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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한반도기에 뭉클... 엇갈려 못 만난 분희 언니, 서울에선..."

중앙일보 2018.09.21 05:00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 [연합뉴스]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 [연합뉴스]

 
"오전에 백두산 천지에 있었는데, 밤엔 집에 들어와있네요. 꿈같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정상회담 특별수행단' 현정화 감독의 방북기

 
 18일부터 2박3일간 평양에서 열린 2018 3차 남북정상회담엔 경제, 문화, 체육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특별수행단 자격으로 방문했다. 그 중 체육계에선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주축 멤버였던 '탁구 전설' 현정화(49)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도 수행했다. 2005년 6.15 공동선언 발표 5주년을 기념한 민족통일대축전을 통해 평양을 방문한 뒤 13년 만에 두 번째로 방북한 그의 감회는 어땠을까. 20일 귀환 직후 그를 인터뷰해 구술한 내용을 글로 재구성했다.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에서 찍은 천지의 모습.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맑은 모습이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에서 찍은 천지의 모습.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맑은 모습이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中 통해 안 갔던 백두산 천지, 장관 그 자체
 
피곤했지만, 영화같았던 2박3일이 흘렀다. 살면서 두고두고 자랑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고 왔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남북 체육 교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 지, 마음 속으로 다시 새겼다.
 
북한을 통해 백두산 천지를 갔다왔다. 감격, 그 자체였다. 애초에 백두산 천지에 가는 일정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19일 밤에 갑자기 정부측 관계자로부터 백두산에 갈 것이라고 통보받았다. 워낙 앞서 소화한 일정들이 빡빡해서 피곤한 상황이었다. 19일 밤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끝난 시간이 밤 11시였다. 그래도 언제 북한을 통해서 백두산 천지에 가보겠나 싶었다. 사실 난 이전에 중국을 통해서 백두산에 갈 기회가 몇 번 있긴 했다. 그런데 실제론 한 번도 안 갔다. 이렇게 갈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 일정인데, 난 새벽 3시10분쯤 깼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기 때문에 정부 측에서 급히 방한복을 공수해서 수행단이 받았다. 가는 일정 자체는 빠듯했다. 버스와 비행기, 그리고 다시 차와 케이블카를 연달아 갈아타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올라가서 본 백두산 천지는 장관 그 자체였다. 하늘은 맑았고, 물은 바닥도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방한복을 입었지만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상쾌한 기분에 물에 손도 잠깐 담가봤다.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훤할 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같이 올라간 사람들 중에 누가 덕을 쌓은 덕이었는지와 같은 얘기를 농담 삼아 나눴다. 언제 다시 이렇게 백두산 천지에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되새기며…
 
평양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현정화(왼쪽부터) 감독, 가수 에일리, 마술사 최현우, 가수 지코, 알리가 18일 오후 평양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해 북측에서 제공한 오미자 단물 등 북한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현정화(왼쪽부터) 감독, 가수 에일리, 마술사 최현우, 가수 지코, 알리가 18일 오후 평양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해 북측에서 제공한 오미자 단물 등 북한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13년 전 비해 밝고 풍요로워져…
 
꿈만 같던 시간이 훌쩍 지났다. 13년 만에 찾은 북한은 많은 변화를 겪은 모습이었다. 13년 전만 해도 건물은 대부분 회색빛, 어두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에 본 평양 거리는 형형색색, 밝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워졌다. 처음 평양에 갔을 땐 음료수, 과자를 파는 상점을 보질 못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런 물건들을 파는 상점은 물론 백화점도 봤다. 또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졌고, 남측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편하게 대하는 북한 관계자들 덕에 우리도 내내 화기애애하게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둘째날 밤,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했던 능라도 5.1 경기장에서의 집단체조를 잊을 수 없었다. 중간에 대형 한반도기가 올라가고, 막판에 많은 무희들이 한반도기를 휘날리는 장면이 있었다. 91년 지바 세계선수권 때 아리랑을 들으면서 시상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선 한반도기의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 선하다. 그만큼 한반도기는 내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다. 그걸 공연을 통해 보는데 소름이 끼치면서도 뭉클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에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로 답한 평양시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국 대통령의 연설에 북한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장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걸 눈으로 본 순간이었다.
 
남북 정상 내외와 직접 대화를 나눈 시간은 없었다. 그래도 정상 내외가 식사할 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수행단 역시 북한 사람들과 서로 나뉘어서 식사한다는 느낌보단 어울려 섞여서 단체 회식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첫날 만찬 땐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반이나 진행돼 끝났다. 연초 문화·예술단 공연을 통해 방북했던 가수 알리 씨의 경우, 그를 알아본 북한 관계자들이 서로 인사하러 올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가 18일 오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을 방문해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며 대화하고 있다.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팀 감독과 가수 에일리, 지코가 뒷자리에서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가 18일 오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을 방문해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며 대화하고 있다.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팀 감독과 가수 에일리, 지코가 뒷자리에서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뉴스1]

 
"이분희 꼭 만나길…" 덕담 건넨 北 관계자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수행단 자격으로 방북했다. 그래서 (91년 세계선수권 파트너였던) 이분희 조선장애자체육회 서기장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게 안 갖고 갔다. 그런데 뒤늦게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북한 측 관계자가 전날 이 서기장이 남측 수행단이 일정을 소화하려던 곳에 있었다가, 그 일정이 앞서 소화하던 일정 때문에 없어지면서 이 서기장도 자리를 떠났다고 이야기해줬다. 언니와의 만남 성사에 대해서 많이 주목하고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다. 아쉬움은 컸지만, 그래도 난 수행단 자격으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더 부각돼 주목받길 바랐다.
 
북한 관계자가 다음 번엔 꼭 분희 언니와 뜻있게 만나라고 이야기했다. 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언니와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혹 연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울에 온다면, 그때 언니가 같이 내려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9월 평양 공동 선언엔 체육계와 관련해서도 의미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2020년 도쿄올림픽 단일팀과 2032년 여름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를 추진하는 것이다. 탁구계는 연말 오픈 대회와 그랜드 파이널스 등을 통해 남북 단일팀이 재결성된다. 또 2020년 4월 부산 세계탁구선수권에서의 남북 교류도 추진중이다.
 
 지난 5월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결성됐던 여자탁구 남북 단일팀. [연합뉴스]

지난 5월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결성됐던 여자탁구 남북 단일팀. [연합뉴스]

 
이제부터 중요하다. 단지 보여주는 것만 하지 말고, 남북 모두 실질적인 경기력, 경쟁력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깊이있는 대화를 하는 건 기본이다. 더 자주 만나고 호흡을 맞추면서도, 남북 간의 건전하고 지속적인 경쟁도 필요하다. 단일팀이라면, 남측 4, 북측 1이 됐든, 남측 1, 북측 4이 됐든, 잘 하는 선수들로만 뽑아서 나간다면,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선 대회나 리그가 있다면, 서로 초청하는 식으로도 경기해야 한다.
 
늘 생각만 해오던 게 현실로 이뤄지니까 소름도 돋는다. 스포츠를 통한 교류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나도 더 책임감을 갖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겠다.
 
정리=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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