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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북핵 협상 '마의 구간' 사찰…이번엔 넘을까

중앙일보 2018.09.21 15:29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하지만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검증을 거부하며 2008년 12월 6자회담은 결렬됐고 이후 핵개발을 계속했다. [연합뉴스]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하지만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검증을 거부하며 2008년 12월 6자회담은 결렬됐고 이후 핵개발을 계속했다. [연합뉴스]

미 국무부가 북한도 핵 사찰을 수용했다고 밝히며 본격적인 검증 돌입을 예고했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전날 성명에서 평양 공동선언에는 없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의 사찰단 참여를 밝힌 이유를 묻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사찰단에 대해 얘기했다. IAEA와 미국 사찰단이 어떤 경우에도 일부로 참여한다는 것은 공유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 정부와 이야기했는데, 이는 (북·미 간)공통의 인식이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라면서다.  
 
평양 공동선언에는 없지만 남·북·미 간에 핵 사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나워트 대변인은 “지금 같은 핵 관련 상황이 있는 경우 이를 폐기한다고 하면 IAEA 사찰단의 참여를 예상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며 “그것이 일을 처리하는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비핵화는 크게 신고-검증-폐기 단계를 거친다. 신고된 내용에 틀린 부분이나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검증이며, 검증은 ▶문서 확인 ▶현장 사찰 ▶시료 분석 ▶종합평가 등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폐기를 하려면 사찰을 해야 한다는 나워트 대변인의 언급은 일반론에 가깝다. 향후 핵 협상을 낙관하기는 힘든 이유는 결국 악마는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도출한 핵 관련 합의는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당초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핵 리스트 신고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 이미 선조치를 했으니, 미국이 대응조치를 내놓을 순서라고 주장하면서 북·미 협상이 교착 국면을 맞았다.  
 
이번에 핵시설 사찰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사찰을 하되 대상은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과 영변 핵시설로 국한시켜 일단 비핵화 로드맵을 돌려보자고 의견을 모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검증과 사찰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삐끗하기 쉬웠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처음으로 정상 간 합의가 먼저 이뤄졌기 때문에 비핵화 합의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20일 대국민보고)고 자신했다.  
 
북한플루토늄 생산을 위해 가동한 영변 5MWe 원자로

북한플루토늄 생산을 위해 가동한 영변 5MWe 원자로

하지만 향후 이어질 북·미 간 실무협상에서 사찰의 대상과 범위를 둘러싼 이견 노출은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북핵 협상도 결국 사찰과 검증이라는 ‘마의 구간’에서 결렬되곤 했다.
 
북한은 1992년 5월 처음으로 IAEA에 ‘5㎿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1회 재처리해 추출한 약 100g의 플루토늄’을 신고했다. 그러나 IAEA가 6차례 사찰을 통해 최초신고서를 검증한 결과 재처리 횟수는 2회 이상이었고, 플루토늄 양도 달랐다. IAEA가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거부하고 이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통보했다. 1차 북핵 위기였다.   
 
북핵 6자회담이 중단된 것도 검증 때문이었다. 북한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핵무기와 현존하는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포기를 약속했다. 후속조치 이행을 위해 2008년 7월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은 핵 시설 20여 개만 신고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은 모든 시설에 대한 강제 사찰을 요구했다. 2008년 12월 북한의 핵물질 샘플 채취를 포함한 검증의정서 합의에 실패하면서 6자회담은 중단됐다.  
 
지금은 당시보다 북한의 핵 능력이 훨씬 고도화했기 때문에 상황이 더 어렵다. 플루토늄의 경우 원자로 운전 기록과 흑연감속로 샘플 채취를 통해 생산량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2008년 5월 미국에 영변 시설의 원자로 가동 및 플루토늄 관련 기록 1만 8000여쪽을 넘겨줬다. 당시 문서 분석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전기출력과 운전출력 기록이 말도 안 되게 안 맞아서 파악해보니 온도계가 고장나서 과도하게 측정됐다고 하더라. 고의든 아니든 북한의 운전일지를 믿기 어렵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농축우라늄 파악은 더 큰 문제다. 원심분리기 가동 등 초기부터 감시하지 않는 이상 생산량을 정확히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과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또 농축 시설을 지하에 숨길 경우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를 찾아내려면 그야말로 북한 전역을 뒤지는 특별사찰이 필요한데,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의 기준도 이전보다 높아졌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란 핵 합의 파기의 영향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의 핵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고, 철저한 사찰과 검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란 핵 합의를 걷어찼다. 군사시설에 대한 임의사찰까지 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의 비확산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이란보다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아닌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 의회의 기류 역시 강경하다”고 전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북한은 항상 스스로 비핵화의 의미와 방식을 정의하고 자신들이 정해놓은 한도 내에서만 검증을 받겠으니 보상을 내놓으라는 식의 살라미 전술을 써왔다. 이런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고, 지금도 북한이 만든 틀 속에서의 비핵화만 보이는 셈”이라며 “전체상을 보기 위한 투명한 신고와 검증이 치열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유지혜·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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