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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학과 인생 결정하는 꼰대 선생님, 미투고발 어렵죠"

중앙일보 2018.09.27 11:00
"상처 입었을 애들이 걱정되더라고요."
"애들? 누구요?" 
"그 쌍둥이…걔네요."
 
학생들의 대답은 취재팀을 놀라게 했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숙명여고 시험 문제 유출 의혹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16일 만난 고교생들은 의혹의 당사자인 쌍둥이 학생의 안위를 걱정했습니다. 다소 의외였습니다. 취재팀은 사태와 관련해 어른들이 아닌, 쌍둥이 학생과 같은 또래인 청소년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인터뷰에는 경기도 고양시 동산고 2학년에 재학 중인 박하나(17)양과 고양 국제고 2학년 권혁진(17)군이 함께 했습니다. 권군은 문제 유출 의혹 뉴스를 보고 처음 떠오른 생각이 '또 하나 터졌네…' 였다고 합니다. 뉴스가 그다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는 건데요. 주위의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숙명여고 사태 이후 박양의 학교에는 고사 본부실에 CC(폐쇄회로)TV가 새로 설치됐다고 합니다. '학교가 이 일을 계기로 변화하려 노력하는구나'라고 느꼈다는군요. 
 
두 청소년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만약 유출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친구가 내 친구라면 어떨 거 같아요?' 라는 질문에 권군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쉽게 욕할 수 없을 거 같아요. 그 친구들을 그렇게 만든 게 있을 텐데, 그 위에 있는 구조라는 게 존재할 텐데, 그걸 이야기하지 않고 그 친구들을 함부로 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도 그런 유혹이 온다면 쉽게 뿌리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반면 박양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똑같이 공부하는데 더 쉬운 방법으로 좋은 점수를 받은 거잖아요.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해도 그 구조에 암암리에 순응해버리는 그런 친구들에게 따뜻한 위로는 사실 해주기 힘들 것 같아요."
 
아직 문제 유출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당사자들을 향한 섣부른 판단은 하면 안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둘은 학생들이 느끼는 '내신에 대한 압박감'에 대해서도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박양은 "학생부 종합전형은 '내가 얼마나 완벽한 3년을 보냈는지' 평가하는 데 중점이 있잖아요. 아무래도 부담감이 큰 편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수시에서는 대외 수상기록 같은 게 상당히 중요한데 대회 일정을 친구끼리 공유하지 않아 마음 상했던 기억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입에 유리한 정보를 친구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학생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겠죠. 박양의 말을 듣고 있던 권군은 또래 친구들과 자신의 현실을 '경마장을 달리는 말'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현 입시제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박양은 "다각면으로 평가한다는 취지에서는 수시제도에 공감해요. 얼마나 공정한지, 얼마나 우리를 잘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요. 입시제도에 학생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됐으면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권군은 계속해서 사회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인 대학 서열화 구조를 말하지 않고는 해당 학생과 학교를 비난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시험 문제 유출 의혹에 관련된 얘기만 하려 했는데, 막간을 이용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스쿨미투'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두 학생 모두 '스쿨미투'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입에서 수시와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중이 커지면서 교사·학생의 관계가 '갑을 관계'처럼 돼 버렸다는 게 둘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안에 교내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고발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SNS에 글을 올리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거지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부터 여학생들의 교복까지…. 사실 학교 안에 있는 성차별적인 요소들은 너무나 차고 넘쳐요. 이번 기회에 스쿨미투가 터지지 않은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도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셨으면 해요."
 
우리 사회는 이런 10대들의 절박한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을까요. '너희가 아직 어려서 그래''그런 건 대학 가서 해도 돼' 등 편협한 시각에 갇혀 그들의 얘기에 귀를 막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한 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글로는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 영상으로 확인해주세요. 10대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주장과 고민을 그들의 언어로 풀어놓고 있을 겁니다. 
 
※이들의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 https://www.youtube.com/channel/UCWnyqTsk86NFkmzranBFkLw?view_as=subscriber
 
'김모씨 이야기' 취재팀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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