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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공포

중앙일보 2018.09.21 00:23 종합 29면 지면보기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대통령을 다룬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를 출간했다. 얼핏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혼란스러운 정책 결정 과정을 다룬 듯하지만 읽다 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을 지탱해 온 전략적 전제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이 벌이는 전쟁을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드워드가 본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과 각료·참모들의 전쟁판
그가 말한 공포는 권력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혼돈의 상황

책 전반에 걸쳐 한국이 등장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책의 첫 장부터 나온다. 2017년 9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개리 콘 경제위원장은 대통령 책상에 놓인 서한을 보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를 통보하는 것이었다.
 
전 골드만 삭스 대표이자 백악관 경제위원회 위원장인 콘은 깜짝 놀라 서한을 없애기로 했다. 우드워드의 정보원에 따르면(콘 위원장 본인일 수도 있다) 콘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직관에 따라 즉흥적으로 정책 결정을 내리는 대통령 때문에 콘을 비롯해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 렉스 틸러슨 전 국무부 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 롭 포터 비서관 등은 대통령과 미국을 지키기 위해 날마다 전쟁을 벌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경제위원장과 국방장관이 연대하여 대통령을 국방부로 초청해 동맹의 중요성을 알리는 보고회를 가졌다. 매티스 장관은 전후 미국의 지속적인 번영은 독자적인 힘으로 이룬 게 아니라 규칙에 기반을 둔 세계 민주주의 질서에 근간을 둔 덕분이라고 말했다. 무역과 정보 공유, 동맹은 미국이 계속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이다.
 
글로벌 워치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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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수긍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무임승차자들이었다. 한·미 FTA, 이란 핵 협정, 파리기후협약을 비롯해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맺은 국제 조약은 모두 재앙이었다. 사드 배치와 한·미 동맹 유지 비용을 두고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두 사람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 미군을 모두 철수시켜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보고회가 끝나고 대통령을 향해 “멍청이”라고 했고, 6개월 후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책은 북한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했고, 오바마 정부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우드워드는 오바마 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을 최소화시키는 데만 집중했을 뿐 새로운 관계로 진전시키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는 북한은 모순덩어리였다. 그는 외교 분야에서 신중론을 폈던 오바마 정부와는 크게 달랐다.  2017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회담을 제안했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대립을 매우 사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지도자 대 지도자, 남자 대 남자, 나와 김정은”의 의지 대결로 치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예측 불가성을 자신의 강점으로 여긴다. 우드워드의 충격적인 폭로에는 2018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주한 미군 철수령을 발표하려 했다는 내용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계획을 철회했지만 TV 인터뷰에서는 주한 미군 파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북한 문제에 대한 출구 전략은 갖고 있지 않았다. 북한을 향한 “화염과 분노” 언급이 이룬 성과가 무엇인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군사적·경제적 대북 압박 캠페인을 지휘했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중국이 김정은을 암살하게 하자는 넋 나간 제안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책상 위의 핵 단추가 더 크다며 김정은과 설전을 벌였다.
 
우드워드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결정 과정은 다루지 않았다. 나를 비롯해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이 위험을 감수할 만한 회담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어지러운 국내 정치 상황에 휩쓸렸고, 이 시점에서 북·미 관계에서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3차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드워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진정한 힘은 공포다”라고 한 데서 책 제목을 따왔다. 이 제목에는 더 깊고 슬픈 의미가 담겨있다. 미국을 비롯해 많은 동맹국이 트럼프 행정부를 두려워한다. 대통령이 휘두르는 권력 때문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즉흥적이고 혼란스러운 결정 때문이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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