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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하루키가 빠진 맥주·와인·위스키 …

중앙선데이 2018.09.29 00:30 603호 32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문학과 술은 얼마나 가까운가
작품 속 술 관련 대목 가려 뽑아
술의 역사, 주조법 등도 망라해

조승원 지음, 싱긋
 
무라카미 하루키(누군지 굳이 설명을 달지 않아도 될 거라 여겨 생략함)와 술에 관한 책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로빈스 네스트(Robin’s Nest)’다. 하루키(외국사람 이름을 줄여 쓸 때는 대개 성을 쓰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무라카미보다 하루키로 많이 쓰기 때문에 이에 따름)의 작품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김난주 옮김, 모음사, 1993년)에 나오는 술집이다. ‘그다음엔 술에 관한 게 또 뭐가 있지’ 하고 30년 가까이 읽어왔던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쭉 떠올려봤다.
 
아무래도 하루키 하면 술보다는 음악과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대학 시절 『상실의 시대』(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 1989년)를 통해 하루키를 처음 만난 뒤, 그의 책에 나오는 음악과 소설을 찾아서 따라 듣고 따라 읽었다. 반면, 그의 책을 읽고서 술을 따라 마신 기억은 없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할 일이 생겼다. 짐작한 그대로다. 하루키 따라 술 마시기다. 저자 역시 이렇게 한마디 한다. “자, 여기까지 읽었다면 더 망설이거나 참을 필요가 없다. 일단 책을 덮고, 집안 어딘가에 위스키가 있는지 뒤져보시라. 만약 없다면 가까운 마트에 가서 얼른 한 병 집어오시길”(192쪽)이라고. 이어 무엇을 마셔야 할지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추천한다. “세상에 나쁜 위스키란 없다. 그저 덜 좋은 위스키가 좀 있을 뿐이다.”(194쪽)
 
하루키가 1981년까지 재즈 바 ‘피터 캣’을 운영했던 일본 도쿄 센다가야의 한 건물. 2층에 ‘피터 캣’이 있었다. [사진 싱긋]

하루키가 1981년까지 재즈 바 ‘피터 캣’을 운영했던 일본 도쿄 센다가야의 한 건물. 2층에 ‘피터 캣’이 있었다. [사진 싱긋]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하루키와 맥주’, 2장 ‘하루키와 와인’, 3장 ‘하루키와 위스키’, 4장 ‘하루키와 칵테일’ 순서다. 그리고 그 뒤에 ‘이 책을 읽고 가볼 만한 곳’과 ‘술꾼이 밑줄 그은 하루키의 문장’이 부록으로 붙어있다. 각 장의 구성은 동일하다.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술이 나오는 대목을 인용한다. 이어 그 술이 작품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한다. 그다음을 그 술의 기원과 역사, 주조법, 에피소드 등 백과사전적 설명이 따른다.
 
하루키의 인기가 하늘이 찌르다 보니 서점의 ‘하루키 코너’에 가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이 있다. 그 중엔 ‘하루키 책’(소설과 에세이 등 하루키가 쓴 책)이 있고, ‘하루키에 관한 책’(이 책처럼 하루키와 그의 작품과 관련한 내용의 책)이 있고, ‘하루키로 인한 책’(하루키가 자신의 작품에서 거론한 다른 작가의 책)이 있다.  
 
하루키에 관한 책 중에는 작가의 명성에 묻어가려는, 상술만 번득이는 책도 적지 않다. 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때 ‘그런 책 중 하나가 아닐까’ 경계했지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자가 얼마나 꼼꼼히 하루키 책 속 문장들을 뒤졌는지, 또 얼마나 꼼꼼히 술에 관한 설명을 조사했는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직 MBC 방송기자인 저자는 1991년 대학에 입학했고 그해 하루키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이 책을 쓰면서 20대 초반의 자신을 다시 만났다”라고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시마모토(『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여주인공)를 만나 로빈스 네스트(칵테일 이름)를 한 잔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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