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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미동 없는 썸낭을 발견하고 고민 끝에 119에 신고했다.

중앙일보 2018.09.21 00:01
2018년 제19회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귓속말

                                                                    정선임  
 
대수는 아침에 먹었던 떡의 출처가 궁금해진다. 냉동실 한구석에 야무지게 꽁꽁 묶어 놓은 검은 비닐봉지. 그 안에 딱딱하게 굳은 인절미가 있었다. 차가운 인절미는 서로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봉지째로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자 말랑말랑해졌다. 몇 개는 형체가 사라진 채 봉지에 들러붙었다.  
 선 채로 급하게 집어 먹어서인지 속이 지금까지 더부룩하다. 대수는 운전대 옆에 둔 생수통을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여전히 체기가 느껴져서 가슴 위쪽을 몇 번 주먹으로 친다. 백미러에 얼굴을 비춰 보다 입가에 묻은 콩고물을 발견하고 옷소매로 쓱 문질러 털어낸다. 빈 택시로 30분째 첫 개시를 하지 못하고 텅 빈 거리를 빙빙 돌고 있다.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대수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는다.  
 “구청입니다. 이대수 씨, 왜 이리 통화가 안 돼요.”  
 대수는 버릇처럼 보청기를 고쳐 끼고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운전 중이라.”  
 “썸낭의 가족들과 연락이 됐어요. 생각보다 일이 빨리 처리될 것 같아요.”
 구청직원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다. 하지만 대수는 식도에 인절미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대수 씨? 안 들리세요?”  
 대수가 대답이 없자 구청직원이 재차 묻는다. 간신히 목구멍에서 쥐어짜듯 말을 꺼낸다.
 “저 썸낭의 여동생과도?”  
 “부모님과 통화했으니 여동생도 알겠죠. 혹시 전할 말이라도 있나요?”
 구청직원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다 의아한 듯 묻는다.
 “아니요. 없습니다. 없어요.”
 당황한 대수가 서둘러 통화를 마치려 하자 구청직원이 다급히 대수를 부른다.  
 “귀찮으시겠지만 고인의 유품을 챙겨다 주세요.”  
 구청직원은 퇴근 전에 꼭 와달라고 덧붙인다. 앞쪽에서 손을 흔드는 손님이 보인다.  
 첫 손님은 홍대에서 내렸다. 여의도에서 홍대까지 5천 2백 원이 찍혔다. 오늘도 단거리 손님만 계속 태우면 사납금을 채우기 어려울 텐데. 대수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벌써 썸낭 때문에 이틀을 공쳤다. 첫날은 경황이 없었고, 둘째 날은 경찰서에 들러 몇 가지 진술을 더 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장거리 손님을 부산까지 데려다주긴 했지만, 서울까지 오는 손님을 찾으려고 욕심을 내다 빈 택시로 늦게 돌아왔다. 새벽 2시에야 집에 왔고, 늦잠을 자서 오늘 첫 개시도 늦었다. 거기다 집에 들러 유품을 가져와야 한다.    
 떡이 뱃속에서 불고 있기라도 한 걸까. 속은 점점 더 불편해진다. 대수는 맞은편에 보이는 약국 앞에 차를 세운다. 활명수를 한 번에 들이켜고 거리를 바라본다. 내일 모레가 입춘이지만 라디오 뉴스에서 알려준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5도였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찬바람을 맞으며 대수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문다. 입김과 담배연기가 뒤섞여 거리는 뿌옇게 보인다. 도로 곳곳에는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 네 번째 겨울을 보낸다는 썸낭은 자신의 뺨을 가리키며 여기에 얼음이 붙어 있는 것처럼 춥다고 했다. 썸낭의 몸은 지금 꽁꽁 얼어 있다. 냉동실에서 막 꺼낸 인절미처럼 딱딱해져서 어두컴컴하고 추운 방에 누워 있다.  
 
 사흘 전 아침, 작은 방에 미동 없이 엎드려 있는 썸낭을 발견하고 대수는 십여 분간 고심 끝에 ‘우리 집에 살던 외국인이 갑자기 죽었다’는 문장을 만들었다. 112를 눌러야 하나 119를 눌러야 하나. 5분여간의 고민 끝에 119에 신고했다.  
 일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나자 구청직원과 경찰이 집으로 찾아왔다. 구청직원은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한 뒤, 불법 체류한 외국인 노동자가 돌연사하는 일이 꽤 많다고 했다. 구청직원은 더 명료한 문장을 만들어 주었다. ‘방에 세 들었던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돌연사했다.’ 눈물샘 부위를 손가락으로 꼭꼭 누르는 구청직원은 피곤해 보였다.    
 “이 사람들, 특히 겨울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이불에서 반쯤 빠져나온 썸낭은 엎드린 채로 방문 앞에 오른쪽 팔을 뻗고 쓰러져 있었다. 한 뼘만 더 손을 뻗었어도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거리였다. 꽤 괴로워했을 텐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냐고 물었다. 대수는 보청기를 가리켰다. 제가 귀가 잘 안 들려서. 더 이상의 추궁은 없었다. 대수는 썸낭과 같이 산 지 얼마나 됐냐는 질문에 얼마 안 됐다고 답하면서 속으로 달수를 헤아렸다. 사실 5개월은 애매한 시간이었다. 반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짧았지만 그래도 두 계절을 함께 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됐다고 말해야 썸낭의 죽음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월세를 받으셨죠? 구청직원의 질문에 대수는 잠시 움찔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현금으로 받았습니다. 구청직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첩에 받아 적었다. 썸낭은 시체를 넣는 검은 바디백에 담겨졌다.  
 썸낭이 누워 있는 병원 시체 안치소 하루 보관료는 10만 원이다. 오늘로 사흘째니까 총 30만 원, 오늘이 지나면 40만 원이 될 것이다. 무연고 시신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구청에서 한꺼번에 화장시킨다고 했다. 외국인인 경우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해 본국으로 운구해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가족들과 연락도 어렵고 설사 연락이 돼도 비용이 부담스러워 본국으로 시신 인수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꽤 많은 모양이었다. 일 년 넘게 시신이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며 구청직원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해당 구청에서 안치소 비용과 장례비를 일정 부분 내주고 화장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구청직원은 다행히도 우리 구청에서는 무연고 외국인 시신에 대한 예산을 책정해 놨다며 얼마나 인도적인지를 강조했다. 대수는 그 ‘우리’에 자신도 포함되는 건지 묻는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예산이 없는 경우에는요?” 독지가나 시민단체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독지가라는 말이 나올 때 구청직원이 대수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건 착각이었을까. 시체 안치소 비용 중 구청의 지원금을 뺀 나머지 금액은 오롯이 병원 몫이 되고 마니 구청이나 병원이나 가능하면 빨리 처리하고 싶어 했다. 예산이 초과되기 전에 빨리 가족을 찾아야죠. 구청직원은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썸낭의 마을에서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이 너무 멀어 웬만한 병은 참고 넘겼다고. 그래서 가끔 한국에 있는 의대에서 자원봉사를 오면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찾아와 아침부터 줄을 서서 진료를 받았단다. 대수의 집에서 길만 건너면 이비인후과, 내과, 치과 등 온갖 병원이 모두 모여 있었지만 여전히 썸낭은 병원에 갈 수 없었다. 3년 취업 비자를 받아 체류했던 썸낭에게는 외국인 등록증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썸낭은 버젓이 사흘째 병원에 누워 있다. 썸낭은 대수 집에서 한 달에 10만 원을 내고 살았다. 하루에 10만 원, 그동안 살았던 방 중 썸낭은 어쩌면 가장 비싼 월세를 지불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5개월 전 썸낭을 집에 데려온 건 아들 영오였다. 며칠 전 추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날씨가 더워 대수는 벽장에 넣어 둔 선풍기를 다시 꺼낼까 고민하고 있었다. 번호키 눌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올 사람은 영오밖에 없었기에 선풍기를 꺼내 들고서야 돌아섰다. 영오 뒤에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크고 검은 눈동자와 갈색 피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노란 반팔 티셔츠는 옹송그린 어깨를 더 작아 보이게 했고, 갈색 피부를 더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영오는 거래 업체인 공장에 갔다가 알게 된 사이라고 썸낭을 소개했다. 썸낭은 목례를 하며 웃었다.  

 “이 낡아빠진 집에 한 달에 10만 원이면 적은 건 아니죠. 용돈이라도 하세요.”  
 영오는 남의 집을 보듯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스무 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방은 달랑 두 개뿐이었다. “방이 어딨니?” 대수가 묻자 영오는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영오는 2년간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분실하거나 버려진 휴대폰을 모아 팔 거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재활용이라고 할 수 있죠.”  
 “법을 어기는 일은 아니니?”
 대수의 물음에 영오는 대꾸하지 않고 영업을 하듯 썸낭에 대한 정보를 줄줄 읊었다. 썸낭은 5년 전에 대학을 졸업했다. 등록금은 썸낭의 동네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기관에서 지원을 받았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 나라도 대학 나와서 취직하기 어려운 가봐. 영오가 씩 웃었다. 썸낭은 자신의 고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몇 년 돈을 모으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했고 가족들도 썸낭의 결정을 반겼다. 취업 비자는 3년 만기가 지났지만 한국으로 올 때 브로커에게 준 돈이 아까워 2년만 더 일할 계획이었다. 썸낭은 영어도 잘해요. 그렇게 영오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신의 짐을 챙겼다. 대수는 아내 말로는 그와 꼭 닮았다는 영오의 고요한 뒤통수를 말없이 바라봤다.  
 일 년 전, 암으로 아내가 죽은 뒤 영오와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졌다. 영오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들어와 잠만 자고 갔고, 대수가 집에 있는 시간은 되도록 피했다. 대수는 영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다. 어느 날 영오는 옥매트를 들고 나타났다가 사라져 한 달 만에 커다란 곰 인형과 수십 개의 작은 인형이 담긴 보따리를 끌고 들어왔다. 때로는 무좀약이나 발모제, 탈모 샴푸, 화장품을 들고 와 임상시험 중인 제품이라며 써 보라고도 했다. 영오가 파는 물건은 크기가 점점 작아졌고 나중에는 무엇을 파는지 알 수 없게 됐다. 대수는 영오가 적어도 눈에 보이는 물건을 팔았으면 했다.  
 영오가 사라지자 썸낭과 대수는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말없이 웃기만 하던 썸낭은 선풍기 바람을 피하느라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노란색 반팔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에는 소름이 오슬오슬 돋아 있었다. 대수는 선풍기를 껐다. “괜찮아요.” 썸낭이 손사래를 치며 선명한 한국어로 말했다. 썸낭에게 바람이 가지 않도록 선풍기를 자신에게 고정시킨 대수는 긴장해서 보청기를 만지작거렸다.  
 
 콜이 들어온다. 담배를 비벼 끈 대수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보청기를 고쳐 낀다. 마침 대수의 집 근처로 가는 손님이다. 이어폰을 낀 손님은 차에 타자마자 말없이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는다. 취객이 아니라면 기사가 굳이 말을 걸기 전에 먼저 얘기를 건네는 손님은 드물다. 대수에게는 다행한 일이었고 그 때문에 여태 했던 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대수는 손님을 목적지에 내려놓고 집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낡은 연립 주택이다. 층마다 세 개의 문이 나란히 있는데 대수의 집은 2층 세 번째 문, 203호다. 10년 전 아내가 그동안 모은 돈과 대출을 합쳐 장만한 집이다. 다 갚으려면 아직 15년이 남아 있다. 번호키를 누르려다 대수는 잠깐 멈춰 선다. 저 안에서 사람이 죽었다. 지난 이틀간 하지 못한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란다. 대수는 집이 아니라 범죄 현장이라도 되는 듯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을 서성인다. 문득 대수는 계단을 올라오다 현관문 앞에서 종종 멈췄던 썸낭의 발걸음 소리가 떠오른다.  
 썸낭은 평일이면 야간 근무를 마치고 밤 열 시쯤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보던 대수는 썸낭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볼륨을 줄이고는 했다. 문 앞까지 걸어온 발걸음 소리는 뚝 끊어졌다. 십여 분간 흐른 뒤에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썸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고리 옆에 열쇠 수리 스티커가 절반 정도 떨어진 채 붙어 있다. 대수는 자신도 모르게 남은 스티커를 긁어낸다. 혹시 썸낭이 떼어냈던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대수는 긁어내던 손을 멈춘다. 옆집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에 대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쫓기듯 안으로 들어간다.  
 현관문을 열자 바로 거실과 주방이 보인다. 좁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대수와 썸낭의 방이 마주하고 있는 구조다. 10년을 살아온 집인데 대수는 오늘따라 집이 낯설다. 어디선가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대수는 순간 오싹해진다. 다시 귀를 기울이니 윗집 아이 가 뛰는 소리만 들린다. 대수는 보청기를 습관적으로 만지작거린다.  
 대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보청기를 꼈다. 귀가 잘 안 들려서 불편하긴 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듣지 못했다고 하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오히려 보청기를 낀 후 불편한 점이 늘었다. 대수에 대한 놀림, 선생님들을 둘러싼 소문 그리고 일찍 남편을 잃고 변변치 않은 아들을 둔 어머니의 한숨.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래서 대수는 지루한 수다나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는 보청기를 일부러 빼놓았다. 텔레비전 볼륨을 줄이듯 세상의 볼륨을 줄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졸업한 뒤 들어간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보청기를 끼지 않아도 직장동료였던 아내의 목소리만은 유독 크게 들렸다. ‘오늘 하늘 참 예쁘네요.’ ‘커피가 떨어졌네요.’ ‘결재 빨리 해주세요.’ 아내의 목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 대수는 보청기를 빼놓지 않게 되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린다더니 이런 게 사랑이라는 생각도 했다. 결혼한 뒤 알게 됐다. 아내는 목소리가 원래 큰 여자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대수는 집에서 보청기를 빼버렸다.  
 돈 얘기를 꺼낼 때면 그 컸던 아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대수가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 영오가 대학에 입학할 때, 집을 구입할 때, 삶의 고비마다 돈이 필요한 순간에 아내는 대수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내의 숨결에 귀가 간지러웠다.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어요.”  
 경첩이 망가져 문이 항상 반쯤 열려 있는 장롱 밑에서, 3단 책꽂이 두 번째 칸 세 번째 책에서, 낡아서 푹 꺼진 소파 쿠션 밑에서 통장이 나왔다. 그때마다 대수는 보청기를 찾아 끼고 아내의 입술에 귀를 갖다 댔다.  
 “못 들었어. 다시 얘기해줘.”
 아내는 대수가 보청기를 끼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고 눈을 흘기곤 했다.  
거실을 둘러보다 텔레비전 앞에 놓인 액자 속 아내와 눈이 마주친다. 앙코르 와트 사원 앞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썸낭이 온 뒤 인사 외에는 별 대화가 없이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며칠 뒤였다. 집 안을 둘러보던 썸낭은 그 사진을 가리키며 반가워했었다.  
 “우리나라예요.”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유일하게 갔던 해외여행이었다.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사흘, 캄보디아에서 사흘간의 일정이었다. 여행 경비는 아내의 화장대 두 번째 서랍 안에서 나왔다. 하롱베이는 꽤 괜찮았다. 배 위에서 갓 잡은 다금바리회도 먹고 취할 수 있었으니까. 프놈펜에 있는 한 박물관과 킬링필드 방문 일정이 있던 날이었다. 박물관 안에는 사람들이 처형당하기 직전, 죽기 직전을 찍은 흑백사진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왜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수는 가이드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내 보청기를 빼고 다녔다. 영정 사진이랑 흙무덤이나 보자고 여기까지 온 거냐며 소리를 지르는 대수를 앞에 놓고 아내는 쩔쩔맸다. 아내의 하얀 피부는 붉게 달아올랐고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사진 속 아내는 브이 자를 하고 평온하게 웃고 있다. 대수는 썸낭의 방문을 연다. 방이 냉골이다. 썸낭이 죽은 후 대수 방만 제외하고는 보일러를 잠가두었다.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에는 영오가 쓰던 좌식 책상이 가구의 전부다. 붙박이장 안에는 영오의 옷 몇 가지와 썸낭의 검은 잠바 한 벌이 걸려 있다. 썸낭의 옷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영오가 입고 다니다 촌스럽다며 던져 버린 옷이었다. 대수가 헌 옷 수거함에 버리려는 것을 썸낭이 보더니 자기가 입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썸낭이 한국에 온 뒤로 겨울이면 줄곧 입었다는 얇은 잠바보다는 나아 보여 내주었다. 썸낭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했다.      
 이 한 벌로 썸낭은 한국에서의 네 번째 겨울을 보냈다. 네 번째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썸낭에게는 이제 이 잠바가 필요 없다. 터진 옷소매 솔기 사이로 하얀 솜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대수는 솜이 보이지 않게 안으로 밀어 넣는다. 옷깃과 소매 주변에 가루가 묻어 있다. 먼지인가 싶어 툭툭 털어내다 잠바가 바닥에 떨어진다. 널브러진 모양이 흡사 사흘 전 아침 팔을 문 앞에 뻗은 채 엎드려 있던 썸낭의 모습 같다. 오싹해진 대수는 검은 잠바를 접어 썸낭이 메고 왔던 배낭에 넣는다. 부피가 커서 잘 들어가지 않고 팔 하나가 비어져 나온다. 대수는 팔을 배낭 안에 깊숙이 욱여넣는다. 책상 위에는 썸낭이 틈틈이 공부하던 영어책과 한국어 교본 그리고 수첩이 놓여있다. 이미 불룩한 배낭에 쑤셔 넣고 지퍼를 닫는다.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둔 휴대전화도 챙긴다. 검은색의 구형 폴더폰은 여기저기 긁히고 찍힌 데다 자판의 글씨는 닳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썸낭은 최대한 저렴한 휴대전화를 구하고 있던 차에 영오를 만났다고 했다. 당시 영오는 비자가 만료된 외국인들에게 휴대전화를 개통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썸낭에게 비싼 스마트 폰을 팔려다 실패하고 중고 폴더폰 하나를 겨우 팔았다고 했다. 영오는 썸낭이 순해 보여도 지독한 면이 있다고 귀띔해줬다. 조사를 끝낸 경찰은 누군가와 주고받은 문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캄보디아어거나 영어라고 했다. 그제야 대수는 자신이 썸낭의 전화번호를 물을 생각도, 자신의 번호를 알려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대수는 썸낭의 방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조심스레 문을 닫는다. 식탁 위에는 검은 봉지가 펼쳐져 있고, 안에는 인절미가 딱딱하게 굳어 있다. 대수가 아침에 허겁지겁 먹다 남긴 것이었다. 대수는 봉지를 묶고 냉동실 문을 연다. 냉동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비닐 봉지들로 꽉 차 있다. 아내가 죽은 뒤 냉동실은 대수와 영오가 먹다 남긴 음식들과 먹으려고 사두었다가 잊어버린 음식들로 가득 찬 쓰레기통이 되었다.  
 썸낭과 처음 같이 밥을 먹던 날, 대수는 그 속에서 겨우겨우 삼겹살을 찾아냈다. 대수는 썸낭을 쳐다보며 “돼지고기 No?”라고 물었다. 썸낭과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중에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곳도 있다고 들어서다. 썸낭은 웃으며 쌈을 싸 먹는 시늉을 했다. 썸낭은 한국어를 곧잘 했지만 긴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보청기를 끼고 귀를 한껏 기울여도 대화의 3분의 2는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대수는 그 와중에도 용케 여권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대놓고 1달러를 요구해 불쾌했던 기억을 전달했다. 썸낭은 얘기를 듣더니 웃었다. 자꾸 웃었다. 대수가 왜 웃냐고 물으니 자신의 나라에서는 미안하면 웃는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오해를 산다고. 뿌옇게 먼지가 피어오르던 흙길에서 만난 소와 닭마저 삐쩍 말랐던 썸낭의 조국. 마지막 관광 일정은 마사지였다. 열여덟 살 소년이 대수를 담당했다. 대수 손목의 반이나 될까. 그 가는 손목으로 해주는 마사지는 시원했지만 불편했다. 굳어 있던 어깨를 세게 누르자 대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소년은 웃었다. 썸낭의 손목도 그 소년처럼 가늘었다. 썸낭은 계속 웃었다.  
 지난 5개월을 떠올려보면 제대로 둘이 마주하고 먹은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이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이 엇갈리기도 했고 밖에서 먹는 일이 많아 각자 알아서 끼니를 해결했다. 썸낭은 밥을 얻어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듯했고, 대수도 내심 부담스러웠는데 잘됐다 싶었다. 식사를 마친 썸낭은 작은방으로 들어가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코고는 소리가 작은 집 안을 채웠다. 대수도 자리를 펴고 누워 보청기를 만지작거리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내가 죽던 날, 중환자실로 급하게 옮기는 중에 아내가 대수를 손짓으로 불렀다. 대수가 허리를 굽혀 아내의 입에 귀를 가져다 댔을 때에야 보청기를 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소리 없이 진동과 숨결만 대수의 볼과 귀에 닿았다. 아내에게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입안이 까끌까끌해서 한 수저도 못 뜨겠다는 아내에게 옆 병상에서 참기름을 건넸다. 참기름 한 방울이 입맛을 당기게 한 걸까. 아내는 죽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숨결이 간질간질해 목을 움츠리던 대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들리지 않는다고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꾸만 고개를 더 크게 끄덕였다. 아내가 희미하게 웃는 것 같았다.  
 뒤늦게 달려온 영오도 그 모습을 본 모양이다. 영오는 아내와의 마지막 대화를 알고 싶어서 몇 번이나 끈질기게 물었지만 대수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영오는 엄마가 목돈을 숨겨두었고, 그것을 대수에게만 말했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 뒤로는 영오도 청력이 나쁜 것도 아닌데 대수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보청기를 끼지 않아서 엄마의 유언을 못 들었다고 고백하는 건 궁색하게 느껴졌다. 사실 장례를 치른 뒤 대수는 집안 곳곳을 뒤져봤다. 화장대 서랍 안과 액자 뒤, 찬장 안은 물론 장롱 밑을 손으로 쓸어보고 심지어 베갯잇을 뜯어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대수를 놀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가 죽은 뒤로 보청기를 꼭 끼고 자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 떨어지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가끔 영오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소리, 시계 초침과 분침이 돌아가는 소리, 창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 온갖 소리가 들려와도 세상의 볼륨을 줄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대수에게 말을 거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썸낭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아내의 귓속말을 생각하다가 대수는 오랜만에 푹 잠이 들었다.  
 위층 아이가 이제 지쳤는지 집 안이 고요하다. 대수는 속이 다시 거북해진다. 비닐봉지를 묶어 인절미를 냉동실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는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휴대 전화가 요란하게 몸을 떤다. 구청직원이다.
 “가족들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겠답니다.”  
 뜻밖의 대답에 대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어째서…….”
 구청직원은 한숨을 쉬었다.  
 “시체 안치소 비용에, 장례 비용에, 운구 비용에, 비행기 값까지 엄두가 나질 않는 거죠. 무연고 시체들 중에 진짜 가족이 없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썸낭은 구청직원의 설명대로라면 독지가를 기다리며 방치될 처지였지만 다행히 인도적인 예산이 마련되어 있어 빠른 장례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시체 안치소가 꽉 차 있어 시체 두 구를 포개어 넣어 놓은 경우도 있어요.” 대수는 구청직원의 하소연을 말없이 듣는다. 냉동실에 욱여넣은 검은 비닐봉지들처럼 다른 시체들과 함께 좁은 안치소에 구겨지듯 들어가 있는 썸낭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족들이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퍼지던 안도감을 떠올리며 대수는 침을 꿀꺽 삼킨다.
 
 “상암동! 상암동!” 손을 흔들며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언제나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던 썸낭도 저런 얼굴로 서두른 적이 있다. 썸낭이 늦잠을 잔 날이다. 마침 일을 나가던 대수가 택시에 태워 썸낭의 일터 앞에 데려다주었다. 택시로 이십 분 정도 거리였다. 조수석에 앉았던 썸낭이 대수의 택시 신분증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이.대.수.라고 천천히 발음했다. 대수의 이름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제야 제대로 된 통성명을 하게 됐다.  
 대수는 썸낭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썸낭은 캄보디아 말로 행운이라고 했다. 자신의 동네만 해도 열 명이 같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렇게 행운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으니 신도 골고루 운을 나눠주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수는 자신의 이름이 ‘대운’이라는 뜻을 가졌음을 기억해냈다. 썸낭과 대수의 부모 모두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없으니 운에 의지하며 살아가라고 지어준 걸까.
 대수는 어색한 침묵을 견디다 라디오를 틀었다. 썸낭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더니 반색했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했다. 여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썸낭의 목소리가 커졌다. 가족 중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이가 여동생인데 한국 아이돌을 좋아해서 한국어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는 말을 할 때 썸낭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보육원에서 일하는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저녁 6시여서 썸낭이 그 시간에 맞춰 저녁 8시에 집에 전화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여동생만은 자신처럼 대학에 보내고 싶어서 등록금으로 쓸 돈을 따로 부친다고 했다. 부모님이 알면 싫어하거든요. 썸낭은 웃었다. 미안함이 아닌 답답함을 감추는 웃음이었다. 캄보디아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80만 원 정도인데 이제 제법 모였다고. 여동생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한국어 교사라는 말도 했다.  
 썸낭은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망설이다 말했다. 그 사람들은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공항직원을 가리킨 말이었다. 대수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썸낭은 약간의 생활비와 월세를 제하고는 돈을 버는 대로 집에 부치고 있었다. 보증금으로 묶여 있는 돈으로 나중에 짧게 여행이라도 하고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돈 얘기 나오자 썸낭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아졌다. “보증금 싸서 감사해요.” 대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보증금?” 썸낭은 영오가 보증금이라며 300만 원의 돈을 받아갔다고 했다. 2년 뒤 썸낭이 한국으로 떠날 때 돌려주는 거라는 설명과 함께. 썸낭은 차에서 내리면서 인사를 꾸벅했다. “감사해요.” 썸낭이 다니는 작은 공장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시장 골목 끝에 있었다. 당황한 대수를 뒤로하고 썸낭은 골목 안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대수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영오가 중국에서 사업할 거라며 돈이 필요하다고 보태 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몇 번 못 들은 척했더니 영오는 더 이상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대수도 잊어버렸다.    
 그날 밤, 썸낭은 사장이 부친의 삼우제여서 자리를 비워 아무도 그의 지각에 대해 타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쌈오제? 어설프게 발음하는 썸낭에게 대수는 삼우제에 대해 설명해줬다. 3일장이 끝나고 난 뒤 사흘 후에 온 가족이 산소나 납골당을 찾아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날이라고. 그러자 썸낭이 손가락 일곱 개를 펴 보였다. 캄보디아에서는 죽은 사람이 7일째 되는 날에 비로소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믿어서 그날 다시 장례식을 치른다고 했다.  
 
 오늘은 썸낭이 죽은 지 사흘째다. 아직 썸낭은 자신이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대수는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린다. 손님을 내려주고 영오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만 갈 뿐 받지 않는다. 썸낭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영오는 “그렇군요.”라고 짧게 답했다. 바쁘다고 나중에 얘기하자는 영오에게 대수는 보증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얘기를 꺼냈다가는 영오가 영영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을까봐 겁이 났다. 대수는 썸낭의 가족들이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메시지로라도 전할까 하다 그만둔다.  
 벌써 오후 4시다. 대수는 일단 늦은 점심이나 먹기로 한다. 기사식당에 들러 5천 원짜리 순대국밥을 주문한다.  
 “외국인 명의로 대포폰을 개통해 중국에 판 일당이 검거됐습니다.”  
 티브이에서 보도되는 뉴스를 보다 대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결국 국밥을 반쯤 남긴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와 소화제 한 알을 삼키고 영오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달달한 믹스 커피 한 잔을 뽑아와 다시 대수는 의자에 앉는다. 썸낭의 배낭 안을 뒤적여 수첩을 꺼낸다. 한글과 영어, 그리고 아마도 썸낭의 나라 것으로 보이는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다. 수첩을 휙휙 넘기다 한글로 씌어 있는 장에서 대수는 멈춘다.  
 엄마, 아빠, 삼겹살, 여동생, 집주인, 착해요.  
 착하다는 건 누구한테 한 말이었을까. 영오일까. 대수일까.
 다음 장에는 썸낭이 월급으로 받는 돈, 집으로 부치는 돈, 생활비 등등 숫자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다. 그중에 한국어로 보증금이라고 적은 글자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두 번 세 번 여러 번 힘주어 동그라미를 그린 듯 자국이 깊게 패어 있다. 대수는 머리끝이 쭈뼛해져 괜히 주위를 둘러본다. 썸낭은 죽기 몇 주 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느냐고 대수에게 물었다. 계약기간을 다 채운 2년 후에나 돌려주는 거라고 대수는 말해주었다. 원래 우리나라 법이 그래, 라고 덧붙였다. 썸낭은 별말 없이 돌아섰다. 대수는 최대한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일찍 잠든 척했다.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썸낭의 발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영오가 지독한 구석이 있다고 흉보듯 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썸낭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수첩을 황급히 넘긴다. 다음 장에는 ‘눈’이라고 적혀 있다. 썸낭은 한국에 오고 나서 첫 겨울을 간절히 기다렸다고 했다. 사진으로 영상으로만 봤던 아름다운 눈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보니 너무 차가워서 무서웠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썸낭의 얼굴이 너무 추워 보여서 대수는 말없이 보일러 온도를 더 높였다.  
 대수는 한국어를 찾아 수첩을 뒤적인다.    
 서울 넓다. 춥다. 썸낭은 춥다. 너무 춥다. 가난하다. 돈 없다.
 대수는 어깨를 움츠린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는지 정체 중인 도로에 서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트림이라도 나오면 낫지 않을까 해서 끄윽 소리를 일부러 내보지만 소용없다.  
 썸낭은 수첩을 다 쓰지 못했다. 중간부터는 빈 종이였다. 대수는 수첩 한 장을 찢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오고 가는 숫자들을 썸낭처럼 적어본다. 오늘이 지나면 40만 원으로 불어날 시체 안치소 비용과 남아 있는 주택 대출금, 오늘 내야 하는 사납금, 그리고 영오가 써버렸을 보증금 300만 원. 그 숫자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대수는 종이를 구겨버린다. 며칠 바쁘게 지내면, 못 들은 척하면 이 숫자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숫자가 된다. 썸낭 때문에 허비한 이틀, 아니 오늘까지 사흘 벌이를 보충하려면 이럴 시간이 없다. 썸낭은 무연고 시체니까 구청에서, 정부에서 처리해줄 거다. 결국 그게 다 우리가 낸 세금 아닌가. 오늘의 사납금이나 채워야 하는 게 맞다고 대수는 생각한다.  
 썸낭의 가방을 구청에 가져다주면 모든 것이 끝난다. 구청직원은 대수의 빠른 일처리를 칭찬할 것이다. 수첩에서 보증금이 씌어 있는 장을 뜯어낸다. 구겨서 주머니에 쑤셔 넣는데 전화가 온다. 구청직원은 가족들이 유품이라도 받길 원한다며 썸낭이 다니던 공장에도 유품이 남았는지 알아봐 달라고 한다.  
 
 대수는 썸낭을 내려줬던 시장의 좁은 골목에 택시를 세우고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문을 연 가게보다 닫은 가게가 더 많은 시장 거리를 지나 5분쯤 걸어가니 막다른 골목에 작은 공장이 보인다. 문은 닫혀 있다. 대수가 주변을 기웃거리며 서성이자 공장 옆에 있던 가게 주인이 나온다. 누구를 찾는지 묻더니 그 공장은 석 달 전에 문을 닫았다고 말해 준다.  
 썸낭은 매달 10일이면 방세를 꼬박꼬박 지불했다. 대수가 집을 나설 때마다 썸낭의 방은 늘 비어 있었다. 썸낭은 어디를 돌아다녔을까. 그 낡은 잠바를 입고 추운 겨울날 거리를 헤매고 다녔을까. 공장에서 점심과 저녁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식사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가만히 서 있는 대수를 지켜보다 가게 주인은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간다. 떡집이다.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가 포장되어 진열돼 있다. 기둥에는 인절미 1킬로그램에 7천 원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붙어 있다. 그 옆에 매달려 있는 검은 비닐봉지 묶음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어디를 긁어야 시원해질지 몰라 등 여기저기를 긁어 보다가 제대로 그 자리를 찾은 것처럼 기억 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썸낭은 가끔 검은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며 들고 들어왔다. 고소한 냄새가 풍겼지만 대수에게 먹어보라고 권하지는 않았다. 한밤중에 가끔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던 소리가 들렸다. 썸낭이 길게 늘어진 인절미를 소리 없이 꾸역꾸역 삼키는 모습이 떠올랐다. 입가에 묻었을 콩고물을 옷소매로 쓱 닦아냈겠지. 남은 인절미는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야무지게 묶어 냉동실에 넣어 두었을 것이다.  
 다시 속이 거북해진다. 소화되지 않은 인절미가 위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다.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부르르 몸을 떤다. ‘당분간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미팅 중. 문자로 연락해요.’ 영오의 메시지다. 대수는 조금 안심이 된다. 아까 뉴스에 나온 사람들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거겠지.  
 영오는 다른 나라에서 휴대전화를 팔고 있고, 썸낭은 다른 나라의 시체 안치소에 누워 있다. “여기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나 봐요.” 영오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사업을 하고 싶다고 조를 때마다 아내는 말했다. 그때의 대수는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에야 궁금해진다. ‘여기에서 당신은 행복했어?’  
 
 퇴근시간이 되자 차도는 꽉 막혀 있다. 도로 위의 차들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트렁크에는 썸낭의 불룩한 배낭이 실려 있다. 대수는 빈 택시가 무겁게 느껴진다.  
 라디오에서 시보가 울린다. 조금 있으면 썸낭이 여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던 시간이다. 썸낭의 작은 목소리도 여동생 앞에서는 커졌다. 대수 앞에서만 커졌던 아내의 목소리처럼. 썸낭이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여동생과 통화하는 소리를 방문 너머로 들을 수 있었다. 영어와 캄보디아어가 뒤섞여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집 안을 채웠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아 대수는 보청기 볼륨을 올리고 귀를 기울였다.  
 정체 중인 도로를 바라보다 대수는 보청기 볼륨을 끈다. 세상은 말이 없다. 다시 켠다. 세상이 한꺼번에 말하기 시작한다. 자동차 엔진 소리,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호등 안내 소리,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두르는 소리, 라디오에서 DJ가 떠드는 소리, 왁자한 웃음소리, 살아 있는 것들이 내는 소리가 귀에 쏟아지듯 들어온다. 대수는 다시 보청기를 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정적을 비집고 신음 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대수는 숨을 들이켜고 귀를 기울인다. 괴로워하며 냈을 신음 소리가, 보증금 얘기를 하기 위해 서성이던 발걸음 소리가, 딱딱한 인절미를 꺼내며 부스럭댔을 비닐봉지 소리가, 빈 뱃속에서 났을 소리가 그리고 아내가 속삭이던 소리가. 대수가 듣지 못한 소리다. 그가 놓쳐버린 소리들이다. 더 자세히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데 누군가 차창을 두드린다.  
 어느 새 신호가 바뀌었고 앞을 막았던 차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요란한 클랙슨 소리에도 반응이 없자 뒤차 운전자가 달려와 창을 두드린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대수의 뒤로 차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황급히 대수가 차를 출발시키자 운전자들이 빠르게 추월해 지나가며 대수를 향해 찡그린 얼굴로 입을 벙긋거린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대수는 그 입모양으로 내용을 짐작하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보청기를 끼기 전에는 사람들의 입모양과 표정, 그리고 상황을 종합해 그 말을 짐작하곤 했다. 대수는 아내의 마지막 입모양을 떠올린다. 도로 정체가 풀려 차들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여전히 대수의 체기는 가시질 않는다. 창문을 내리자 노점에서 만들어내는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라디오 DJ가 곧 입춘이어서인지 아침과는 달리 바람결이 유순해진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대수의 팔뚝에는 오슬오슬 소름이 돋는다.  
 대수는 생각나는 대로 입모양을 따라해 본다. 대수가 입을 벌리자 입김이 허옇게 새어나온다. 모두 마땅치가 않다. 사실 무슨 말이든 상관없다. 아내가 귓속말을 할 때면 대수의 뺨과 귓가를 간질이던 그 따듯한 바람을 떠올려본다.  
 구청 건물이 보인다. 대수는 구청 앞에 차를 세운다. 하지만 핸들을 꺾는다. 구청 주변을 한 바퀴 빙 돈 대수는 다시 제자리다. 대수는 다시 핸들을 꺾는다. 거리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쓰레기와 함께 뒹굴다가 바람을 따라 고층 건물 사이로 날아간다. 앞 대로에서는 손님이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택시를 부르고 있다. 대수는 그 어느 것도 보지 못한 채 구청 주변을 몇 번이고 빙빙 돌고 있다.                                        
- 끝 -
단편소설 당선 소감
저는 올해로 18년 차 라디오 작가입니다. 제가 쓰는 원고의 대부분은 질문입니다. 거의 매일 썼지만 여전히 빤한 질문을 던지고, 용기가 없어 좋은 질문인지 알면서 외면할 때도 있습니다. 소설가가 된 지 오늘로 엿새째입니다. 좋은 질문으로 남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적었는데 너무 거창합니다. 꼭꼭 숨고 싶습니다.  

 
 당선 전화를 받은 다음 날, 새 소설을 합평 받았습니다. 역시나 다시 써야 합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새로 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는 삶을 계속하라는 뜻이구나.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적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두렵고 무섭습니다. 부여잡을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립니다.
 
 매주 토요일을 함께 보냈던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문우들이 제일 먼저 보입니다. 특히 쉼표까지 읽어주는 스터디 문우들인 진, 실, 은, 경, 원, 영과 영. 글쓰기 기술이 아닌 소설을 쓰는 자세와 즐거움을 가르쳐 주신 해이수. 조해진. 홍희정 선생님. 소설 강좌를 전전하며 들었던 조언과 격려들. 라디오를 통해 얻은 소중한 인연과 특별한 경험. 고민 상담소 학보사 후배들. 최근 에세이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엄마에서 문우로 거듭나고 있는 이혜신 여사님. 꼭 붙잡고 다시 용기 내봅니다.  
 
◇정선임=1978년 인천 출생. 가톨릭대 국문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수료. 

단편소설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수준이 고르고 각자 개성적인 특장을 갖추고 있었다.    
 
 중요하게 논의된 네 작품 중 '녹지공원에 간다'는 ‘나’가 친구를 만나 근처 녹지공원이 실은 호수였다는 걸 알게 되는 이야기로, 호수 위에 조성된 녹지공원에 물이 고이듯 ‘나’의 내부에 고인 증상이 발현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과외'는 ‘나’와 ‘아이’의 과외 이야기를 다룬 단순한 소품인데, 이게 뭐라고 읽을수록 이상한 긴장감이 차올랐다. 무엇을 숨기고 드러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르고 있는 솜씨인데, 작품의 규모가 작아 그 솜씨를 믿기 어려웠다.  
 
 '지정주차구역'은 ‘나’와 주차된 차를 빼달라는 ‘사람’과 예전 애인인 ‘너’의 이야기가 묘하게 맞물리며 진행되는데, 이야기를 짜고 호흡을 조절하는 재능이 돋보이는 수작이었으나, 조금 더 정밀하게 조금 더 단단한 현실감으로 채워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아쉬움을 품고 내려놓았다.  
 
 '귓속말'은 늙은 택시기사 ‘대수’가 아침에 먹었던 인절미의 출처를 밝히는 이야기로, 사건의 중심은 세 들어 살던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이지만, 다 읽고 나면 보청기를 만지작거리는 대수의 모습과 구청을 빙빙 도는 택시의 회전이 귓바퀴를 타고 빙빙 도는 여운을 남긴다. 보기 드물게 현실과 진지하게 대면한 작품으로 유머와 디테일과 이야기의 맛이 생생히 살아 있어 흔쾌히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축하드리고 먼 길 함께 가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본심 심사위원=성석제·권여선(대표집필 권여선)
◇예심 심사위원=김도연·심진경·이신조·전성태·조해진  

 
본심 진출작(13편)

-김보배 '콘 샐러드 피망 찾기'

-김새이 '녹지공원에 간다'

-김채린 '모르는 사람'

-박다래 '다음에 놀러와'  

-송지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유은주 '과외'

-이목영 '해변의 밤'  

-이원석 '지정주차구역'  

-임호수 '알레르기'  

-장지은 '정건설과 추문'  

-정선임 '귓속말'  

-정훈 '메리제인'  

-최유리 '적아(敵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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