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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심층분석] 민노총·보수 협공 받는 文 노동정책

중앙일보 2018.09.26 06:00
■ 민노총, 노동법 개정·전교조 합법화 위해 투쟁 움직임
■ 勞 “표만 보는 민주당” vs 여당 “노동계도 양보해야”
■ 보수도 “문재인 정부와 노조는 일종의 지배연합” 공격
■ 최약층 노동자 위한 사회안전망과 사회적 小타협부터
 
기대가 클수록 갈등도 커지는 법이다. 민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사회’ 약속이 미완이라고 생각한다. 올가을이 민노총 인내심의 마지노선일 수 있다. [연합뉴스]

기대가 클수록 갈등도 커지는 법이다. 민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사회’ 약속이 미완이라고 생각한다. 올가을이 민노총 인내심의 마지노선일 수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지지율 떨어지면 총파업 가능성 높아진다”  
노동계는 단단히 벼르고 있고, 보수 진영은 집중포화를 쏟아 붓는다.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이 사면초가 형국에 갇혔다.
 
정부·여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의 관계는 폭풍전야에 가깝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올 가을부터 (文 정부와 민노총 사이의) 본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문 정부 고용·노동정책의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촛불정국에서 민주당과 민노총은 ‘박근혜 탄핵’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바람을 타고, 정권이 교체됐다. 이명박 정권의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설립, 박근혜 정권의 ‘양대 지침’을 견뎌낸 노동계로선 기대심리가 그만큼 높았다. 실제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노동 존중사회’란 선언을 깔고, 굵직한 공약들을 내놓은 바 있다.
 
민노총과 노동계는 청와대·민주당을 향해 ‘이제 약속을 지키라’는 압박을 가할 태세다.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이란 단일의제에 집중했다면, 앞으론 준비했던 ‘패키지’를 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처한 상황은 열악하다.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소득주도성장은 뭇매를 맞고 있다. 그 파생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는 친(親)노동 정책의 표본처럼 여겨지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문 대통령 지지율은 50%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갈수록 국정 주도권이 흔들리는 와중에 민노총은 ‘계산서’를 계속 내밀고 있다. 그 내역 안에는 노동법 개정,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전교조 합법화 등 노동계의 숙원이 담겨 있다. 핵심은 단결권 강화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것과 직결된 사안이다. 이 숫자가 올라가면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귀족노조’란 꼬리표를 뗄 수 있다.
 
민노총이 잇따라 내미는 ‘계산서’
민노총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가 전교조 합법화다. 그러나 이것이 쟁점화되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지지율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연합뉴스]

민노총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가 전교조 합법화다. 그러나 이것이 쟁점화되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지지율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연합뉴스]

이런 요구를 다 들어주자니, 청와대와 민주당은 난감하다. 민노총 출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노동 탄압은 원천적으로 없앴다. 노동계가 요구했던 상징적 조치들, 이를테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양대 지침 폐기 등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노총) 출신인 한정애 민주당 의원도 “공약을 했어도 법 개정은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한다. 대한민국 (현실) 지형에서 노동계가 원하는 지점과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지점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민노총이 정부·여당 압박을 그만하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길 원한다. 그동안 민노총에 ‘패싱’을 당한 노사정위원회의 확장판이라 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민노총이 합류할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홍 원내대표는 “양대 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에 관한 합의가 어느 정도 된 상태”라고 전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도 “민노총 지도부의 의지가 있다. 10월 12일 민노총 대의원대회를 거쳐 방침이 정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민노총은 아직 참여를 확답하지 않았다. 문성현 위원장은 “민노총, 한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뭐 해주면 오고, 아니면 안 오는 그런 (조건부) 사회적 대화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명분 따지지 말고 들어와서 절차를 밟아서 요구하라’는 뜻이다.
 
민노총 내부 사정은 다소 복잡하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온건파에 속한다. 내부에서는 “대화 국면이 조성되면 개인적으론 들어갈 용의가 있는 분”이라고 평한다. 그러나 민노총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위원장의 의중이 결정적 변수는 아니다. “노동계가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도 나온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민노총이 이미 얻은 것이 적지 않은데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쪽이다. 반면 민노총 등 노동계는 ‘언제까지 이렇게 어정쩡하게 있어야 되느냐’고 부글부글 속을 끓인다. 수면 위에선 고요해 보여도 그 아래는 일촉즉발이다.
 
정부·여당과 민노총이 충돌할 만한 갈등은 쌓일 만큼 쌓여 있다. 뇌관은 대통령의 지지율이다. 노동계에선 “문 대통령이 부동산을 못 잡으면 총파업이 일어날 것”이란 말이 나돈다. 민노총 사정에 밝은 인사의 얘기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시위·집회가 많이 줄었다. 총연맹 단위에서 대규모 파업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문 대통령 지지율 때문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노동계가 요구만 하면 민노총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권이 작년까지 지지율 70%를 보이는 상황에서 치고 들어가면 민노총은 존립 자체까지 영향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미친 집값’을 잡지 못하면 어디까지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그러면 노동조합도 역풍을 염려하지 않고, 힘을 보여주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민노총과의 관계를 더 험악하게 만들 또 하나의 요인은 정책 전환 가능성 때문이다. 조성재 본부장은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대통령의 정치력 발휘가 어려워진다. 지금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간다고 표현되고 있는데 노동계 입장에선 이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완전히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갈 것이라고 우려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실력행사의 개연성이 올라가고 노-정(勞-政) 관계가 더욱 첨예해지는 것은 수순이다.
 
1라운드는 최저임금 인상, 2라운드는 ‘단결권’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왼쪽)은 2017년 문 대통령과 만났다. 민노총은 정부가 2019년 ILO 기본협약에 비준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왼쪽)은 2017년 문 대통령과 만났다. 민노총은 정부가 2019년 ILO 기본협약에 비준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민노총은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는 쪽이다. 협약적 관계로 출발은 했지만 시작부터 스텝이 꼬였다고 본다. 노동계 한 인사는 “(박근혜 탄핵으로 갑자기 정권을 잡은 탓에)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원회 과정을 못 가졌다. 노동정책을 수립하는 단계부터 노동계가 개입할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민노총이 가진 또 하나 불만은 노동정책 설정에 노동계의 목소리가 들어갈 통로가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를 제외하면 관여한 것이 거의 없고, 그나마 지켜진 공약도 최저임금 인상은 산입범위 확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교사 제외, 주52시간 근무제는 휴일노동 중복수당 폐지 등으로 깨진 구석이 있다는 불만이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예전보다 채널이 200배는 많아졌다”고 반박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 연구소 이사장은 “창구는 옛날보다 많아졌다. 그러나 (민노총 입장에선) ‘정책 집행이 가능한 영역과 조율이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위원회 같은 기관엔) 가서 얘기해 봤자 헛방이란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이 사면 받지 못하고 만기 출소한 것도 정부와 민노총 관계를 냉각시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문제도 김상곤 교육부총리에게 맡겼으면 됐는데 여당 내 반대기류가 이를 차단했다고 보는 목소리가 있다.
이재갑 노동부장관 후보자. 민노총은 이명박 정부 노동부 차관 출신인 이 장관 후보자를 그다지 호의적 눈길로 바라보지 않는다. [연합뉴스]

이재갑 노동부장관 후보자. 민노총은 이명박 정부 노동부 차관 출신인 이 장관 후보자를 그다지 호의적 눈길로 바라보지 않는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와 민노총의 1라운드는 최저임금 인상에 집중됐다. 2라운드는 노동법 개정, 전교조 합법화 등 휘발성이 강력한 현안들이다. 김유선 이사장은 “노동법 개정은 하반기 과제다. 대통령 공약대로면 내년 봄 ILO 100주년을 맞아 기본협약을 비준해야 한다. 선·후 관계가 바뀌어도 관계없지만 (정부는 현행 노동법은 ILO 협약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기에) 가능하면 법 개정을 하고 협약을 할 것이다. (노동법 개정이든 ILO 기본협약이든) 단결권과 결부돼 전교조 문제가 깔려 있다. 손질하려면 한두 군데가 아니고, 국회에서 통과 될지도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이 방한해 문 대통령과 만났다. 그러나 협약 비준에 관한 확정적 논의는 없었다.
 
민노총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난 5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때, 격렬하게 충돌한 전력이 있다. 당시 민노총은 지방자치선거 후보캠프 여러 곳을 점거하고 농성했다. 500여 명이 몰려든 국회 앞 시위에선 “산입범위 확대하면 낙선운동”이라고 외쳤다. 공직선거법상 낙선운동은 위법이다. 국회 본관 앞 계단과 분수대에서도 기습시위가 벌어졌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에 따르면 국회 100m 이내 장소에서의 집회나 시위는 금지돼 있다.
 
노동계는 “민주당의 포지셔닝은 표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있는 것 같다. 노동계에서 올 표는 다 왔다고 보는 것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도 노동계보다 중소 영세자영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맞춰 정무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불신한다. 이에 대해 홍영표 원내대표는 “노동계가 (얻은 것을) 당연시하며 (민주당이) 더 많은 것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조금 더 정부와 협력해 새로운 노사정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노동계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협력하든지, 자기들이 양보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10% 조직노동자 위한 정책 세우는 곳”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은 당선자 시절 유덕상 민노총 위원장 대행을 만났다.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은 노동친화적 행보로 출발했지만 훈풍은 오래 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은 당선자 시절 유덕상 민노총 위원장 대행을 만났다.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은 노동친화적 행보로 출발했지만 훈풍은 오래 가지 않았다.

국회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도 정부·여당과 민노총 그리고 J노믹스 반대 진영이 얽혀 있는 전선에 놓였다. 김영주 노동부장관에 대해 민노총 측은 “근로감독국 설치 외엔 특별한 것이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반면 J노믹스에 비판적인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감독권을 강화하고, 사업주 형사처벌을 운운한다. 중립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부 시행령을 노동부가 만드는데 고용주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최저임금 관련 형사처벌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등 노동부 산하 위원회에 친(親)노조 성향 인사들이 대거 진입한 것을 두고 남 교수는 “노동부는 옛날부터 정책이 아니라 정치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다른 부처에 비해 유난히 심했다. 노동자들 자체가 정치를 하니까 노동부도 같이 휩쓸려 왔다. 임금체계 개선, 공공부문 성과 등급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에는 노동부가 큰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정책을 세운 사람은 물을 먹인다. 10% 조직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세우는 곳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혹평했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도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정부기관인 폴리텍대학 이사장에 이석행 전 민노총 위원장이 임명된 자체가 이 정부의 교육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의사결정은 정부가 한다. 위원회는 자문일 뿐이다. (비정규직과 특수 고용노동자 등 일정기간 고용보험 납부 실적이 있는 노동자에게 노조를 대신할) 노동회의소, (골프장 캐디·퀵서비스 배달원·대리기사·학습지 교사·보험설계사 등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 등에 대한 공약을 문 대통령이 직접 얘기해 놓고 당선 이후에는 전혀 얘기된 바 없다”고 공격한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이재갑 노동부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민노총은 마뜩잖은 시선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차관을 지냈고, 당시 국회 법안소위에서 노동계에 불리한 법안에 관여했다고 여긴다. 이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동정책에 관해서도 노동계와 보수 진영은 다른 각도에서 문재인 정부를 협공하고 있다. 노동계는 “참여정부 시절, 노·정 간 직접 대화가 많았다. 화물연대 파업 때, 건설교통부와 화물연대가 노·정협의를 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를 위한 장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정책 조정을 할 장치가 없다. 청와대 내에서 조율할 사람이 없다”고 본다.
 
사실 노무현 정부와 노동계의 밀월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노동계 간부들을 만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노동계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발해 취임 6개월 만에 철도노조가 총파업으로 응수했다. 이후 참여정부 정책은 노·정 파트너십이 아닌 일자리 중심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노총과도 갈등이 빚어졌다.
 
이를 두고 민노총과 다른 방향에서 정부 고용·노동정책에 비판적인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지지층과 얼굴을 붉히더라도 국가를 생각했다. 문 대통령도 지지율이 높았을 때, 정책 전환을 했어야 되는데 떨어지니 더더욱 민노총 등 제도권 노동에 발목 잡힐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정책 기조를 선회하기란 어렵다. 문 대통령의 ‘우(右) 클릭’은 핵심지지층의 이탈을 부를 수 있다. 노무현의 좌절을 통해 얻은 ‘학습효과’라 할 수 있다. 2019년도 초(超)수퍼예산안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전년 대비 9.7%가 오른 470조5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이 중 일자리정책에 23조5000억원(전년 대비 22% 증가)이 투입된다.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 기조로 끝장을 보겠다’는 결연함이 엿보인다.
 
보수 진영 “문 정부와 노조는 지배연합”이라고 비판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이 광주에 지을 공장 부지를 살펴보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의 성사 여부는 사회적 타협의 시금석처럼 여겨진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이 광주에 지을 공장 부지를 살펴보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의 성사 여부는 사회적 타협의 시금석처럼 여겨진다. [연합뉴스]

이런 문재인 정부의 스탠스는 보수 진영에 공격 빌미를 제공한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특권노조 강화정책”,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문재인 정부와 노조는 일종의 지배연합”이라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2012년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부산 사상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김 소장을 초빙해 고용·노동정책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 김 소장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누구보다 비관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조와 민주당이 결합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노동=약자니까 보호대상’이라고 본다. 유럽 노동조직과 달리 우리 노조는 ‘신(神)의 직장을 추구하는 지대(地代)추구자들이다. 이런 지대추구적 조직노동과 일반 노동을 구분 못하고 있다. 민노총 상근자만 해도 365일 광화문 점거가 가능하다. 자영업자는 그렇게 못한다. 선거공학적으로 밑(하층노동자)에서 아무리 아우성쳐도 (노조의 지지가) 집권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태경 의원은 “소득주도성장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 부각됐지만 공공부문 확대가 공공노조를 더 강화시켜 주는 정책이다.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도 연쇄효과로 안정적 일자리의 소위 ‘귀족노조’의 임금을 더 올린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폐해는) 노동계급의 고착화다. 현 정부는 계급을 없애자고 해놓고, 신(新)계급을 만들었다. ‘귀족 노동자’는 지배계급”이라고 규정했다.
 
신보라 의원도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근절하겠다는데 노조 채용비리는 눈감고 있다. 고용세습에 관해 단체협약에서 특권을 주기도 한다.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은 명백히 공정 채용을 가로막는 조항이다.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노사 자율로 해결하기 바란다’고 얘기했다. 반면 SPC(파리바게뜨) 직접 고용 문제 때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음에도 ‘90일 안에 해결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기준이 다르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고 주장했다.
 
신세돈 교수는 “노동정책 현장감이 떨어진다. 자본생산성보다 특히 노동생산성을 올려주는 방향으로 국력이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급을 타파해서 노동 유연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국제 경쟁력이 확보되고, 이익이 축적될 때 소득주도성장도 성공할 것이란 논리다. 그 선결 조건으로 하태경 의원은 “(10% 조직노동자)를 어떻게 해체하고 약화시키느냐”라고 본다. 그러나 하 의원부터 “실천적으로 잘 안 된다”고 어려워한다. 역사를 봐도 희망과 현실은 별개임을 알 수 있다.
 
민노총 등 노조는 보수 정권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줬다. 조성재 본부장은 “이명박 대통령 때,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펴면 현대자동차 노조 힘이 빠질 줄 알았는데 수당 하나 신설해 간단히 우회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양대 지침(저성과자 해고를 담은 공정인사지침과 공기업·공공기관 성과연봉제의 발판이 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강화)을 냈다가 강성 노조가 아닌 노동계 전반의 저항을 불렀다. 이것이 정권 몰락의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즉 1차 노동자(대기업·공공부문 등)의 과보호를 제거하면 노동시장이 정상화될 것이란 판단은 환상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조 본부장은 “강제로 바람으로 벗길 수 없고, 햇볕으로 대하는” 노동 버전의 ‘햇볕정책’을 언급했다.
 
광주형 해법도 좌초? “현대차와 노동계 대화해야”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 개편된다. 민노총의 참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 개편된다. 민노총의 참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속도감이 떨어지고, 북유럽 같은 대타협의 역사적 전통이 없어도 사회적 대화가 현실적 대안이라는 관점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정착은 그 가늠자에 해당한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공동 투자해 연봉 4000만원 수준의 일자리 1만2000개를 만드는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다. 그러나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의 반대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민주당 호남 기반 의원들이 현대차 노조를 설득하지 않고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도 바른미래당 대표 경선 때 광주에 가서 “왜 여러분의 일자리 기회를 현대차 노조가 뺏어가는데 싸우지 않느냐”고 역설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원인 분석은 다르다. 김유선 이사장은 “현대자동차가 500억원을 출연하고 ‘그 다음은 모른다, 광주시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광주시가 자동차에 관한 노하우나 경영능력이 전혀 없을 것이다. 500억원을 투자해도 완성차 회사로 보고 접근하지 않으면 지속가능이 어렵다. 하청공장 비슷하게 운영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사이에 낀 민주당의 관점은 결이 다르다. 한정애 의원은 “광주시의 의지가 강하다. 광주 노동계와의 접점이 찾아지는 지점에서 일이 진행될 것이다. 8부 능선은 넘은 것 아닌가 싶다. 노동계도 지속가능한 일자리 시행이 의미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도 “노동계의 마지막 결단만 남기고 있다. 노동조합으로서 쉽게 결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한국의 산업경쟁력이 한계에 와 있고, 일자리도 잠재력을 잃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노동계가 대승적 결단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성현 위원장은 “하려면 광주시가 아니라 광주 노동계와 현대자동차가 대화해야 한다. 노사가 어떤 조건을 결정해야 하는데, 전부 이용섭 광주시장하고만 얘기하려 한다. 울산 노동자가 뭐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설령 뭐라 해도 광주에서 하면 된다. (광주형 일자리의 지지부진은) 현대자동차와 광주 노동계가 불신하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사회적 대화를 거치는 타협이 어려운 주된 이유는 민노총 의사결정의 복잡성도 작용한다. 민노총의 ‘민주적’ 결정구조가 의사결정을 느리게 만든다. 조영재 본부장은 “현장 의견을 받아서, 간부들이 모여서 결정을 하니까 실기할 때가 많다. 민노총 내 다양한 계파 의견이 합치되는 것도 무리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도 정부가 굉장히 기다려줬다. 그러다 민노총이 ‘기다려라’ 그러다 시간이 갔다. 지나치게 민주성을 가지다보니 리더십이 취약하다. 리더십을 발휘한 책임 있는 타협이 안 보여 아쉽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사회적 타협의 희망적 요인도 포착된다. 바깥에선 어떻게 볼지 몰라도 민노총 내부의 변화 흐름이 보인다. 현대차노조의 하후상박형 임금 인상안(당초의 7.4% 인상 요구를 5.3%로 낮추는 대신, 차액 2.1%는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근로자 연봉에 보태라는 일종의 연대임금제)에 관해 조 본부장은 “실질 효과는 별로 없어도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입장에서 굉장한 노선 변경”이라고 분석한다. 대기업 노조가 선도 투쟁으로 쟁취하면 그 아래 중소기업, 하청회사 직원들이 혜택을 받는다는 노조활동의 30년 노선을 수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민노총도 노조 이기주의에 대한 시각을 의식하고, 고립을 두려워한다는 증거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민노총과 보수 진영 사이에 낀 채로 중심을 못 잡고 표류할수록 죽어나는 쪽은 경제적 최약자층이다. 중공업 분야 중소기업 경영자는 익명을 거듭 당부한 다음에야 속마음을 털어놨다.
 
“4차 산업, 자동화 AI(인공지능) 다 좋다. 그런데 어떻게 위기를 탈출하란 말인가? 자동화협력기금? 결국 사람이 줄어든다. 동남아시아에 투자할 유혹에 흔들린다. 30년 동안 사업했다. 휴가 한 번 못 갔다. 명품도 모른다. 평화시장 셔츠만 입었다. 그렇게 살았는데 (기업의) 체력이 탕진됐는데(정부는) 뛰라고 한다. 산소통이라도 달라. 나는 통계 모른다. 그래도 현실이 어렵다는 것은 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선택 받은 노동자만 좋다. 현장 생산성은 떨어지고 있다. 할당제가 아니라 시간제이지 않는가. 직원들을 일본에 견학시켰는데 노동 강도를 보더니 다음부터 안 간다고 하더라. 노동은 심리다. 가장 낮은 수준의 노동생산성에 전부 맞춰진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초봉이 4399만원(9년 연속 공기업 1위)이라고 하더라. 노동생산성과 기술력에 맞춰 차등 지급하는 것이 효율성이고 유연함 아닌가. 주52시간제를 하니 아주머니 직원이 울면서 ‘30만원이 사라지면 생활이 안 된다’고 하더라. ‘일 더하게 해 달라’고 우는데 나는 ‘법 어겨서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대타협? 소(小)타협부터 쌓아 가야
성동조선, STX조선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엄혹한 환경에서 순환 무급휴직을 받아들여야 했다. [연합뉴스]

성동조선, STX조선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엄혹한 환경에서 순환 무급휴직을 받아들여야 했다. [연합뉴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9월 7일 담화문을 냈다.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반대하는 노조 주장을 반박하는 게 목적이었다. ‘해양사업은 왜 수주를 못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강 사장은 “수주를 하기 위해선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와 경쟁하는 중국·동남아 업체와의 가장 근본적 차이가 바로 인건비다. 현대중공업의 1인당 월평균 인건비는 약 520만원이다. 중국 조선소 1인당 월평균 인건비는 1만 위안(약 169만원)이다. 싱가포르 업체에서 고용하는 인도 등 제3국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약 80만원에 불과하다. 해양산업본부의 총 원가 중 인건비 비중은 약 20% 수준이다. 중국은 6%, 싱가포르는 3% 수준에 불과하다. (…) 수치까지 언급하며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는 이유를 여러분(노조)이 일야야 한다. 아무런 대책도 희생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의 노조 태도는 회사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문성현 위원장은 “노조가 없는 90% 노동자의 노동유연성은 지나치게 유연하다. 조선업 불황에서 노조 없는 비정규직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금호타이어, GM, 성동조선, STX조선 등 밖에 나가면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40% 구조조정안을 권고 받은 STX조선은 6개월 무급 순환휴직, 성동조선은 2년 4개월(28개월) 무급 휴직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벼랑끝 기업들을 직접 돌아본 뒤, 문 위원장은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노동 양극화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좌우 양쪽에서 ‘퍼주기’라고 효용성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아닌 2차 노동자(중소기업·하청업체 직원), 실질적 자기 노동자인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청년 구직자 등의 의사를 청취하는 장치가 절실하다. 한정애 의원은 “4대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노동부의 현안”이라고 말했다.
 
조영재 본부장은 “사회적 대타협이란 용어부터 딴지를 걸겠다. 어느 순간 어느 한쪽이 개과천선할 문제가 아니다. 소(小)타협, 스몰딜부터 연속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적 한계도, 관성도 있으니까 긴 호흡으로 작은 것부터 쌓아서 흐름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사회적 대화를 독점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국회가 주도할 수도, 정부와 노동계가 직접 대화할 수도 있다. 인내심을 갖고 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민노총 포비아’와 소득주도성장 회의론 사이에 끼어 있는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정책의 길 찾기 시작점이기도 할 터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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