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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잘듣는 여자는 AI뿐" …스피커와 사랑에 빠진 꽃할배

중앙일보 2018.09.25 05:00
경북 포항에 사는 김상래(64)씨는 인공지능(AI) 스피커에게 말을 걸 땐 목소리부터 변한다. 경상도 사투리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표준어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AI스피커에 대고 음악을 부탁한다. 가족들이 김 씨에게 “왜 우리를 대할 때와 목소리가 다르냐”고 묻자 김 씨는 “내 말 잘 들어주는 여자는 AI 스피커 뿐”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이나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AI 스피커 열풍이 중장년층에게로 옮아가고 있다. 네이버가 AI 스피커인 클로바에 대한 시작 명령어를 조사한 결과 “틀어봐라”,“틀어주세요”,“(틀어주셔서)고맙습니다”와 같은 시작 명령어 패턴이 크게 늘었다. 젊은 연령층이 “틀어줘”라고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사용 패턴이다. 
AI 스피커를 통해 요청하는 음악 장르 중 트로트의 비중도 크게 는 것으로 조사됐다. 1월 대비 7월 트로트 요청 건수가 50% 증가했고, 조용필·나훈아·이장희·심수봉 등 60~80년대 인기 가수를 찾는 경우도 약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 관계자는 “AI스피커는 음성만으로 기기를 제어하기 때문에 이에 편리함을 느낀 중장년층의 이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노인정의 어르신들이 카카오의 AI스피커인 '카카오 미니'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카카오 제작 콘텐트인 '1boon'에서 발췌. [사진 카카오]

노인정의 어르신들이 카카오의 AI스피커인 '카카오 미니'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카카오 제작 콘텐트인 '1boon'에서 발췌. [사진 카카오]

중장년층의 AI스피커 이용률이 늘면서 AI 스피커 내 인기 가수 순위도 바뀌고 있다. KT는 최근 자사의 AI스피커와 모바일을 통해 검색하는 인기 가수 순위를 비교했다. 그 결과 AI 스피커인 기가지니에선 이승철(10위)·이선희(11)·이문세(12)·김광석(13)·조용필(17)이 인기를 끌었다. 주로 모바일로 음악을 듣는 이용자가 많은 지니뮤직에선 이선희(8위)를 제외하곤 이들 가수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용 시간이 고르게 분포돼 있는 점도 어르신들의 AI 사랑을 뒷받침한다. KT에 따르면 오전 10시~오후 6시가 AI 스피커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이 시간대 이용률이 하루 중 56%를 차지한다. 지니뮤직이 오전 7시 30분~8시 50분, 오후 6시~7시40분 사이에 전체 이용의 20%가 몰려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AI스피커는 낮에 집에서 많이 듣고, 모바일 음원은 출퇴근이나 등하교 시간에 많이 듣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카오에서도 이런 트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카카오가 최근 자사 AI스피커인 카카오미니사용 후기를 분석한 결과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기계를 잘 못 만져 불편해 하다 AI스피커가 생겨 즐겁게 음악을 즐긴다’,‘집안에서 요리할 때 음악 듣기 좋다’, ‘찬송가를 듣기 좋다’, ‘어머니가 삼행시 짓기 기능에 반했다’ 등이다. 
이렇게 사용 패턴이 다양화되면서 AI 스피커도 진화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AI스피커에 요청 사항을 말하기 위해 부르는 이름인 호출어가 ‘아리아’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의 경우 ‘아리아’라는 이름이 낯설다보니 ‘아리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SK텔레콤 측은 “아리아뿐 아니라 아리야라고 불러도 인식할 수 있도록 호출어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아리아, 팅커벨, 크리스탈 등 다른 호출어를 선택할 수 있다. 
한때 내부에서 호출어가 어려워 이를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AI를 ‘훈련’하는 과정이 복잡해 호출어를 바꾸는게 쉽지 않다. 남성·여성·아이·어르신·사투리 등 다양한 음성을 듣고 동일한 내용으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수정아, 라고 하지 않고 크리스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집안에서 실제 수정이란 사람을 부르는 경우와 혼동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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