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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인구 1300만 시대 … 거리의 무법자 ‘보행 자전거’, ‘음주 자전거’

중앙일보 2018.09.28 00:03 종합 14면 지면보기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탄 두 시민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횡단보도를 건넌 후 보행자들 사이를 달리고 있다. 자전거의 인도·횡단보도 운행은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되는 ‘불법’이다. [임선영 기자]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탄 두 시민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횡단보도를 건넌 후 보행자들 사이를 달리고 있다. 자전거의 인도·횡단보도 운행은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되는 ‘불법’이다. [임선영 기자]

27일 낮 12시쯤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인도를 쌩쌩 달리던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두 대가 횡단보도에 들어섰다. 자전거 두 대는 길을 건너던 시민 10여 명과 뒤엉켰다. “아, 깜짝이야.” 횡단보도 위의 한 시민은 자신의 옆에 바싹 붙은 자전거로부터 황급히 몸을 피했다. 앞서 걷던 일행도 양방향으로 흩어졌다. 자전거에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다. 직장인 김모(30)씨는 “인도와 횡단보도에서 자전거가 왕이 된 것 같다. 오히려 보행자가 자전거를 피해 다니기 바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자전거 유발 사고 5년간 2만8739건
술 마시고 타도 이전엔 처벌 못해
앞으로 적발되면 3만원 범칙금
인도·횡단보도서 타는 것도 불법

자전거가 인도·횡단보도를 마치 보행자처럼 누비는 ‘거리의 무법자’가 되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자동차·오토바이 등과 함께 ‘차량’으로 분류되는 자전거의 인도·횡단보도 운행은 ‘불법’이다. 단속에 걸리면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된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탄 한 시민이 인도를 달리고 있다. 임선영 기자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탄 한 시민이 인도를 달리고 있다. 임선영 기자

자전거 인구와 공공자전거가 증가하면서 인도를 달리는 ‘보행 자전거’가 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전거 이용자(12~69세, 월 1회 이상 이용자)는 2016년 1330만 명을 넘어섰다. 거리에서 손쉽게 빌려 탈 수 있는 공공자전거는 서울시에서만 2만 대를 운영한다. 보도에 설치된 따릉이 대여소(1400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곧바로 인도를 달리는 시민을 자주 볼 수 있다.
 
자전거는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3~2017년) 자전거가 유발한 교통사고는 2만8739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20.2%인 5816건이 자전거가 사람과 부딪친 사고였다. 인도·횡단보도를 불법으로 달리다가 일으키는 사고도 많다. 경찰청의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자전거 사고의 7.7%(456건)가 자전거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도중에 발생했다. 3.1%(182건)는 자전거가 인도를 통행하는 중에 일어났다.  
따릉이를 탄 한 시민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임선영 기자

따릉이를 탄 한 시민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임선영 기자

경찰청에 접수된 자전거 사고 현황을 보면 인도·횡단보도 위 자전거 운행은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8월 서울 강동구에선 인도를 침범한 자전거에 부딪힌 보행자(여성·82)가 숨졌다. 가해자인 자전거 운전자(남성·59)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88%(면허정지 수준)였다.   
 
‘보행 자전거’와 함께 거리의 무법자가 된 ‘음주 자전거’는 28일부터 단속 대상이 된다.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다 적발되면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된다. 28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도로교통법에는 자전거 음주운전을 경찰이 단속·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신설됐다. 계도 기간을 거쳐 12월 1일 부터 본격 단속한다.   
한 시민이 이달 초 오후 11시쯤 자전거를 타고 인도를 달리고 있다. 임선영 기자

한 시민이 이달 초 오후 11시쯤 자전거를 타고 인도를 달리고 있다. 임선영 기자

하지만 ‘보행 자전거’ 단속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이 일일이 인도와 횡단보도를 지키고 서서 자전거 이용자를 잡을 수 없는 노릇이라 실제 단속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이용자들도 할 말은 있다. 이모(42)씨는 “자전거도로가 있으면 뭐 하느냐. 차와 오토바이가 막고, 길은 끊겨 겁나고 불편해서 못 타겠다”며 “자전거가 다닐 길을 제대로 만들고 탓하라”고 했다.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의 불편은 더욱 크다. 고교생 정모(17)군은 “인도나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고선 집에서 학교까지 가기가 너무 힘들다. 도로를 달리는 게 더 위험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시민의식 개선과 현실에 맞는 법률 정비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정의석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중요한 건 시민의식이다. 우선 자전거를 타는 어른·아이 모두 보행자를 배려하는 매너 교육을 전문기관 등에서 받아야 한다”며 “시민들도 자전거도로에선 자전거 우선이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김홍상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는 “인도를 주행하는 모든 자전거에 범칙금을 부과하면서 실제 단속은 하지 않는 법률을 현실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행자를 크게 위협하지 않는 어느 속도 수준 자전거는 인도 주행을 허용할지 정하는 시민 토론회 등을 열어 이 결과를 법률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선영 기자, 대전=신진호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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