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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린 부위까지 일치"···법정서 먼저 개봉한 '암수살인'

중앙일보 2018.09.28 13:57

“방청객들도 거기서 보시려면 목 아플텐데 앞으로 나오세요. 배석판사들도 보기 좋은 각도로 편하게 앉으세요.”

2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동관 317호 법정, 김상환(52ㆍ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가 재판정에 앉은 방청객에게 재판정 앞쪽으로 나올 것을 권유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에서 다음달 3일 개봉 예정인 영화 ‘암수살인’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신청 심리를 개최한 까닭이다. 실제 재판정에서 영화 전체(110분) 가운데 약 50분 분량이 법정에서 상영됐다.
 

유가족 "가족들 가슴에 두번 멍들게 해"
배급사 변호인 "언론 인터뷰는 왜 했나"
대법관 후보 중 1인 김상환 부장판사,
이례적으로 법정서 '영화 편집본' 상영 제안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암수살인’은 수감 도중 추가 살인 7건을 자백하는 살인범(주지훈)과 그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김윤석)를 다룬 범죄 영화다. 7건의 추가 자백사건 가운데 ‘부산 고시생 살인사건’ 피해자의 여동생 박모씨는 지난 20일 “영화가 오빠의 살해 장면과 범행수법, 살해 지역까지 그대로 묘사해 가족이 고통받고 있다”며 "상영을 금지해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냈다. 반면 영화 배급사(쇼박스) 변호인 안병걸 변호사는 “이미 유가족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개봉으로 인한 2차 피해, 인격권ㆍ명예권 침해를 주장하면서 어떻게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냐”며 반박했다.
 
양측 간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자 김상환 재판장은 심리 도중 “영화를 좀 볼 수 있겠냐”고 제안했다. 쇼박스 변호인단이 재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아직 개봉 전인 영화가 법정에서 먼저 상영됐다.
 
이날 상영된 영화 편집본에선 ‘2012년 부산 동광동’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부산 고시생 살인사건’은 2007년 부산 동구 북천동에서 발생했다. 살인범 역을 맡은 주지훈 역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예술작품 '표현의 자유' 대 피해자 '인격권 충돌', 법원의 선택은 
범행이 일어나기까지 과정, 주변 배경 등은 유가족 주장과 상당히 일치했다. 실제로 전파사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영화에선 ‘용성전기’라는 간판이 등장한다. 특히 살인범과 피해자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점이 일치한다고 한다. 유가족 박씨는 “오빠가 범인 칼에 찔린 몸 부위도 그대로 묘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사건을 맡은 경찰서 역시 영화에선 부산 ‘중구 경찰서’로 이름 붙였다. 실제로는 부산 중부경찰서에서 이 사건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암수살인 스틸컷. [사진 쇼박스]

영화 암수살인 스틸컷. [사진 쇼박스]

법정에서 유가족 측 변론을 맡은 정재기 변호사는 “99% 이상 실제 사건과 똑같이 재연돼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재차 야기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기 전에 최소한 직접 피해자를 묘사하는 부분은 편집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법조계 안팎에선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전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7일 전직 기자 이상호씨가 연출한 영화 '김광석'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김태현 변호사는 "피해자의 인격권만큼이나 영화를 상영 못 했을 때 받게 되는 배우나 제작자의 이익 침해 부분 역시 법원이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통상 심문 후 1∼2일 내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사건의 재판장을 맡은 김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관 후보 최종 3명 가운데 한명에 꼽힌 인물이기도 하다.
김상환 부장판사

김상환 부장판사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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