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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황교안 움직이자 여권에선 '언어정치' 이낙연 1위로 부상

중앙일보 2018.09.28 00:03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포스트 문재인’ 추석 밥상머리 여론은
 '몽돌 대통령'과 '나무받침대 총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3년 고건 전 총리를 지명하면서 들었던 기발한 비유다. 그는 '개혁 대통령'에 '안정형 총리'를 몽돌과 나무받침대로 비유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론을 표현한 노무현식의 독특한 정치언어였다. 
 

대정부 질문 야당의원 공세에
정중하게 한 방 먹이는 스타일

야당 “구렁이 담 넘어가는 화법”
이낙연 “오랫동안 그려온 정치언어”

야당 친박, 황교안 ‘아웃소싱’ 추진
전·현 정부 총리 묘한 선두권 경쟁

몽돌은 모나지 않은 동글동글한 돌이다. 어디로 구를지 모르니 약간 홈이 파인 나무받침대로 고정해주면 환상의 조합이 될 수 있다. 
 
몽돌대통령과 나무받침대 총리? 청와대에서 고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노무현 대통령. [중앙포토]

몽돌대통령과 나무받침대 총리? 청와대에서 고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노무현 대통령. [중앙포토]

그러나 한국정치에서는 총리가 나무받침대 역할을 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의 정치문화아래선 거의 모든 국정 현안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총리가 그저 그렇고 그런, 존재감 없는 총리 중의 하나로 남게 되더라도 그동안의 정치문화에 비춰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낙연 총리는 서서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이 총리는 선두로 올라섰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데일리안의 의뢰로 알앤써치가 9월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총리는 13.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다음은 황교안 전 총리(12.9%). 두 전·현직 총리 뒤는 ^김경수 경남지사(11.1%)^박원순 서울시장(8.5%) ^이재명 경기지사(7.2%) ^심상정 정의당 대표(5.3%)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5.2%)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5.1%)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4.6%)^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서울시장 후보(3.6%)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2.1%) 등이다. 여론조사 10위 이내 민주당 인사들이 5명을 점하면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안정된 여권과 구도가 불안정한 야권의 지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다.
 
 
 
이 총리가 뜨게 된 이유로 복수의 총리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국회 대정부질문, 둘째는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남긴 방명록이다.
지난 9월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설전을 벌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지난 9월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설전을 벌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①대정부질문에서 뜬 이낙연=지난 9월13일 국회 본회의장.이 총리는 한국당 친박계 김태흠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이날 김 의원은 ‘촛불혁명’이란 표현을 고리로 이 총리를 압박해 들어왔다.
 
^김태흠="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민주당 대표까지 입만 열면 촛불혁명, 촛불혁명 하는데, 총리는 촛불혁명이라 보십니까, 촛불집회라고 보십니까."
 
 ^이낙연="훗날 어떻게 개념을 정리하느냐의 과제는 남아있으나, 저는 개인적으로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흠="사전적으로 혁명은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권력이 바뀌는 것입니다. 촛불집회가 촛불혁명이라면, 비합법적 요소가 있었습니까?"
 
김 의원의 질의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촛불혁명에 비합법적 요소가 있다고 말할수밖에 없도록 덫을 깔았다. 그러나 이 총리는 말려들지 않았다.  
 
^이낙연="일상적으로 큰 변화를 말할 때 ‘혁명적 변화’라는 말을 씁니다. 재작년 겨울부터 작년 봄까지 6개월 동안 광화문 일대 전국에서 벌어진 일을 혁명적인 일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태흠="청와대가 운동권으로 짜여질 때 중심과 균형을 잡아주실 총리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지금 답변하시는 거 보니 물들으신 건지…."      
 
^이낙연="저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의원님께서 '네 생각이 뭐냐'고 하문(下問)하셔서, 저의 졸렬한 생각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정중하게 한 방 먹이는 이 총리식 답변이었다. 이 총리는 야당 의원들이 세게 나온다고 함께 ‘버럭’해버리는 게 아니라 부드러운 돌직구를 날리는 스타일이다.
 김 의원은 이후 몇 가지를 더 캐물었지만 이 총리를 상대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결국 김 의원은 이 총리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았다.  
 
^김태흠=“긍정적으로 말하면 노회하고, 나쁘게 말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답합니다."
^이낙연=“거칠게 표현하는 게 꼭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한마디를 보탰다.  
 
“저의 (답변) 방식은 제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정치언어'의 한 부분입니다.”
 
 이낙연 총리가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총리가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대정부질문은 1948년 제정 헌법(국회의 국무위원 출석요구권 조항)과 국회법(국무위원 출석 답변의무 조항)에 담기기 시작한 '족보' 있는 제도다. 야당의 재래식 무기이기도 하다. 국무총리 이하 정부 각료를 발언대에 세워놓고, 20분간 일문일답을 하며 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20분 전투'에서 이 총리는 이미 작년에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정부질문을 통해 야당 의원이 아닌 총리가 조명을 받게 된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한국당 친박계 박대출 의원과의 문답이 시발이었다.
 
당시 박 의원이 "MBC, KBS 뉴스를 봤냐. 총리가 뉴스는 자주 봐야 하지 않겠냐”고 따지자 “기자 시절(동아일보) 경험을 통해 본능적으로 어느 것이 공정한 보도인지 알고 있으며, 옛날부터 좀 더 공정한 방송을 보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총리의 답변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유튜브 등을 통해 퍼져나갔다. 어떤 건 8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40만 이상 조회수를 올린 것도 여러개다.    그의 '정치언어'는 야당 의원에겐 구렁이 담 넘어가는 것이었지만 지지층에는 카타르시스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②'못난 이낙연' =지지층이 그를 주목하게 만든 또 하나의 계기는 봉하마을에 남긴 방명록이었다. 지난해 10월 19일 이 총리는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뒤 이런 짤막한 글귀를 남겼다.    
 
“나라다운 나라로 사람 사는 세상 이루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못난 이낙연.”
 
'나라다운 나라'는 문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슬로건이다.
 이 둘을 그는 한 문장으로 절묘하게 결합했다. 그리고는 방명록에 직책인 ‘국무총리’ 대신 ‘못난 이낙연’이라고 썼다. 이날 '이낙연 총리'는 장시간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총리실 관계자는 "시기가 정확지는 않으나 이 무렵부터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을 '이니'라고 부르듯이 이낙연 총리를 '여니'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가 지난해 10월19일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의 너럭바위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총리가 지난해 10월19일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의 너럭바위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총리는 방명록에 '당신을 사랑하는 못난 이낙연'이라고 썼다. [연합뉴스]

이낙연 총리는 방명록에 '당신을 사랑하는 못난 이낙연'이라고 썼다. [연합뉴스]

③장-차관에겐 '피곤한 상사'=이런 이 총리에 문 대통령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이 총리가 받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지난 1월 18일~30일 정부서울청사와 정부세종청사에서 이 총리는 8차례에 걸쳐 전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 업무보고를 받은 건 처음이라고 총리실 관계자가 전했다.
 
이 총리는 매주 월요일에는 대통령(주례보고)을, 화요일에는 장관(국무회의)들을, 목요일에는 차관들(국정현안조정회의)을 만난다. 이중 총리위상에 가장 중요한 게 역시 대통령에 대한 주례보고다.  
 
문 대통령은 총리 주례보고를 거의 거르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해외순방 때가 아니면 주례회동을 꼭 해왔다"며 "월요일 피치 못할 일정이 생겼을 때는 일요일로 당겨서라도 주례보고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주례회동에는 보통 7~10개의 쟁점현안이 올라간다. 이 총리는 주례회동과 관련해 "대체로 언론이 큰 문제로 다루는 것에 대한 책임자의 진퇴까지 얘기한다"(관훈토론)고 밝힌 적이 있다.  
 
 화요일 국무회의나 목요일 현안조정회의 때는 장-차관이라도 사정없이 군기를 잡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무회의에서 이 총리가 던진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 한 뒤 멋쩍게 미소를 짓던 장관에게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라고 쏘아붙인 일도 있고, 어떤 장관에겐 “이걸 보고라고 하는 겁니까”라고 깬 적도 있다고 한다. 작년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미숙한 모습을 보여준 류영진 식약처장에게는 “이런 식이라면 (기자들에게)브리핑도 하지 말라”고 해 브리핑 취소소동이 벌어졌다. 답변도 못할 거면서 어떻게 기자들을 만날 거냐는 얘기였다. ‘워크홀릭이라서 더 피곤한 상사’ 스타일과 비슷하다.
  
이낙연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에게 자주 국무회의를 주재하도록 하고 있다. 맨왼쪽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그 옆자리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경록 기자

이낙연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에게 자주 국무회의를 주재하도록 하고 있다. 맨왼쪽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그 옆자리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경록 기자

④호남-민주당 지지층 강세=친문 지지층에서 이 총리를 주목하기 시작한데다 문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상황인 만큼 이 총리가 차기 주자 반열에 올라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이 총리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층만 따로 놓고 볼 때 지지율이 22.3%(여당 1위)로 올라갔다. 지역적으론 역시 호남(25.6%)에서 최고평가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뚜렷한 정치리더가 등장하지 않았던 호남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순위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앞으로 적어도 백번 이상은 더 구도가 출렁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각의 지지기반 및 추세, 흐름을 보는 데는 유용할 수도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20일 도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지사가 20일 도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김경수 지사의 약진도 눈에 띈다. 김 지사는 친노-친문계의 적자답게 민주당 지지층에선 21.9%로 자신의 종합지지율(11.1%)보다 두배 높은 지지를 받았다. 지역적으론 PK(부산·울산·경남)에서 여야를 통틀어 1위(19%)였다. 다만 아직은 부족한 정치적 커리어에 드루킹 사건 재판이 남아 있다는 점이 미래를 유동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박원순 시장은 민주당 지지층에서 3위(11.8%), 호남에서 2위(14.6%)였다. 이 총리와 지지층이 겹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의외로 낮은 지지율(7.2%)이 나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김부겸 장관의 경우 TK(대구-경북)에서는 황교안 전 총리(4.7%)나 홍준표 전 대표(4.5%) 같은 야권 인사들을 제치고 1위(15.1%)에 올랐다. '확장성' 면에서는 강점을 드러냈으나 민주당 지지층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6.2%)을 보이면서 중하위로 밀렸다. 다만 박원순 시장, 김부겸 장관은 추석 전 다른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조사(리얼미터, 8월27~31일)에서는 각각 12.1%와 10.4%의 지지율로 여권 1,3위로 나타났다. (2위는 이낙연 총리 10.7%)
 
야권 인사 가운데 황 전 총리는 한국당 지지층에서 42.7%의 압도적 지지율을 보였다. 지역적으로는 충청(22.2%)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았고, 무연고지역인 TK에서는 지지율이 낮았다.  
황교안 전 총리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황교안 전 총리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황 전 총리는 최근 출판기념회를 열고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유기준 의원 등 자유한국당 친박계 의원 6명이 지난 20일 황 전 총리와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내년 초로 예상되는 한국당 전당대회 출마를 권유하자 "결심이 선다면 상처를 입더라도 나서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정말로 전대에 출마할지는 미지수지만 한국당에서 미래를 그에게 '아웃소싱' 하려는 기류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여권에선 '언어의 정치'를 구사하는 이 총리가 부상하는 양상이다. '문재인의 총리'대 '박근혜의 총리'라는 묘한 경쟁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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