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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시속 50㎞로 속도 냈는데, 비핵화는 10㎞ 불과

중앙선데이 2018.09.22 01:00 602호 6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9·19 평양선언’ 전문가 좌담
지난 18~20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실질적 출발점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2라운드 개막의 성격이 짙다.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이 담긴 9·19 평양공동선언을 바탕으로 뉴욕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조만간 북·미 고위급 실무협상도 재개될 전망이다. 남북 정상은 평양선언에서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 경제협력 시간표를 제시했고,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도 채택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북, 미국 신뢰 얻으려면 실천 필요
여건 안 갖춰지면 경협도 불가능
과거 정부 정책 존중해야 국민통합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
북·미 협상 되살린 점은 평가할 만
낙관은 금물, 철저한 안보 유지 필수
한국, 중재자 아닌 촉진자 역할 해야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
군사합의, 북 골칫거리 단숨에 해결
서해 비대칭 완충구역, NLL 무력화
비행금지구역은 한·미 작전에 영향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중지를 담은 군사합의서에 대해선 논란도 적잖다. 평양선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향후 비핵화 협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중앙SUNDAY는 21일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가나다순) 등이 참석한 좌담회를 열고 이를 짚어봤다. 좌담은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 사회로 진행됐다.
 
21일 본사 회의실에서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왼쪽부터) 등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의 향후 과제와 전망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21일 본사 회의실에서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왼쪽부터) 등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의 향후 과제와 전망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북 결심하면 올해 종전선언도 가능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총평을 하자면.
김천식=“북한 비핵화 진전은 없이 우리 방어 능력만 약화된 상황이다.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교류, 이산가족 문제 등도 핵문제의 확실한 진전이 담보돼야 실현될 수 있다. 평양선언을 보면 우리 정부는 선(先) 신뢰 구축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에 2007년 10·4 선언의 명예회복을 추구하는 듯한데, 이 또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진척이 없었던 것 아니냐.”

신각수=“이번 회담에서 가장 역점을 둬야 할 게 비핵화였는데 정부는 이를 남북관계 차원에서 구동하겠다는 전략을 썼다. 하지만 남북관계에서 시속 50㎞ 속도를 냈다면 비핵화에선 10㎞밖에 못 간 모습이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도 비핵화와 남북관계가 동시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원칙이 지켜지지 못했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남북관계 개선 방안도 비핵화 원칙과 충돌하고 국제적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 적잖다. 다만 북·미 협상을 되살렸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신원식
="비핵화의 함정에 빠진 느낌이다. 훨씬 중요한 우리의 안보와 더 낮은 가격의 비핵화가 등가가 돼버렸다. 비유하자면 100만원짜리 TV를 한 달 뒤에 사는데 1000만원을 미리 준 격이다. 하지만 이 가게는 한 번도 제대로 배달한 적이 없지 않나. 평양회담도 이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비핵화 합의는 어떻게 평가하나.
신각수="비핵화는 주고받기를 해야 하는 만큼 포괄적 로드맵이 중요한데 북한은 일부 카드만 내놓고 미국과 줄다리기를 계속하려는 모양새다. 또 비핵화의 출발점은 신고와 검증인데 신고 부분은 아예 빠져 있다. 고농축우라늄에 대한 언급도 없다. 무엇보다 한국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 비핵화의 촉진자 역할은 할 수 있어도 중재자는 될 수 없는데 이번 합의는 중재자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김천식="이번 합의만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핵무기 폐기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에도 북한 최고지도자가 비핵화를 수차례 선언했지만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비밀리에 핵을 개발해 왔다. 이를 감안할 때 이번 약속을 과연 믿어도 될 것이냐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믿게 하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신원식="13년 전의 데자뷔에 불과하다. 2005년 9·19 합의가 지금 얼마나 이뤄졌느냐. 더욱이 그때는 핵 개발 단계였지만 지금은 개발 완료를 선언한 상황 아니냐. 북한은 진정한 비핵화보다는 어떻게 하면 비핵화 카드를 활용해 한반도의 주도권을 쥐느냐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안보를 희생해서라도 남북관계를 우선시하고 있다. 이러면 남·북·미 3자가 잘못된 만남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북·미 협상과 종전선언 전망은.
신각수=“북·미 접촉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기 임기가 끝나는 2021년 1월까지 북핵 폐기 로드맵을 짤 수 있다고 미국 정부가 판단하면 협상이 진척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어설픈 합의는 오히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종전선언도 아직 내용과 수준이 불명확하다. 비핵화 완료 없이 준평화협정 수준까지 나아갈 경우 자칫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에 문제를 일으키고 대북 지렛대만 잃게 될 우려가 크다.”

김천식=“북한의 비핵화 결심에 달려 있다고 본다.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하면 올해 안에도 종전선언과 북핵 리스트 교환이 가능할 수 있을 거다. 2021년 1월에서 역산해 봐도 올해 안에 합의돼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수준만큼 결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신원식=“북한이 협상을 통해 얻는 이익을 생각할 때 종전선언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지금 분위기는 북한에 훨씬 유리해진 상황이다. 예전엔 북한이 얻는 이익이 대북제재 해제 정도였다면 지금은 더욱 큰 안보적 보상이 눈앞에 있지 않나. 북한 입장에서 비핵화 리스트와 종전선언을 맞교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NLL 지켜져야 평화구역도 존재
 
남북 군사합의서에 대한 평가는.
신원식="안보의 핵심은 동맹과 자강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번에 경제적 선물을 줄 형편이 안 되니 대신 우리 안보를 선물로 줬다. 그동안 재래식 무기 차원에서 북한의 양적 우위를 질적 우위로 상쇄해 왔는데 우리 스스로 이를 포기한 거다. 군비 통제는 물론 미래 군사력 증강마저 안하겠다는 것은 신체포기각서를 쓴 것이나 다름없다.”

신각수="신뢰 조치라고 돼 있는데 정작 신뢰가 쌓인 뒤에나 가능한 조치를 미리 앞당겨 버렸다. 평양선언대로라면 그동안 북한의 적대행위를 막은 게 적대행위였다는 말인가. 한반도 평화의 핵심 요소는 비핵화와 안보다. 이 둘을 희생해서 얻는 평화는 헛된 평화일 뿐이다.”

김천식="합의에 따르면 앞으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거의 할 수 없게 됐다. 이제껏 한반도 평화는 세력균형에 의해 지속돼 왔는데 이 균형이 무너질 가능성도 크다. 일각에선 북방한계선(NLL)을 굳이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걸 지키려고 한국군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
 
서해 완충구역 설정도 논란이 뜨겁다.
신원식=“NLL 1㎞가 얼마나 소중한데, 북한의 골칫거리를 단숨에 해결해 준 꼴이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라 U2 정찰기 등을 막기 위한 북한의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결국 첫단추를 잘못 꿴 거다.”

김천식=“NLL은 전쟁에 의해 힘으로 결정된 선이고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 경계선을 허무는 것은 주권의 문제이자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는 거다. 그런 만큼 정부도 향후 협의 과정에서 이 원칙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국민의 우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거다. 현실적으로 평화구역도 NLL이 분명해야 존재할 수 있고 NLL이 지켜져야 남북 협력도 지속될 수 있음을 정부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 남남 대화 병형돼야
 
항공금지구역 설정에 대해서는.
신원식=“수도권 방어가 어려워질 우려가 크다. 20㎞가 비행금지구역으로 정해졌는데 서울에서 판문점까지 50㎞다. 20㎞ 내에서 북한군 상황을 보고 타격하지 못하면 서울과 인천국제공항, 인천항 등을 방어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질적 우위에 있는 핵심 정밀타격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면서 한·미 양국이 역할을 분담해 온 연합작전 체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신각수=“현대전의 핵심은 정밀타격 무기다. 이는 정찰 감시를 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대북 군사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북한의 비핵화가 진척된 것도 아니고 재래식 무기도 그대로인 상황에서 이를 포기하는 데 대해 우려가 크다.”
 
남북 경협도 관심사인데.
김천식="북한에 물자가 들어가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분위기다. 유엔 제재에서 한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조건이 마련된다면 우리로서도 좋은 선택이 되겠지만 유엔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한 남북 경협을 진행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북한의 진정성에 달렸다. 그동안 남북이 250개 이상의 합의를 했지만 제대로 이행된 게 거의 없지 않았나.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경협도 불가능하다는 걸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거다.”

신각수="가장 큰 변수는 역시 제재 문제다. 지난해부터 최대 압박 전략으로 북한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몰렸는데 평화 모드가 조성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회피 모드로 가는 모습이다. 당사자인 우리 정부도 이를 더욱 촉진하는 듯한데, 평화 모드가 대북 압박 공조를 흐트러뜨려선 곤란하다.”
 
향후 과제는. 제언이 있다면.
김천식="대북 정책과 관련해 국내 분열이 너무 심한 듯싶다.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국민통합이 될 수 없다. 남북관계가 잘 풀리지 않은 책임이 우리 정부에만 있겠느냐. 진보도, 보수도 마찬가지다.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도, 이번 평양선언도 함께 존중해야 진정한 국민 통합이 이뤄질 수 있을 거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남남 대화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신각수="무엇보다 균형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왜 20년간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는지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기조에서 대화는 하되 늘 행동으로 확인해 가야 한다. 낙관은 절대 금물이다. 진정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철저한 안보 태세가 유지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안보를 가장 강조하지 않았나. 비핵화가 전제된다면 남북관계 진전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거다.”

신원식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받을 것은 완전한 비핵화고, 줄 것은 외교·경제적 보상이다. 하지만 안보적 보상은 우리 안보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이 또한 리스트를 정하고 뭘, 언제 등가로 주고받을지 명확히 해야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박신홍 기자, 김나윤 인턴(성신여대 화학4)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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