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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하는 10대 마음, 영화에 표현하려 안간힘 썼던 부분"

중앙일보 2018.09.20 11:58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 대작들 틈새에서 60개 남짓한 스크린으로 엿새 만에 1만 관객을 모았다. [사진 CGV 아트하우스]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 대작들 틈새에서 60개 남짓한 스크린으로 엿새 만에 1만 관객을 모았다. [사진 CGV 아트하우스]

 지난 13일 소규모로 개봉한 '죄 많은 소녀'는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만큼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다. 한 여고생의 실종사건을 통해 또래 아이들 사이에 실타래처럼 번져있는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를 들춰낸다. 같은 반 친구 경민(전소니 분)이 실종되자,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영희(전여빈 분)가 모종의 가해자로 지목된다. 학교 아이들 사이엔 자살로 짐작되는 경민에게 영희가 “안 좋은 생각을 전염시켰다”는 소문이 퍼진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 작품에 주는 뉴커런츠상과 전여빈의 배우상까지 2관왕을 차지했다. 굳은 무표정과 발버둥을 오가며 궁지에 몰린 영희의 심경을 토해내는 신예 전여빈의 연기는 첫 주연임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호소력이 강하다.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로
주목받는 신예 김의석 감독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바탕"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의석(35) 감독. 자전적 경험담을 토대로 한 영화 '죄 많은 소녀'가 데뷔작이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의석(35) 감독. 자전적 경험담을 토대로 한 영화 '죄 많은 소녀'가 데뷔작이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직접 시나리오를 쓴 김의석(35) 감독은 몇 년 전 친한 친구를 잃고 느낀 감정을 토대로 이 장편 데뷔작을 만들었다. 그는 개봉 당일 인터뷰에서 “이 영화로 답을 찾으리라 생각했는데, 만들고 나니 마음이 더 헤집어져버렸다”면서 “데뷔작이 개봉한단 떨림보단, 다른 생각이 더 많아진다. 매일 영화와 영화에 모티브가 된 사건을 복기하며 벗어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여자 고등학교를 무대로 삼은 이유론 “이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회라 생각했다”면서 “자전적 경험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성별 너머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영화의 인간관계는 파괴적이다. 경민과 영희, 단짝 한솔(고원희 분), 경민 어머니(서영화 분)까지, 자신을 상처 입혀 사랑하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 반대로 작동한다. 이러한 애증의 관계조차 맺지 않은 사이엔 완전한 무관심과 위선만이 존재한다.  
“영화가 지독하단 반응을 듣는데 아직 관객을 만나본 적 없는 작가가 실제 경험을 자책하며 자기 고백하듯이 쓴 이야기여서일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시나리오를 쓰며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이야기적으론 과잉일 수 있지만, 제가 느꼈던 감정에 최대한 솔직하고 싶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가짜가 될 것이란 강박이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느끼길 바랐다.”
누구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나.  
“시나리오를 쓰며 떠올린 객체는 지금 영화를 보는 실제 관객들과는 거리가 있다. 사건에 연루된 이들도 아니다. 저를 괴롭히고 따라다니는, 제가 선정한 허구의 객체랄까. 여태껏 저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고 교육한 어떤 유령들? 뒤통수 맞았다는 생각이 컸다. 이런 상실이나 고통을 안고 살면 앞으로 굉장히 발전된,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 주입하는 세상에 우리가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묻고자 했다. 죽은 친구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켜주지 못한 저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가장 컸다.”
영희를 괴롭히는 건 어른들만이 아니다.[사진 CGV 아트하우스]

영희를 괴롭히는 건 어른들만이 아니다.[사진 CGV 아트하우스]

영화에서 가장 이입한 인물은.
“영희가 1번이고, 결말에 있어선 경민 어머니. 영희는 결백하지만은 않다. 어른들만큼이나 비겁하기도 하고 경민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도 엄청나다. 영희에게 진실을 강요하는 경민 어머니 역시 (세상을 원망하면서도 아무것도 몰랐던 스스로를 자책한단 점에서) 영희와 닮았다. 어쩌면 한 사람의 자아분열적 연대기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거울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좌절하는.”
 
마음속에 감춘 스스로의 죄책감과, 어떻게든 사건을 결론짓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추궁 속에 영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여느 영화라면 여기서 멈췄을 텐데 김의석 감독은 오히려 그 이후 영희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상황에 무게를 싣는다. “죽음은 두렵지 않아. 언젠가 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면, 다행이지 않아?” 영화에서 영희가 들려주는 생전 경민의 말이다. 
경민이 실종되기 전 영희와 함께 찍힌 CCTV 화면. [사진 CGV아트하우스]

경민이 실종되기 전 영희와 함께 찍힌 CCTV 화면. [사진 CGV아트하우스]

 
그 누구의 이해도, 위로도 바랄 수 없는 채로 아이들은 홀로 어둔 밤길을 서성인다. 연쇄 고리처럼 되풀이되는 비극을 보고 있자면, 두려움과 죄책감, 안타까움이 뒤엉켜 엄습한다. 극 중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요즘 중고생 사이에 번지고 있다는 자해 현상도 떠오른다.  
 
김의석 감독은 “저도 영화를 준비하며 (자해 현상에 대해) 접했다”면서 “이 영화로 표현하려 안간힘을 썼던 부분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스스로에 대해 연민을 크게 갖고 있지 않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 아이들이 저지른 폭력과 불안한 마음상태에 대해선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 더 많다”고 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상영 후 그는 영화에 딱 한 컷을 추가했다. 초반부 제목과 함께 뜨는 장면이다. 한밤중 외딴 강둑 길을 한 여자아이가 홀로 걸어간다. 경민인지, 영희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다.  
김의석 감독은 스스로를 투영한 영희 캐릭터에 거리를 두려는 마음과 안아주려는 마음을 오가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김의석 감독은 스스로를 투영한 영희 캐릭터에 거리를 두려는 마음과 안아주려는 마음을 오가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원래 엔딩신을 구상하며 찍은 장면인데 초반 타이밍에 넣게 됐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죄 많은 소녀’란 제목에서 ‘소녀’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실 거예요. 그 실루엣도 어쩌면 민경일 수도, 영희일 수도, 이 영화에 지칭되지 않은 누군가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가 세다, 세다 하시는데 현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음 영화도 밝은 분위기는 아닐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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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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