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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국민연금이 ‘돼지분뇨 냄새’ 오명 벗으려면

중앙일보 2018.09.28 00:32 종합 37면 지면보기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연봉도 적고, 눈치 봐야 할 것도 많죠. 게다가 가족하고 떨어져서, 지방에 지내야 하죠. 런던·뉴욕에서 일하다 복귀 발령이 나면 남을 이유가 있나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직으로 일하다 최근 그만둔 A씨는 기금본부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A씨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뛰는 선수들과 자주 만나고 공부해야 하는데 전주에선 불가능하다”라며 “해외사무소에 다녀온 분들은 ‘스펙’을 살려 이직하기 쉬우니 더더욱 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27일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민연금의 해외사무소 직원 가운데 국내에 돌아온 13명 중 8명이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635조원의 기금 해외 투자를 위해 뉴욕·런던·싱가포르에 해외사무소를 두고 있다. 외환·글로벌 금융시장 동향 모니터링, 글로벌 기금운용기관·전문가와의 네트워크 구축, 투자기회 발굴 등을 한다. 여기에 파견 나간 직원 23명을 위한 주택 임차료 등으로 2014년부터 올해까지 349억8039만원을 썼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거금을 들인 ‘글로벌 인재’ 상당수는 전주 복귀를 거부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업계에서는 기금본부가 지난해 2월 전주로 이전한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 일하는 기금본부 운용직도 마찬가지다. 운용직 233명 중 가족들과 함께 전주로 옮겨온 사람은 17.1%에 불과했다. 전주 이전 이후 총 41명의 운용직위 떠났다. 김 의원은 “장기간의 투자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은 전문 인력이 떠난다는 건 기금 운용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는 지난달 공개한 ‘국민연금 기금운용 발전 방향’에서 “기금운용본부의 서울사무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력 이탈을 막고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2일자 신문 1면에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가 1년째 공석인 이유를 보도하며 “낮은 임금과 정치적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기숙사를 써야 한다. 돼지 분뇨 냄새에 대한 관용은 필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지적에도 일부 정치인들은 “전주에 대한 지역 비하”라며 귀를 틀어막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은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귀한 돈이다. 특정 지역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돼지 분뇨’ 오명을 벗고 국민의 연금으로 제 역할을 하려면 최소한 서울사무소 정도는 내야 한다.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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