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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핀부터 스마트폰까지 … 세상을 바꾼 물건들

중앙선데이 2018.09.29 00:30 603호 30면 지면보기
디자인으로 본 현대사
디자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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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러스 윌리엄스 외 53인 지음

살아있는 전설로 남은 상품 500개
20세기 소비자 기호 한눈에 살펴

‘디자인은 권력’ 치열한 국제경쟁
자기 길 묵묵히 지킨 장인들의 땀

이혜선 옮김, 마로니에북스
 
영어 단어 ‘design’은 우리말로 외래어 ‘디자인’일 뿐만 아니라 설계·의도를 뜻한다. 사실 모든 디자인에는 설계와 의도가 숨어 있다. 또 어떤 제품을 많이 팔고 국가의 미래를 차근차근 다져가려면 한눈에 보고 무릎을 치게 하는 설계 전략이 필요하다.
 
『디자인북』은 부제가 ‘세상을 바꾼 디자인 500’이다. 책 내용으로 보면 ‘디자인으로 본 현대사’로 제목을 붙일 수도 있겠다.
 
상품 디자인의 클래식 500개를 엄선해 50여명의 전문가가 한 페이지마다 디자인 한 개씩 500자 분량으로 설명을 단 책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책이다. 프롤로그 없이 곧바로 디자인의 세계로 들어간다. 책의 에필로그도 없다. 숨이 가쁜 디자인의 변화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하기에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뜻 아닐까.
 
피에스타웨어(1936). 대공황 때 나왔지만,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마로니에북스]

피에스타웨어(1936). 대공황 때 나왔지만,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마로니에북스]

크게는 가구·문구·주방·기타 용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의자·소파·책꽂이·만년필·저울·와인 따개·지퍼·우편함·벽시계·스마트폰·선풍기 등 다양한 제품 디자인이 나온다. 시대를 초월하는 감각으로 제품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결합해 업계 표준이 된 디자인들이다.
 
모델 904 배니티 페어 의자(1930). 전통적인 도구와 기술을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과 결합했다. ‘마지막 황제’ 등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사진 마로니에북스]

모델 904 배니티 페어 의자(1930). 전통적인 도구와 기술을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과 결합했다. ‘마지막 황제’ 등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사진 마로니에북스]

각 사진 설명은 각 제품의 역사적 배경, 디자인 개발 과정과 더불어 그 디자인이 어째서 중요한 혁신을 주도했는지 알려준다. 출시 연도 순서로 디자인을 소개했다. 주로 20세기에 소비자들의 취향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
 
체스터 안락의자와 소파(1912). 불필요한 재료·장식을 배제하고 인체를 편안하게 하는 데 집중한 소파. [사진 마로니에북스]

체스터 안락의자와 소파(1912). 불필요한 재료·장식을 배제하고 인체를 편안하게 하는 데 집중한 소파. [사진 마로니에북스]

상식이나 전문지식을 넓히며 신기한 것을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다. 1849년 옷핀을 만든 월터 헌트(1785~1869)는 친구에게 단돈 400달러에 특허권을 넘기는 바람에 별로 돈 재미를 못 봤다. 몽블랑 만년필 중 아이스터스튁은 젊은 기능공이 장인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도제 생활 마지막 해 프로젝트를 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병사들은 수프를 헬멧에 넣고 지포 라이터로 데워먹었다.
 
PH 아티초크 램프(1958). 전구를 감싸는 포물선 형태의 연속된 고깔을 동심원처럼 배치했다. [사진 마로니에북스]

PH 아티초크 램프(1958). 전구를 감싸는 포물선 형태의 연속된 고깔을 동심원처럼 배치했다. [사진 마로니에북스]

책에 소개된 디자이너 중에는 브로이어·르코르뷔지에·야나기 같은 유명한 인물도 있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묵묵한 장인도 포함된다.
 
디자인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 사람을 감동하게 하지만, 디자인에도 국적이 있고 촌음을 다투는 경쟁이 있다. 서구는 현대사의 권력을 지배했다. 서구 디자인은 제품의 미적 세계를 지배했다. 그래서 몇몇 일본 디자인을 제외하곤 서양 디자인이 이 책을 장식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디자인은 없다. 노벨상은 업적과 수상 사이에 수십 년 시차가 있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애국적이며 낙관적인 우리 독자라면, 『디자인북』의 개정판이 몇십 년 후에 나온다면, 대한민국 디자인도 다수 포함되리라는 상상을 할 것이다.
 
사족처럼 경고를 하나 붙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500개 제품은 모두 현재 판매 중이다. ‘충동구매 신’이 유혹의 손길을 독자에게 뻗을지 모른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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