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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지하철역 광고 다 빼라"…박원순 '440억짜리 호기'

중앙일보 2018.09.28 02:00
박원순의 '광고없는 지하철역'..그럼 적자는 누가 메우나?  
서울 지하철은 한해 17억명 넘게 타지만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지하철은 한해 17억명 넘게 타지만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포토]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상당히 파격적인 구상을 하나 밝혔습니다. 서울 시내 모든 지하철역에서 상업광고를 없애고 대신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예술역'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인데요. 
 
 박 시장은 "성형 광고 같은 상업광고 때문에 시민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느냐"는 언급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보유한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전시한 우이신설선의 신설동역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았는데요. 신설동역을 이렇게 바꾸면서 포기한 광고수익이 연간 35억원이라고도 했습니다.    
 
 지하철역, 상업 광고 대신 예술품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사실 서울 시내 지하철역 중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고가 제법 많은 곳도 있습니다. 강남 지역의 경우 성형 광고로 도배된 역도 있을 정도인데요. 이런 곳을 정비하고, 바쁜 와중에도 예술작품을 보며 잠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도 현실적으로 무리 없이 추진이 가능한지가  중요할 텐데요. 예술역 구상을 실제로 실천에 옮겨야 할 조직은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입니다. 서울시 산하 조직으로 서울메트로(1~4호선)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를 통합해 출범했습니다. 
 
 '예술역'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게 '돈'입니다. 재무 상황만 좋다면 별로 어려울 게 없을 텐데요. 그런데 서울교통공사의 곳간 사정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우이신설선 신설동역에는 광고 대신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걸려있다. 이 작품들은 유족의 동의 하에 제작한 모작이다. [블로그 캡처]

우이신설선 신설동역에는 광고 대신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걸려있다. 이 작품들은 유족의 동의 하에 제작한 모작이다. [블로그 캡처]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한해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광고수익은 440억원가량 됩니다. 박 시장의 구상대로 모든 지하철역을 예술역으로 바꾸려면 당장 440억원을 포기해야 하는 겁니다. 
 
 예술역 하려면 연간 440억원 포기    
 더 큰 문제는 서울교통공사의 운영적자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적자만 5253억원으로 2013년(4172억원)에 비해 26%나 증가했는데요. 올해는 6000억원 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처럼 운영적자가 증가하는 데는 무엇보다 노인 무임승차 같은 복지수송 비용이 늘어나는 게 큰 요인입니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은 2013년 2782억원에서 지난해엔 3506억원으로 크게 늘었는데요. 
 
 무임승차 대상인 노인 인구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손실을 서울시와 정부 어느 곳에서도 보전을 해주지 않는데요. 반면 다른 지방의 지하철은 대부분 무임승차 보조금과 운영비용 부족분을 지자체에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교통공사의 손실만 계속 쌓이는 상황입니다. 
노인 무임승차 등으로 지난해 서울교통공사가 입은 손실은 3500억원이 넘는다. [중앙포토]

노인 무임승차 등으로 지난해 서울교통공사가 입은 손실은 3500억원이 넘는다. [중앙포토]

 물론 수송원가에 비해서 낮은 운임도 부담인데요. 원가보전율이 65%가량에 그친다고 합니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의 순수 운임수입 규모는 전 세계 다른 주요 국가의 지하철에 비해 상당히 적은 수준입니다. 
  
 4년 뒤 서울지하철 빚 7조 5000억
 이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운영적자가 발생하지만, 서울시에선  이에 대해 지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후 시설물 개량과 노후 전동차 교체 같은 유지·보수 비용만 일부 지원할 뿐인데요. 지난해 서울시가 공사에 준 출자금이 1317억원입니다. 운영 적자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은 금액인데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현재 상황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지금처럼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서울교통공사의 부채는 2022년엔 7조 5000억원까지 치솟을 전망입니다. 부채비율도 400%를 넘게 되는데요. 
 
 이렇게 어려운 살림 속에 앞으로 서울지하철의 노후시설 정비에 들어가야 할 돈도 상당한 액수입니다. 향후 5년간 필요한 돈이 4조 2485억원에 달하는데요. 지하철 1~4호선은 물론이고 비교적 늦게 개통한 5~8호선도 이제 시설개량을 위한 재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서울교통공사로서는 이런 돈을 충당하려면 결국 공사채 발행 등을 통해 빚을 얻어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면 이자 부담 등으로 인해 운영상황은 더 나빠지고, 노후 시설개량 등에 제때 투자가 안 될 가능성이 큰데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투자 부족한 뉴욕 지하철 악명 높아  
 미국 뉴욕의 지하철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5개 노선, 394㎞ 길이의 뉴욕 지하철은 수시로 역 구내에 쥐가 나타나고,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또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면 최악의 경우 몇 년 동안 수리가 안 되고 방치되기도 한다는데요. 
 
뉴욕 지하철에선 제법 큰 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블로그 캡처]

뉴욕 지하철에선 제법 큰 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블로그 캡처]

 운행 정체도 심해 올 1월 기준 정시율이 58%에 그친다고 합니다. 10대 중 4대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는 의미인데요. 뉴욕 지하철이 이렇게 된 큰 요인은 제때 노후 시설을 정비할 자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뉴욕 지하철의 방만한 운영과 노조의 강력한 영향력 등도 주요 요인으로 거론됩니다.   
 
 그래서 뉴욕시에서는 맨해튼에 통행세를 신설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지하철 개량 비용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뉴욕 지하철을 제대로 다 개량하려면 21조원이 필요할 거란 얘기도 나오는데요. 
 
 지하철 제대로 운영할 방안 필요  
 서울지하철도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뉴욕 지하철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운영적자의 요인을 제대로 따져보고 향후 투자계획 등을 점검해 서울교통공사 내부적으로 해결 가능한 것은 하되 서울시와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할 겁니다. 
 
 그리고 가뜩이나 곳간이 비어가는 서울교통공사에 지원은 해주지 못할망정 400억 넘는 광고수익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다분히 비현실적인 구상은 일단 접어두는 게 맞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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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서울교통공사도 부단한 자구 노력을 통해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게 요구됩니다. 다만 노선 효율화나 인력 감축 같은 강력한 자구책은 아마도 공사 사장이 아닌 시장 선에서 결심해야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버티더라도 공기업 빚은 결국 시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합니다. 자칫 우리 후세에게 막대한 짐을 떠넘길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보다 현실성 있는 구상과 정책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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