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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 발표회장에 나타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모습. 그가 현대(現代)라는 이름을 처음 쓴 건 1946년 자동차 정비공장인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차리면서다. [중앙포토]

신차 발표회장에 나타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모습. 그가 현대(現代)라는 이름을 처음 쓴 건 1946년 자동차 정비공장인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차리면서다. [중앙포토]

‘왕(王) 회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정 회장이 건설사(현대건설)를 먼저 세운 뒤 조선업(현대중공업) 등 중후장대 산업으로 그룹을 성장시킨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현대(現代)라는 이름을 처음 쓴 건 자동차부터다.  
정 회장은 1937년 쌀 가게인 경일상회를 차렸다. 40년에는 자동차 수리공장인 아도서비스를 인수해 운영하게 된다. 광복 직후인 46년 새로운 자동차 정비공장을 여는 데 이때 이름을 ‘현대자동차공업사’로 짓는다. 현대건설의 전신인 현대토건(47년 설립)보다 1년 먼저 ‘현대’라는 이름을 쓴 것이다. 67년 현대자동차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국산 자동차 신화를 창조한다.  
국산 고유 모델의 자존심 포니와 엑셀 못지 않게 정 회장과 인연이 깊은 차종은 ‘소나타(SONATA)’다. 현대차는 85년 기존 중형차인 스텔라를 개량해 소나타(Y-1)를 내놓는다. 그러나 품질 관련 루머로 골머리를 앓았다. 소나타가 운행중 자주 불이 난다는 소문 때문이다. 실체가 없었지만 ‘불나타(불났다)’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썼다.  
 
현대자동차는 1985년 기존 중형차인 스텔라를 개량해 소나타(Y-1)를 내놓는다. 품질 관련 루머로 골머리를 앓는데 ‘소(牛)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까지 듣는다. 결국 경음(된소리)으로 바꿔 ‘쏘나타’로 부르게 된다. 88년 완전히 새로운 모델인 Y-2부터는 ‘쏘나타’란 이름으로 출시된다. [중앙일보 1985년 11월 6일 10면]

현대자동차는 1985년 기존 중형차인 스텔라를 개량해 소나타(Y-1)를 내놓는다. 품질 관련 루머로 골머리를 앓는데 ‘소(牛)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까지 듣는다. 결국 경음(된소리)으로 바꿔 ‘쏘나타’로 부르게 된다. 88년 완전히 새로운 모델인 Y-2부터는 ‘쏘나타’란 이름으로 출시된다. [중앙일보 1985년 11월 6일 10면]

정 회장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건 ‘소(牛)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이다. 그는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본인이 회장을 맡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행사에 소나타를 자주 타고 다녔다. 차 이름을 결국 경음(된소리)으로 바꿔 ‘쏘나타’로 부르게 된다. 비공식적으로 ‘소나타’에서 ‘쏘나타’로 개명된 채 팔리게 된 것이다. 88년 완전히 새로운 모델인 Y-2부터는 아예 ‘쏘나타’란 이름으로 공식 출시된다.
정 회장과 쏘나타의 인연은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던 92년 다시 이어진다. 최고급 대형차인 그랜저를 타고 다니던 정 회장은 재벌 이미지를 씻고자 중형차 쏘나타를 애용하며 대선 현장을 누비게 된다. 현대차는 동생인 ‘포니 정’ 정세영(1928~2005) 회장에 이어 정주영 회장의 아들인 정몽구(80) 회장과 손자인 정의선(48) 수석부회장이 맡은 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하게 된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저절로 고쳐졌다“며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을 ‘자동차 박사’라고 불렀다. 사진은 2005년 정 회장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김 회장. [중앙포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저절로 고쳐졌다“며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을 ‘자동차 박사’라고 불렀다. 사진은 2005년 정 회장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김 회장. [중앙포토]

현대가(家)에서 자동차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또 있다. 바로 김영주(1920~2010)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이다. 김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정희영(1925~2015) 여사의 남편이다. 김 회장은 40년대 초 자동차 수리공장 아도서비스를 운영하던 정 회장을 만나 여동생을 소개받았다. 현대건설 부사장, 금강개발 사장, 현대중공업 사장, 현대엔진공업 회장을 지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울산철공을 창업해 회사명을 한국프랜지공업으로 바꿔 운영했다.  
정주영 회장은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저절로 고쳐졌다”며 김 회장을 ‘자동차 박사’라고 불렀다. 2001년 정 회장 별세 이후 현대가 모임을 주도하는 등 10년 가까이 집안의 ‘큰 어른’ 역할도 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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