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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유지론자 김정은, 낡은 사회주의 이념 고집 안 할 것

중앙선데이 2018.09.29 00:30 603호 12면 지면보기
[박신홍의 人사이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우상호 의원은 인터뷰 내내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선택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국익에도 도움이 될 거라면서다. [우상조 기자]

우상호 의원은 인터뷰 내내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선택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국익에도 도움이 될 거라면서다. [우상조 기자]

9월의 평양은 예상 밖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파격적인 행보는 물론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여 상전벽해가 된 여명거리는 불 꺼진 유경호텔로 상징되던 10여 년 전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 그새 북한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북한은 진정 변하고 있는 것일까. 잇단 대북제재에도 굶어 죽지 않고 오히려 경제성장을 이뤄가는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 경제 현실
트랙터 대신 소 끌고 생산성 20%↑
잉여 농산물 436개 장마당서 거래

활성화되는 시장
손전화 580만대, 4명에 1명꼴 휴대
사설 금융업자인 ‘돈주’도 늘어나

김정은 권력 기반
군·당·관료 등 3대 세력 모두 장악
인민들도 불만 없어, 집권 기반 탄탄

비핵화 전망
2차 북·미 회담 구체성 담보 가능
보수 진영도 해법 함께 고민했으면

 
보여주기식일 뿐이다, 우리가 한두 번 속았느냐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공개돼 있는 각종 자료와 데이터는 최근 북한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손전화(휴대전화의 북한말)와 택시가 늘고 장마당(시장의 북한말)이 전국 곳곳에서 성업 중인 북한의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랫동안 이 문제에 천착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 물망에 오를 정도로 그의 분석은 여권 내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를 만나 북한의 실상과 비핵화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분배 구조 바뀌자 밤 늦게까지 일해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총평하자면.
“지난 겨울만 해도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음을 감안할 때 대단히 큰 성과다. 첫째 아들은 백령도에서 해병대로 제대했고 둘째는 지금도 파주 전방부대에서 복무 중이다. 아이를 최전선에 보내놓은 부모 입장에선 늘 전쟁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마련인데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하는 순간 집사람과 손을 맞잡고 기뻐했다. 사실상 첫 남북 불가침선언 아니냐. 지금 당장은 실감 나지 않겠지만 그 어떤 합의보다 큰 변곡점이 될 거다.”
 
북한이 진짜 변하고 있다고 보나.
“철저히 데이터에 입각해서 보자. 2016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8%였는데 북한은 3.9%였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고 2013년부터 김정은 체제가 본격화됐다고 볼 때 불과 3년여 만에 이 정도 성과를 거둔 건 예사롭게 넘길 게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400만t가량이던 농업 생산량이 지난해 480만t으로 늘었다. 김일성 시대에는 트랙터로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기름이 없어서 소를 끌고 논밭을 갈고 있는 상황에서 6년 새 20%나 증가한 것이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김 위원장이 덩샤오핑(鄧小平)식 농업개혁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 개혁이라면 화려한 특구를 연상하지만 시작은 농업 부문이었다. 집단농장의 분배 구조를 바꿔 개인이 더 많이 가져가게 하자 농업 생산성이 급증했다. 김 위원장도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 국가가 집단농장에서 70~80% 가져가던 것을 개인이 60% 가져가는 걸로 바꿨다. 그러자 놀랄 일이 벌어졌다. 농민들이 밤 늦게까지 일하게 됐다는 거다. 사적 동기를 강화하자 생산량이 급속히 늘어난 셈이다. 예전엔 하루 한 끼를 겨우 먹었는데 지금은 두 끼를 안정적으로 먹는다고 한다. 이제 어느 국제기구도 북한 주민이 굶어 죽는다는 얘긴 하지 않는다.”
 
그는 “이는 단순히 식량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큰 파급 효과를 불렀다”고 진단했다. “잉여 농산물이 늘자 자연스레 거래를 위한 시장이 생겨났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436개의 장마당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시·군마다 2~3개씩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동대문시장 규모만한 장마당도 8개나 생겼다. 더 나아가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사설 금융업자도 늘었다. 북한말로 ‘돈주’다. 장마당도, 돈주도 국가가 공식 허가해준 거다. 장마당이 나라에 내는 1년 세금이 6600만 달러(약 733억원)에 달한다. 그러면 적어도 10배 이상의 돈이 돈주를 통해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신흥 경제세력이 등장했다는 말인가.
“맞다. 북한이 이 정도 변하고 있는데 변한 게 없다는 건 현실을 외면하는 주장일 뿐이다. CSIS는 돈주로 대표되는 자본가 그룹이 향후 김 위원장에 대항하는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 될 것으로 분석하던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김 위원장 때문에 부자가 됐는데 왜 반발하겠나. 오히려 이들이 김 위원장의 또 다른 집권 토대가 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거다.”
 
또 다른 변화의 상징을 꼽자면.
“손전화와 택시다. 손전화가 의미하는 게 뭐냐. 바로 소통이다. 밤에 몰래 이불 뒤집어쓰고 소곤소곤 얘기해야 했던 철저한 통제국가가 언제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손전화가 등장하면서 시나브로 개방국가로 바뀌고 있다. 인구 2560만 명에 580만 대의 손전화가 보급돼 있으니 네 명에 한 명꼴로 갖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돈으로 40만~50만원이라 고임금 노동자도 다섯 달치 월급을 다 모아야 구입할 수 있는데, 대체 어디서 돈이 나서 그 많은 주민이 구입했겠나. 당이 무상으로 준 것도 아니잖느냐. 이는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북한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생생한 증표다. 택시도 사람과 물자 이동 수요가 있으니까 종일 다니는 것 아니겠나.”
 
김정일이 아들을 스위스로 유학 보낸 까닭
 
2003년 9월 북한쪽 백두산 천지 앞에서. 왼쪽부터 우상호 의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 송영길 의원. [사진 우상호 의원]

2003년 9월 북한쪽 백두산 천지 앞에서. 왼쪽부터 우상호 의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 송영길 의원. [사진 우상호 의원]

그럼 왜 김 위원장이 변하려 한다고 보나.
“그래서 김 위원장 연구가 중요하다. 알다시피 김 위원장은 청소년기 6년을 스위스에서 유학하며 보냈다. 성장기 경험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러면 왜 김정일은 아들을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닌 스위스로 유학을 보냈을까. 북한의 경제발전과 후진국 탈피를 위해 아들에게 미리 서구 문물을 접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우리도 자녀를 유학시킬 때 최대한 꼼꼼히 따져보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품고 북한으로 돌아갔을까.”
 
그는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김 위원장은 과거 할아버지 세대의 낡은 사회주의 체제를 고집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청소년기에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종종 김일성·김정일과 김 위원장을 동일선상에서 보는데, 발언록을 보면 김 위원장은 더 이상 이념주의자가 아니다. 실제로 주체사상이란 단어도 거의 쓰지 않는다. 오히려 대단히 실용적인 체제유지론자라고 보는 게 합리적 판단일 거다. 나는 김 위원장이 스위스처럼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낡은 사회주의 이념을 고집하지 않고 과감히 결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우 의원의 이 같은 관측은 남북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청와대와 민주당 등 여권 인사들의 보편적 인식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 의원은 민주당 소장파 의원 32명이 모인 정책연구모임 ‘더 좋은 미래’에서도 연구소장을 맡아 북한 관련 자료와 분석을 공유하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막역한 사이다.
 
권력 장악력이 있어야 가능한 얘긴데.
“김정일은 권력승계 과정에서 아버지 세대와 협업이 불가피했지만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아버지 세대 주역들을 전부 숙청했다. 심지어 고모부인 장성택까지도.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인 군부도 완전 세대교체가 됐는데 반발이 전혀 없다. 군과 당·관료 등 3대 세력을 짧은 시간에 모두 장악한 거다. 인민은 또 어떤가. 잉여 농산물이 생긴 농민이 불만이겠나, 손전화 쓰는 580만 명이 불만이겠나. 장마당에서 돈 버는 사람들도 무슨 불만이 있겠나. 김 위원장의 집권 기반이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하다는 데 미국 내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북에 이용만 당할 거란 우려도 여전하다.
“의혹 어린 시선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영원히 북한을 못 믿는다. 나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까지 갈지 100% 확신을 갖고 있진 않다. 약속도 수없이 깨지 않았나. 하지만 김정은 시대의 협상은 처음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남북 합의도 아버지 때와는 전혀 다르지 않았나. 북한이 철저한 상호주의와 벼랑 끝 전술을 쓰지 않은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 북한의 변화상이 국가를 바꿔보겠다는 김 위원장 결심의 표현이라면, 지금의 협상 방식도 예전과 똑같을 것이라고 지레 결론 짓기보다는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게 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임종석 실장은 사선 함께 넘은 사이
 
얘기가 길어지면서 도시락이 들어왔다. 임 실장에 대해 물었다.
 
“1989년 임 실장이 한양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뒤 강의하러 갔는데 ‘선배, 저도 용문 나왔어요’ 하더라. 알고 보니 용문고 4년 후배였다. 이후 수배 중에도 몰래 술을 마실 정도로 친해졌다. 당시 하도 안 잡히고 도망 다녀 임길동으로 불리지 않았나(웃음). 출소 후 청년운동도 함께했고 정치권도 같이 들어왔다. 이심전심이랄까. 남북문제에서도 전혀 이견이 없다. 20대 때 사선을 함께 넘은 사람에겐 형제보다 더 끈끈한 뭔가가 있기 마련이다.” 
 
남북문제를 잘 풀고 있다고 보나.
“이보다 잘할 수 없달까. 북한과 상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뢰는 만날 때 생기고 떨어져 있으면 늘 의심하는 법이라 남북이 이 정도까지 합의한 게 신기할 정도다. 국내 전문가 중 지금 단계에서 영변 얘기가 나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나. 게다가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를 언급하고 전문가 참관을 허용하는 등 비판자들의 요구도 모두 수용하지 않았나. 미국 언론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북 협상에 반대하던 미국 내 전문가들도 반대할 명분이 사라져 버렸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한층 구체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비핵화 전망은.
“앞으로도 협상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난관과 교착 상태가 반복될 것이다. 그때마다 회의론자들은 ‘그것 봐라’고 할 테고. 하지만 아무리 넘어야 할 산이 많아도 뚫고 나가야 한다. 비핵화는 우리 국익과도 직결된다.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엔 관심이 없다는 비판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이다. 비핵화가 돼야 경제협력을 통해 새로운 번영과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데 왜 소극적이겠는가. 미국 등 국제사회도 협상의 흐름을 타는 마당에 국내 보수 진영도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 해법을 함께 고민했으면 싶다. 남북문제가 이 정권에서 끝나는 게 아니잖느냐. 보수든, 진보든 기성세대라면 통일은 후세대에 맡기더라도 평화 정착까진 함께 가야 하지 않겠나.”
 
박신홍 정치팀장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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