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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처음이라 실수했어, 미안해"라고 말했다면

중앙일보 2018.09.24 11:01
[더,오래] 서영지의 엄마라서, 아이라서(5)
아빠는 무뚝뚝한 성격으로 나를 "우리 딸"이라고 불러본 적도 없다. 20대까지는 그런 아빠한테 많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게 느껴진다. 지금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상담자 역할을 해주신다. 사진은 내가 6개월 때 아빠가 놀아주는 모습. 아빠는 지금도 돌이 안 된 작은 아기를 보면 한손에 올려 놀아주신다. [사진 서영지]

아빠는 무뚝뚝한 성격으로 나를 "우리 딸"이라고 불러본 적도 없다. 20대까지는 그런 아빠한테 많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게 느껴진다. 지금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상담자 역할을 해주신다. 사진은 내가 6개월 때 아빠가 놀아주는 모습. 아빠는 지금도 돌이 안 된 작은 아기를 보면 한손에 올려 놀아주신다. [사진 서영지]

 
지난번 ‘감정에 머물러주기’ 글을 읽은 지인의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관련 기사: 싸우고 온 아이에게 엄마가 꼭 해줘야 할 한마디) 그중 한 후배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얘기인즉슨, 본인은 꽤 클 때까지 많이 싸우고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엄청 맞고 왔더란다. 그런데 어머니가 맞고 왔다고, 혹은 학교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고 당신 감정에 대한 걸로 두고두고 이야기했던 것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성인이 되고 보니 상처로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셨기에 30이 넘은 나이까지 아픔으로 간직했을까. 어린 아이가 아닌, 성인이 된 아들은 20년 가까이 된 상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사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렇다.
 
찬호(가명)는 30대 초반의 미혼 남성이다. 어릴 때부터 골목 대장 노릇을 했던 찬호는 중2까지 소위 ‘일진’ 무리와 어울렸다. 체구가 크거나 운동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순전히 성격이 강하고 기가 셌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옆 반의 덩치 큰 아이와 크게 싸움이 붙었고 일방적으로 맞다시피 했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에 상처가 나고, 교복 단추가 뜯길 정도로 맞았다. 아픈 걸 떠나서 자존심이 너무 상해 힘들었다. 선생님은 나중에 싸움을 알고 나서 찬호를 불러 뺨을 때렸다. 평소 친구들을 때리고 다니던 이미지의 찬호만 심하게 혼낸 것이다. 그날 찬호는 집에 와서 잠만 잤다. 어머니가 그 일을 알게 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어머니는 이후 “네가 그때 맞고 왔는데 말도 안 하고 잠만 자서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왜 말을 안 했냐, 나중에 알고 너무 속상하고 분했다”는 것과 “네가 그렇게 맞았는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너를 그렇게 혼내고 뺨을 때렸냐. 너무 분하다”는 내용의 얘기를 자주 했다.
 
찬호의 속상함에 대한 공감이나 위로 보다는 어머니의 분함과 속상함, 선생님에 대한 원망 같은 감정을 쏟아낸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찬호는 너무 힘들었다. 엄청난 상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찬호는 그 이후 사춘기를 꽤 오래 겪었다. 친구들과 사이도 멀어졌고, 공부나 운동 등 모든 일에 의욕이 없고 재미를 못 느꼈다. 그때를 생각하면 변기에서 물이 내려갈 때 생기는 회오리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은 좋은 분이셨고 물질적으로 모자람 없이 자랐지만 사춘기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아버지는 엄했고, 어머니는 자상한 분이셨지만 마음에 공감해주기보다는 공부하라는 말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가고 새 친구들을 사귀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졌다.
 
엄마 역시 표현은 부족했지만 행동으로 사랑을 듬뿍 주셨다. 내가 돌이 되기 전, 날이 추웠는지 코트 안에 날 안고 뽀뽀하는 모습을 아빠가 찍어주셨다. 엄마와 앞으로 '감정 대화'를 나누며 살고 싶다.

엄마 역시 표현은 부족했지만 행동으로 사랑을 듬뿍 주셨다. 내가 돌이 되기 전, 날이 추웠는지 코트 안에 날 안고 뽀뽀하는 모습을 아빠가 찍어주셨다. 엄마와 앞으로 '감정 대화'를 나누며 살고 싶다.

 
찬호는 20년 가까이나 된 일을 글로 옮기는 지금도 불쾌하고 힘든 감정이 올라온다고 했다. 찬호가 속에서 아직 불편한 감정이 남아있다는 걸 정확하게 안 건 지난해였다. 여러 일이 겹치면서 우울증세가 왔고 상담 치료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 차근차근 상처를 돌아보게 됐고, 그때 그 사건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돌이켜보면 당시 그 사건은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패배한 첫 사건이었고, 또 찬호가 피해자임에도 죄인처럼 취급당했던 일이었다. 아팠고, 너무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누구한테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했다. 그 이후에 사춘기 등 어려운 시기가 이어졌기 때문에 그 사건의 의미가 컸을 것이다.
 
상담 치료 과정에서 인형 역할극을 했다. 조그만 인형을 작은 찬호라고 생각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역할극이었다. 찬호는 본인이 인형에게 한 것처럼, 그때 누군가가 찬호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보듬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상담 후 찬호는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엄마, 그때 엄마가 그랬는데 나 되게 힘들고 아팠어.” 어머니는 기억을 잘 못 하시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미안해하면서 사과하셨다고 한다. 생각처럼 속이 시원해지거나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원망했던 것도 아니고 사과를 바랐던 것도 아니라서 그렇게 지나갔다. 다만 내가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상처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는 걸 보니 인간은 정말 복잡한 동물이구나 싶었다. 모든 사람이 성장 과정 중 어느 한 부분에서는 상처가 있을 텐데 나중에라도 그걸 잘 정리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겠구나, 다들 아픈지도 모르고 지나치지 말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예전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가 바로 수용하고 사과한 점이다. 비슷한 경험으로 “예전에 이러이러해서 아빠 혹은 엄마 때문에 서운했어”라고 했을 때 우리 부모님은 “네가 ~~~할까 봐 그랬지” 하며 사과보다는 당신 입장을 설명하는 데 그쳤다.
 
물론 나도 사과를 받으려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찬호 어머니처럼 내 감정을 받아주는 말씀을 해주셨으면 어땠을까, 부모님과 나누는 ‘감정 대화’에 대한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번 글에 대한 피드백 중 한 엄마의 댓글이 떠오른다. “저는 아들한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잘못하고, 실수해. 그래서 미안해’라고 솔직히 말해줬어요. 제가 잘못했다 싶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아이와 감정 교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마음의 치유가 필요할 때 누군가가 저를 위로해주는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도움말: 정현숙 달팽이상담센터소장
부모가 본인의 감정 표출을 먼저 하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사진 svgsilh]

부모가 본인의 감정 표출을 먼저 하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사진 svgsilh]

 
부모가 어떤 일에 대해 자식의 감정을 수용하기보다 본인의 감정 표출을 먼저 하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전 생애 발달 과정 중 가장 신비스러운 경험입니다. 한편으로 아기를 출산하고 돌보는 과정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또한 피할 수 없는 부모들의 숙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 아기를 마주한 순간 대부분의 부모는 완벽한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기를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다짐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생각보다 자주 실수를 하고, 심지어 그것이 자녀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만큼 자녀도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많은 실수를 용서하고 잊어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성장한 자녀가 부모에게 자신이 받은 상처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 자녀는 부모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기보다는 자신이 참 힘들었고 슬펐고, 서운했고,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부모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잘못을 들추어내서 부모를 괴롭히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를 수치스럽게 하거나 상처를 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고 견디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속상함을 이해해 주고 위로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것입니다.

혹 부모님이 깊은 통찰이 있어서 자녀의 고통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공감하며 깊이 사과하고 자녀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이에서 더 좋은 치료적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 없는 사과는 자녀의 마음을 공허하게 할 뿐입니다.

자녀가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했을 때, 부모가 자녀의 고통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 없이 자신의 감정을 우선 표출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게 되면 자녀는 또다시 상처를 입고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더는 부모에게 자신의 상처를 노출하거나 상한 마음을 개방하지 못하고 마음을 닫게 될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지속적인 방치와 학대가 있을 경우, 또는 부모님의 민감성이 많이 떨어져서 자녀의 고통스러운 신호를 반복적으로 무시할 경우, 부모에게 장기적인 심신의 결함이 있을 경우(우울, 강박 등의 심리적 증상, 신체 장애 등) 등과 같은 상황에서는 자녀가 성장하고 나서도 자녀의 사회적응력, 대인관계, 심인성 질환, 그밖에 정신적 고통 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녀가 부모의 민감하지 못한 태도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상처받은 모든 자녀가 성인이 되어 그 상처로 인해 반드시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대부분의 자녀가 부모님의 사랑을 믿고, 자신의 부모님을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자녀 스스로 자신을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부모님을 용서하고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성장하면서 스스로 알아차리고 치유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극복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이러한 능력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합니다.
 
※ 사연을 받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딸로, 며느리로 아이를 키우면서 닥쳤던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냈거나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아이와 관련한 일이라면 어떤 주제라도 좋습니다. 그 이후로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그 사건을 겪으며 느낀 생각과 깨달음, 그로 인한 삶의 변화 등을 공유해주세요. 같은 상황을 겪는 누군가에게는 선배 엄마의 팁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영지 기자의 이메일(vivian@joongang.co.kr)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실 때는 이름연락처를 꼭 알려주세요. 사진사진 설명을 함께 보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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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지 서영지 더,오래 팀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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