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전북 완주군 모악산에 자리한 전주 김씨 시조 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32대 조상인 김태서의 묘다. 구이저수지와 드넓은 호남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김준희 기자
김일성 32대 조상 김태서 무덤
김정일, 남북회담 때 "난 전주 김씨"
호남평야 보이는 '갈마음수형' 명당
"북 폭격에도 무사할 것" 얘기 돌아
풍수학자 "김정은도 남북화합 호재"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소식에 전주 김씨 시조 묘에 다시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묘의 위치를 묻기 위해 모악산 들머리에 있는 '완주군 모악산관리사무소'부터 들렀다. 남직원 2명의 눈이 TV 모니터에 멈춰 있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평양시민 15만 명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이들은 "김정일(김정은 부친)이 죽었을 때는 사람들이 묘를 많이 찾았는데 아직은 뜸하다"고 했다.

20일 전북 완주군 모악산에 자리한 전주 김씨 시조 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32대 조상인 김태서의 묘다. 구이저수지와 드넓은 호남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김준희 기자
지름이 2.5m쯤 돼 보이는 봉분 앞 제단 위에는 일회용 접시 2개와 함께 사과와 오이, 술 등이 놓여 있었다. 사과가 아직 심하게 썩지 않은 것으로 보아 누군가 하루 이틀 전에 다녀간 모양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전주 김씨 가문 사람들이 벌초와 성묘를 하러 왔을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였다. 그 덕분인지 이날 무덤을 덮은 잔디는 짧게 다듬어져 있고, 주변도 깔끔했다.

20일 전주 김씨 시조 묘 앞 제단 위에 놓인 사과와 오이, 그리고 술. 누군가 추석을 앞두고 벌초와 성묘를 하고 두고간 것으로 보인다. 김준희 기자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에도 "김일성의 조상이 전북 전주에 살다 북으로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일성 일가가 전주 김씨라는 사실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때도 확인됐다. 주한미군 문제 등으로 대화가 막히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라도 고집이 이렇게 센 줄 몰랐다"며 농을 건넸다. 김 대통령이 "어디 김씨냐"고 묻자 김 위원장이 "전주 김씨"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이 "그럼 김 위원장이야말로 진짜 전라도 사람 아닙니까. 나는 김해 김씨요. 원래 경상도 사람입니다"라고 하자 둘은 폭소가 터졌다고 한다.

전주 김씨 시조 묘가 있는 전북 완주군 모악산. 시조 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32대 조상인 김태서의 묘다. 김준희 기자
'모악산 김일성 시조묘설'은 손석우씨가 1993년 풍수 이야기를 담은 『터』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육관도사'로 불린 손씨는 그 책에서 "이 묘의 지기가 발원해 후손이 장기 집권하게 되는데, 묘의 운이 1994년 9월에 끝난다"고 예언했다. 실제로 김일성 전 주석이 그해 7월 세상을 떠나자 큰 화제가 됐다. 여기에 재미교포 언론인 문명자(줄리 문)씨의 김일성 주석 인터뷰도 일조했다. 김 주석은 1992년 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 시조 묘가 모악산에 있다"고 했다.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9/22/8d0e6570-79ac-43f9-aab3-b8c1b892ca82.jpg)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전주 김씨 시조 묘는 명당(明堂)으로도 회자된다. 풍수지리학자들은 묘가 있는 땅을 정좌계향(동북 방향)의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으로 본다.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모습'으로 자손들이 부귀하고 크게 흥할 자리라는 것이다. 그 전에 모악산 자체가 명산(名山)이자 민족 종교의 태생지다. 김지하 시인은 "풍수적으로 한반도의 배꼽은 모악산"이라고 했다. '풍수지리의 대가'로 꼽히는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에 따르면 조선 시대 이름난 승려인 진묵대사와 증산교 창시자 강증산이 득도한 곳이 김일성 시조 묘와 가까운 대원사다.

전북 완주군 모악산에 있는 전주 김씨 시조 묘를 가리키는 나무 팻말. 김준희 기자
동기감응(同氣感應)은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것으로 풍수의 핵심이다. 좋은 땅에 조상을 모시면 그 좋은 기운이 후손에게 간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좋은 기운을 이어주는 매개가 뼈냐, 마음이냐인데 당시엔 뼈가 없으면 '명당발복(明堂發福)'이 안 된다고 기계론적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명당발복은 '명당에서 복이 나온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공부가 깊어지면서 그는 "뼈를 좋은 땅에 모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역대 남과 북 정상들이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올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9/22/78234541-0b93-4a26-8109-5b0faa50f49c.jpg)
역대 남과 북 정상들이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올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런 관점에서 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도 가문의 시조 묘가 모악산에 있다는 게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훗날 '우리 조상도 남한에 있으니 한민족 아니냐' '풍수지리적으로 묘가 좋은 자리에 있으니 남북이 통일됐다'는 논리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모악산 정상을 밟고 내려오던 여성 등산객 2명을 만났다. 전주에 사는 박모(65)씨와 강모(70)씨다. '이 근처에 김일성 시조 묘가 있는 걸 아느냐'고 묻자 이들은 주저 없이 기자가 방금 다녀온 묘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들은 "전주에 오래 살고 우리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 묘를 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때 모악산도 꼭 오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나 핵, 공산주의는 반대하지만, 김 위원장이 자기 시조 묘가 있는 모악산에 오면 남북이 화해 무드를 이어가는 데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서울 답방'을 약속했고, 문 대통령은 '연내 답방'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남한에 올 때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애정을 보인 전북 모악산 시조 묘를 참배할지 주목된다.
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