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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타일 자기파괴

중앙선데이 2018.09.29 00:30 603호 31면 지면보기
김사과의 맨해튼 리얼리티 
How to murder your life (네 인생을 살해하는 법)

How to murder your life (네 인생을 살해하는 법)

캣 마넬(Cat Marnell)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6년 전이다. 그때 내가 지내던 브루클린 아파트의 옆방 여자가 재미있는 소문을 전해 주었다. 뉴욕에 사는 유명 잡지 뷰티 에디터가 마약 할 시간이 모자란다며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구글에 그녀의 이름을 입력하자 사진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백발에 가까운 밝은 금발과 커다란 눈, 코트니 러브와 케이트 모스를 섞어 놓은 듯 깡 마른 위태로운 분위기의 그녀는 여성 잡지 뷰티 에디터에 대한 내 기대 - 완벽한 머릿결, 완벽한 피부, 완벽한 화장법 - 와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보그와 지큐, 뉴요커 등을 발행하는 거대 출판사 콘데 나스트(Conde Nast) 계열사에서 뷰티 에디터로 일했던 그녀는 여성 잡지계의 독보적인 캐릭터였다. 꽃향기 가득한 화장품의 세계를 마약 중독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이후 인터넷 뷰티 블로거들의 글쓰기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래 감지 않아 떡진 머리를 잘라 내기 위해 수천 달러짜리 고급 살롱에 가고, 창백한 피부를 감추기 위해서 태닝 크림을 두껍게 펴 바르고, 목욕 소금을 코로 흡입하는 그녀의 기이한 행각은 완벽한 겉모습과 완벽한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젊은 도시 여성들에게 굉장한 호소력이 있었다.
 
그녀가 마약중독자가 된 계기는 어린 시절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로부터 각성제를 처방받으면서부터였다. 불행히도 효과가 너무 좋았다. 성적이 수직 상승했고, 인기도 얻기 시작했다. 고급 호텔에서 열리는 부잣집 아이들의 파티에 무제한으로 초대받았다. 이후 뉴욕으로 와 대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꿈에 그리던 유명 잡지사에 취직하게 된다. 매일 아침 명품으로 휘감고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멋진 삶을 갖게 되었지만, 그때 이미 그녀의 중독 증상은 한계를 넘어섰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약으로 해결했다. 불면증과 폭식증에 시달렸다. 응급실에 실려 가고, 마약치료소를 들락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약을 끊는 대신, 자신의 파괴적인 삶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스타가 되었다. 뉴욕 타임스가 인터뷰를 요청하고, 힙스터 잡지 바이스(Vice)가 칼럼을 의뢰했다. 유명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작년 말, 드디어 그녀의 첫 번째 책 『How to murder your life(네 인생을 살해하는 법)』이 출간되었다. 책은 곧장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불면과 폭식증에 시달린다. 그녀는 약을 끊을 생각이 없다.
 
어쩌면 이것은 그저 또 다른 마약 중독자 유명인, 각성제에 찌든 신데렐라의 이야기다. 아주 미국적인 이야기. 왜 그들은 마약을 하는가? 놀랍게도 그것은 지나치게 모범적인 이유에서다. 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파티에 초대를 받고 싶어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 좋은 글을 쓰려고. 회사에서 활기차게 일하기 위해. 한 마디로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모든 것을 잃기 위해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너무나도 간절하게 성공적인 삶을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영화와 텔레비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비추는 성공한 삶의 이미지는 환상이다. 완벽한 외모와 커리어, 훈훈한 남자친구로 이루어진 성공한 젊은 여성의 이미지는 완벽한 환상이다. 하지만 그 환상은 근사하다. 그리고 실제로 목격할 수가 있다. 어디서? 저기, 창 너머, 길을 가로지르는 완벽한 여자에게서 말이다. 그녀의 완벽한 머리카락, 완벽한 표정, 완벽한 선글라스, 저 완벽한 손톱과 발톱, 무엇보다 그녀 옆에 있는 근사한 남자를 보라. 그녀는 완벽하게 뉴욕 스타일로 완벽하다. 물론 저 완벽한 표면 아래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의 완벽한 가방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각성제와 식욕억제제, 수면제와 우울증약의 처방전 뭉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만의 비밀. 감추어져 있는 것은, 그럴 이유가 있는 법이다. 완벽한 그녀의 사생활이 공포와 혐오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매일 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살해하고 있다고 해도. 나쁜 진실들은 잊자. 그것들은 오직 그녀의 것이니까.
 
김사과 소설가 sogreenapple1@gmail.com
2005년 단편 ‘영이’로 등단. 최근 장편 『N. E. W』를 냈다. 장편 『풀이 눕는다』, 산문집 『0 이하의 날들』이 있다. 2016년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글을 쓰며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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