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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리는 ‘그저 아무개’였다

중앙일보 2018.09.28 00:21 종합 39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추석 연휴 중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다가 접한 이 짤막한 대사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구성·그림·연기가 모두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 속의 아무개는 1900년대 초 망해가는 나라를 구해 보겠다고 일제에 항거한 의병과 백성을 상징한다.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는 게 아무개들의 꿈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권력을 잡은 강자의 기록이다. 아무개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무명씨(無名氏)로 잊히기 마련이다. 드라마의 아무개를 떠올린 건 최근 사법부에서 벌어진 몇 개의 장면이 ‘오늘의 우리’와 포개졌기 때문이다.
 

도덕성 의심받는 재판관 임명
탈법 집합소로 추락하는 헌재
측근·코드 엮인 동아리 인사로
정파와 진영의 포로 된 대법원
그래도 권력 견제는 사법부뿐
‘그저 아무개’ 벗어나 감시해야

장면 1. 꼭 1주일 전인 21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선 이석태·이은애 신임 재판관(이하 존칭 생략)의 취임식이 도둑장가 가듯 조용히 치러졌다. 이은애는 취임사에서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고 헌정 질서 정립에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정체불명의 위장전입을 8회나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석태는 “중립성과 균형감을 잃지 않고 갈등을 치유하겠다”고 했다. 그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있던 당시 직속 상관이 문재인 민정수석이었다. 두 사람을 재판관에 지명한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상습적 위장전입자의 양심, 현직 대통령을 모셨던 인물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데도 밀어붙인 김명수의 상식은 경이롭다.
 
국회 몫으로 추천된 김기영·이영진·이종석 재판관 후보자도 국회 인준을 기다리는 중이다. ‘김명수의 복심’으로 불리는 김기영은 위장전입과 함께 모친 회사에서 억대를 챙긴 배우자의 위장취업이 문제가 됐고, 이종석도 5회의 위장전입 경력이 있다. 이들이 헌재에 합류한다면 위장전입만 따져 이은애 8회, 이종석 5회, 김기영 3회를 합쳐 무려 16회에 달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덕에 탄생한 헌재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렇게 편법·탈법 전문가들의 집합소로 망가뜨리고 있다. 민주항쟁의 주축이었던 그 국민을 티끌처럼 하찮은 아무개로 보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고대훈칼럼

고대훈칼럼

장면 2. 25일로 김 대법원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그에게 지난 1년은 ‘판사 블랙리스트’를 들춰 걸림돌을 솎아내고, ‘재판거래’라는 엄청난 의혹을 검찰의 칼에 맡긴 채 뒷감당도 못 해 갈팡질팡한 시간이었다. ‘동아리 인사’는 만연했다. 김명수가 회장을 지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후배들이 대법관을 비롯해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사법 개혁’이라는 고상한 구호를 내걸었지만 자기 사람 심기가 고작이었다. 이러다 보니 법원은 정권의 눈치를 살피고, 자의적인 옳고 그름으로 이념의 패로 갈라지고, 중립적 판사들은 깊은 침묵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사법의 생명인 삼권 분립은 허물어지고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삼권 통합’이라는 비아냥을 듣지만 그들만의 길을 가련다다. 국민을 투명의 아무개로 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면 3. 우리의 사법은 북한에서까지 조롱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용남 북한 경제담당 부총리는 18일 평양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더라.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서도 유명한 인물이 되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냥 덕담으로 넘길 수 없는 가시가 숨겨 있다. ‘여러 측면의 유명’은 재판을 염두에 둔 발언이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유명’은 북한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기여하라는 ‘묵시적 청탁’일 수 있다.
 
기업인 재판은 사법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있다. 이재용·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재판에서 보듯 사실상의 강요와 협박에 못 이겨 낸 돈을 ‘묵시적 청탁’의 뇌물로 둔갑시킨 창조적 논리를 대단한 사법정의라고 착각하는 게 요즘의 법원 주류 세력이다. 이를 ‘사법의 정치화’라고 부른다. 북한에 투자하자는 대통령의 ‘요청’에 기업인이 버틸 재간이 있는가를 따져보면 묵시적 청탁의 모순은 쉽게 가려진다. 북한은 이를 꿰뚫고 있다. 대법원과 항소심 선고를 앞둔 이재용과 신동빈의 운명은 북한의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재벌 총수도 권력 앞에선 보잘것없는 아무개에 불과하다.
 
권력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공정한 재판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게 사법부의 존재 이유다. 대법원과 헌재는 국민이 기댈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촛불 민심’ 하며 떠받들던 정치의 배신은 으레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법부마저 정파와 진영의 포로로 전락하면 권력의 독주와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검은 미래밖에 없다. 오늘의 우리가 ‘그저 아무개’를 거부하고 사법부만이라도 깨어 있도록 감시해야 할 시민적 의무가 거기에 있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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