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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중앙일보 2018.09.21 00:22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다음 주말부터 자전거 탈 땐 헬멧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개정된 도로교통법 내용이 그렇다. 안전에 필요하다지만 반대 여론이 더 많은 뜨거운 논쟁거리다. 호주·뉴질랜드는 의무제이고, 독일 등 거의 모든 유럽 국가는 자율에 맡긴다. 미국과 일본은 연령이나 지역별로 부분 적용한다. 안전이라면 벌벌 떠는 미·일이 소극적인 건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관여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다.
 

국민이 싫어하는 정책 고집하면
국민 지지율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심지어 미국에선 오토바이 헬멧 의무화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헬멧 착용을 원치 않는 사람에겐 추가 코스 시험과 의료보험 증서를 요구하는 특별면허제가 좋겠다는 제안에 호응이 많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일러 교수가 떠올린 넛지(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아이디어다. 지나친 간섭도 그렇지만 서울 도심에선 ‘따릉이’ 타다 머리 다쳤다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대략 ‘제한적 강제’ 정도가 적정선일 텐데 그런 세심한 넛지는 우리에겐 사치다.
 
황당한 건 헬멧을 안 써도 법엔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뭔가. 지킬 의지도 없는 법을 만들어 괜히 국민에게 겁주고 불편함만 키운 왕조시대 사또행정 아닌가.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모든 산에서 술을 마실 수 없도록 바꾼 자연공원법 시행령도 있다. 올봄부터 탐방로는 물론이고 대피소에서도 안 된다. 취지는 알겠는데 내 배낭 속 술을 산에선 못 마신다는 법은 세계적으로 금시초문이다. 더구나 정부는 한 번도 국민에게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
 
그러니 국가주의란 비난이 나오고, 먹히는 것이다. 정말로 안전 코리아가 되려면 국민 마음이 바뀌어야 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도 건건이 ‘따라만 오라’는 고집이 습관성이다. 탈원전, 소득주도, 최저임금이란 국가 대사가 다르지 않다. 고집만도 아니어서 윽박지르거나 아니면 염장을 질러가며 끌고 간다. ‘국민 모두가 강남 살 필요는 없다’고 좌절감에 불을 때더니 최악의 고용지표엔 ‘성장통’이라고 둘러댄다. 평양 정상회담 동행을 거절하자 대통령은 ‘제발 당리당략을 거둬 달라’고 야당을 꾸짖었다.
 
얼마 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같은 당 의원들에게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저자 토머스 프랭크)이란 책을 돌렸다고 한다. 클린턴·오바마 대통령 때 민주당이 핵심 지지층보다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충실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집토끼가 먼저란 얘기다. 재앙 수준의 집값 정책으로 집토끼를 내몰고 있는 김 장관이 이 책에 주목한 까닭은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도 ‘시장은 정부를 못 이기니 결국 하던 대로 할 수밖에 없다’거나 ‘어쨌든 우리가 옳으니 휘둘리지 말자’는 뜻을 전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핵심 지지층인 서민·중산층에 집중하자는 주장이야 좋다. ‘가난한 사람들도 형편이 나아져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게 공약이었다. 멋진 말이다.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빠지고, 특히 집토끼가 달아나는 건 미국 민주당처럼 지지층 요구에 눈을 감아서가 아니다. 친노동 편향이 어느 정부보다 뚜렷한 정권이다. 핵심 지지층조차 ‘묻지마 정책’을 반대하는데도 그냥 밀어붙이는 오만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가 새로운 성장을 이끄는 사회적 자본이란 게 로버트 퍼트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연구 결과다. 사회적 갈등은 신뢰를 떨어뜨려 성장을 막기 때문이란다. 그런데도 오직 ‘뭉쳐서 이기자’는 구호로 상대를 공격하고 분노를 일으키며 “앞으로 열 번은 더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한다”고 외치는 민주당이다. 전 정권이 그러다 레드카드를 받았다. 미국 민주당도 ‘나만 옳다’는 착각과 오만으로 정권을 내줬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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