 6회나 밀렸다고 한다. 그는 “시험에 붙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갚기 어렵다”고 말했다.
 
ICL이나 농어촌출신 학자금 대출은 졸업 후 갚도록 돼 있어 이런 문제는 없다. 다만 취업이 안 되거나 취업의 질이 좋지 않으면 향후 연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정 소장은 “출신 대학 유형이나 졸업생의 첫 번째 일자리 평균 수준은 연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조적 격차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금 대출
대학과 대학원 신입생과 재학생의 학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제도. 등록금(입학금·수업료)과 생활비(숙식비·교재구입비·교통비) 대출을 포함한다. 현행 학자금 대출은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소득금액이 대출상환 기준 소득을 넘어서면 의무적으로 일정 금액을 상환), 일반 상환 학자금 대출(거치기간 동안 이자를 납부한 뒤 원리금 상환), 농어촌출신 학자금 융자(졸업 후 2년부터 상환)로 구분된다.

◆한국장학패널
학자금 대출을 받는 사람들의 진학상황, 대학생활, 졸업 후 취업 등을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조사대상 그룹. 1만608명으로 구성돼 있다. 

 

강홍준·이수기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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