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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은 자기에 갇힌 사람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8.09.29 00:30 603호 31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뉴로트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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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실버만 지음

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나
‘백인백색’ 사람마다 원인 제각각

독감·홍역 등 세균성 질환 아니야
MS·애플처럼 운영체계 다를 뿐

자폐증 둘러싼 편견·오해 버려야
세상과 소통하려는 욕망은 같아

강병철 옮김, 알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세요? 실리콘 밸리에서 자폐증이 유행하고 있다고요. 우리 자녀들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 책은 ‘자폐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놀라운 모티브에서 시작됐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미국 학령기 어린이 68명 중 1명이 자폐범주성장애에 해당한다고 추정한다. 30명 남짓을 한 학급으로 가정하면 두 학급 당 한 명 꼴로 자폐아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라고 사정이 다를까. 자폐증이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난 건 실리콘 밸리나 미국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특이한 건 실리콘 밸리처럼 기술 중심 지역사회에서 자폐증의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 분야에 집중력 있게 몰두하고 머리는 기막히게 좋지만 사회적인 면은 서투르기 짝이 없는 성향, 즉 자폐증 성향이 있는 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게 UCLA 신경유전학자 댄 게슈윈드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자폐증이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순 없다. IT 매체 ‘와이어드’와 저명잡지인 ‘타임’, ‘네이처’ 등의 매체에 글을 써왔던 저자 스티브 실버만은 자폐증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읽고, 자폐인과 그 가족, 의사, 연구자를 만났다.
 
실버만이 자폐증이 급증하는 현상을 발견한 건 1990년대 후반이었다. 이후 여론이 확산되면서 그 뒤 10년간 미국 내에서만 자폐증 연구에 수조 원이 투입됐다. 수많은 연구자가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매달렸다. 하지만 엄청난 돈과 시간과 연구가 투입됐음에도 자폐증 가족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자폐증을 다룬 영화 '말아톤'. 자폐증은 비정상이 아니라 두뇌의 특출한 능력으로 볼 수도 있다. [중앙포토]

자폐증을 다룬 영화 '말아톤'. 자폐증은 비정상이 아니라 두뇌의 특출한 능력으로 볼 수도 있다. [중앙포토]

UCLA 신경유전학자 스탠리 넬슨은 “자폐증을 겪는 어린이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서로 다른 유전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그간의 연구 결과를 요약했다.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자폐증은 하나의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그 원인도 제각각이라는 말이다.
 
자폐증이라는 말을 들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개 이렇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괴성을 지르고, 작은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특이한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것. 엄마가 어린 자녀에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쏟지 못했거나 유아에게 맞힌 백신에 들어간 독극물 때문에 나타나는 질병이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책은 자폐증이 이렇게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있다고 폭로한다. 자폐증은 냉담한 엄마나 백신의 잘못이 아닌 선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며, 자폐인은 정신병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폐증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는 독감이나 홍역처럼 특정한 원인 때문에 나타나는 질병이 아니라 인간 정신이 작동하는 하나의 양상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자폐증은 다른 운영 체제를 쓰는 컴퓨터와 같다. 윈도우 운영 체제를 쓰지 않는다고 그 컴퓨터가 고장 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자폐인이 귀를 막고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는 건 예민한 그들에게 세상이 끊임없는 감각의 공격을 퍼붓기 때문이다. 비명을 지르는 건 진심으로 사람들과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다.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그들에게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 뿐이다.
 
자폐인의 기준에서 볼 때 정상적인 뇌는 쉽게 산만해지고, 강박적일 정도로 사교적이며, 아주 작은 세부 사항과 항상 일정한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들에 대한 주의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자폐인은 정상적인 세계를 터무니없이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러우며 끊임없이 굉음이 들려오고, 개인 공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낀다. ‘자폐’라는 말의 뉘앙스 때문에 오해하듯, 자폐인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이들로 봐야 한다는 게 책의 주장이다.
 
다만 이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폐증 연구의 선구자인 아스퍼거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훌륭한 교사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다가가 중간 지점에서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 어린이들을 이끄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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