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종인 “신도시로 집값 잡아? 시장 회복력에 맡겨라”

중앙선데이 2018.09.29 00:02 603호 8면 지면보기
1992년 한창 건설 중인 분당 신도시.

1992년 한창 건설 중인 분당 신도시.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신도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토교통부는 21일 내놓은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9·21대책)에서 “서울과 1기 신도시 사이에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신도시 4~5곳 정도에 새 집 20만 채 정도를 공급한다.
 

1기 신도시 때 경제수석의 충고
90년대 초 집값 안정된 비결은
3저 효과 줄고 대기업 땅 판 덕
1기 신도시는 공약 지킨 것뿐

문 정부, 선제조치 못해 집값 급등
대출 제한, 금리 인상 미리 했어야

역사의 반복이다. 최근 약 30년 새에 정부는 주택 관련 세금을 신설하거나 인상하다 궁지에 몰리면 신도시 카드를 꺼내 드는 일을 되풀이 했다. 반복의 시작은 1989년 1기 신도시 건설이다. 정부가 신도시 성공 신화를 29년이 흐른 뒤인 올해 다시 재연하려고 한다. 실제 1기 신도시는 집값을 잡는 데 효과적이었을까.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서울 근처에 집중적으로 공급된 분당·일산 신도시는 투기 수요를 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도 “1기 신도시는 당시 서울로 몰려드는 인구를 분산하는 데 효율적인 정책”이라며 “게다가 베이붐 세대가 결혼할 때라 수요도 많았다”고 말했다. 두 전문가만의 평가가 아니다.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도 비슷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 술 더 떠 신도시는 집값 급등을 진정시키는 ‘궁극의 처방’으로 여겨질 정도다.
 
 
10~13가지 대책 나온 뒤에야 집값 안정
 
정작 1기 신도시 추진 시기에 청와대 경제수석(90년 3월~92년 3월)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은 “신도시 건설의 효과가 시원찮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90년대 초 집값 안정이 신도시 건설 때문이라는 것은 당시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며 “당시 부동산 가격은 여러 요인이 작용해 올랐고 내린 것도 제반 조건이 갖춰진 탓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가격은 89년 4월 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에도 1년 가까이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도시 건설은 애초 집값 잡기 대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87년 대선 당시 주택 200만 호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공약은 전임 전두환 정부 시절에 김재익 전 경제수석이 추진하려다 여의치 않아 접은 500만 채 건설을 재활용한 것이기도 했다. 집값이 급등하지 않았더라도 주택건설은 예정돼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당시 집값 흐름을 보면 신도시보다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90년 4·13조치)이 부동산 가격 하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보인다(그래프 참조). 김 전 의원에 따르면 부동산 거품은 땅값 급등이 1차 요인이었다. 80년대 후반 저달러·저금리·저유가의 3저효과 덕분에 한국 기업의 수출이 급증했다. 기업들이 번 돈을 대거 땅 매입에 투입한 것이 집값 상승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이런 저런 처방을 쓰다 끝내 대기업을 압박해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하도록 했다. 10대 그룹이 처분한 땅만도 6400만m²를 넘었다. 마침 미국 등 주요 수출시장이 위축됐다. 미국 경제는 90년 7월부터 침체에 빠졌다. 3저 효과도 줄어들면서 92년 성장률이 6%대까지 하락했다. 두 자리 수 성장률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수준이다. 한 마디로 경제 상황과 기업의 토지 매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90년대 부동산 시장 안정이었다는 얘기다.
 
김 전 의원은 “신도시 건설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큰손들은 ‘노태우 정부 이후 평균 10~13가지 대책이 나온 뒤에야 집값이 안정되는 패턴’이라는 속설을 곧잘 입에 올린다. 정부 대책보다 시장이 알아서 진정됐음을 돌려 표현한 말이다.
 
 
‘초이노믹스’가 현재 집값 급등 출발점
 
신도시 처방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에 추진된 2기 건설과정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홍춘욱 팀장은 “2기 신도시는 시기와 입지, 규모 등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며 “정부가 떠밀려 추진한 측면이 컸다”고 말했다. 공급 증가 효과도 한참 뒤인 2006년에 나타났다. 신도시가 건설된 지역도 판교를 제외하곤 김포, 파주 등 외곽이었다. 투자 매력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신도시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1기 이후 탄생한 ‘신도시=집값 안정’이란 신화가 흔들린 셈이다.
 
반면 홍 팀장과 이상우 애널리스트는 이명박 정부가 도심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2008년부터 시작한 보금자리주택은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집값이 급등한 지역에 주택공급을 늘리는 방안이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 보금자리가 집값을 잡았는지 여부도 논란이다. 수도권 집값은 2007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불거진 시점이다. 그해 8월엔 글로벌 신용경색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2008년 9월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국내 집값이 안정되기 시작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서울 도심이나 인근의 공급 확대가 만성적인 수도권 집중만 악화시킬뿐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어떻게 하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먼저 김 전 의원은 정부의 정책 실패를 지적했다. 그는 “2014년에 시작된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현재 집값 급등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했다. 김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뒤에 신속하게 초이노믹스를 재평가해 선제적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주택대출 제한과 기준금리 인상을 미리 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정부가 실기하는 바람에 주택시장에 투기심리가 퍼졌다. 김 전 의원은 “기준금리 인상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금리인상이란 처방을 꺼내 들기엔 경기둔화나 가계부채 등 위험 요인이 너무 많다. 이에 대해 김 전 의원은 “한국 경제를 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라며 “한국 경제가 연 2.5% 성장하면 평년작 수준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을 불황이라고 보는 시각이 틀렸으니 기준금리 인상에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대출 제한과 신도시 건설 등 이런 저런 대책을 쏟아내놓고 있다. 더 강력한 카드도 꺼내들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호황은 스스로 무너진다’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 대신 어설픈 대책으로 상처를 덧내느니 경제의 자체 회복력에 맡기는 게 더 좋다는 권고다.
 
강남규·염지현 기자 dismal@joongang.co.kr

구독신청

먼지알지 런칭 이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