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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비핵화'대신 '완전한 비핵화' 트럼프 계산된 압박

중앙일보 2018.09.28 00:13 종합 1면 지면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비핵화 시한에 쫓기는 “시간 게임(the time game)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5개월이 걸리든 상관없다”고도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던진 ‘트럼프 행정부 첫 임기 내 비핵화’ 카드에 대해 속도보다는 철저한 비핵화가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맞받아친 역제안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시간 게임하지 않겠다
난 협상꾼, 2년 3년 걸려도 무관”
김정은 “빠른 시일 내” 밝히자
속도보다 철저함으로 초점 이동

“비핵화 시간 게임 않겠다” 왜
핵 사찰 협상 장기화 불가피하자
백악관서 선수쳤다는 분석도
NYT “핵 동결 없이 시한만 해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 롯데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도 ‘시간 게임에 말려들지 말라’고 했다. 지금 그들(북한)은 핵실험에 관심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앞서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오스트리아 빈 실무협상을 북한에 제안하며 “2021년 1월 안에 이뤄질 빠른 비핵화(rapid denuclearization) 과정의 시작을 장식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과거 얘기와는 결이 다르다.
 
‘시간 게임’은 사실상 김 위원장의 작품이다. 이달 초 방북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은 지난 6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 비핵화를 실현하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어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20일 대국민 보고에서 “김 위원장이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을 통해 미국이 그간 원했던 비핵화 속도전을 수용하면서 대신 그에 합당한 ‘상응조치’를 들고 나왔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비핵화 데드라인에 무게를 싣지 않겠다는 식으로 반응하며 ‘완전한 비핵화’로 받아치는 모양새가 됐다. 향후 백악관의 비핵화 협상은 속도보다는 철저함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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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철저한 비핵화로 방향 전환을 시사한 데엔 북한으로부터 ‘영변 핵 폐기와 +α(사찰)’라는 비공개 약속을 통해 얻은 자신감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협상꾼(deal guy)”이라며 “우리가 막후에서 이뤄낸 성과를 알게 된다면 아주 감동할 것”이라고 진전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방아쇠를 당겨 전쟁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며 “내가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북한과의 전쟁으로 수백만 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인접한 중국과 세계대전으로 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들은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했으며 (핵) 시설과 시험장을 해체하고 있고 더 많은 곳을 그렇게 할 것”이라며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2년 내 비핵화” 제안을 무색하게 한 트럼프 역제안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운데) 등 북한 대표부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운데) 등 북한 대표부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자화자찬이지만 동시에 미국이 대북 군사공격을 준비했으며, 북한이 앞으로도 동일한 상황을 피하려면 비핵화 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우회적 압박도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년이건 3년이건 상관없다’고 밝힘에 따라 철저한 비핵화 초점은 우선적으로는 핵 사찰에 모아질 전망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6일(현지시간) CBS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사찰을) 수용했다”고 확인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국무부가 협상팀과는 별도로 안드레아 톰슨 군축·안보담당 차관 산하에 상당한 규모의 핵기술 전문가들로 사찰·검증단을 꾸리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핵 사찰을 약속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함께 현장 사찰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정상이 핵 신고·검증과 종전선언 빅딜에 집중하는 동시에 비핵화 실무팀은 우선 사찰에 착수하는 투 트랙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북한이 사찰 의사를 밝히자 미국도 ‘일단 살라미 전술이지만 수용은 하겠다. 대신 제대로 된 사찰을 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이라며 “빠른 비핵화를 내세우며 건성건성 넘어가는 게 아니라 신고를 받고, 제출한 자료를 확인하며, 임의적 사찰까지 제대로 된 검증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가 늘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보험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세상의 모든 시간을 가졌고 서둘지 않겠다”며 “어떤 제재도 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는 “안타깝지만 진전이 계속되려면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기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핵화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개의치 않겠지만 대신 대북제재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북한 비핵화 및 북·미 접촉을 놓곤 수차례 입장을 바꾸며 롤러코스터 협상술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데선 초지일관으로 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유예한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서도 “엄청난 돈을 아꼈지만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재개할 수 있다. 장성들이 시작하기 전에 내가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미국 정부가 철저한 비핵화 조치를 구체화하자며 북한과 마주할 때 북한이 성실하게 응할지가 북·미 비핵화 협상의 관건이 됐다. 북한은 과거 핵 사찰에 저항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은 “영변 핵시설의 과거 핵 활동 기록을 모두 제출받는다거나 영변 이외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과 산음동 미사일 연구단지 등 비밀 시설을 포함하는 세부 협상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북한은 IAEA 사찰단에 영변 이외 시설 공개를 끝까지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사찰의 디테일로 향할수록 협상이 까다로워지고 실제 비핵화 과정 역시 수년 이상 길어지는 게 불가피해진다. 이 때문에 백악관이 비핵화 속도에 개의치 않겠다고 선수를 쳤다는 해석도 핵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생산 중단 약속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시한을 해제한 것은 문제”라며 “핵 동결 없이 비핵화 시간이 늘어날수록 핵 보유고만 확장하면서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외교가에서는 협상을 장기화하며 핵 능력 고도화를 위한 시간을 버는 데 능한 북한의 협상 전술에 트럼프 행정부가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전직 외교관은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명확히 한 탄두의 대량생산 지시는 아직 철회된 적이 없다. 지금도 핵 활동은 현재 진행중”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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