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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투성이지만 ‘미래’ 하나만 보고 10억씩 투자합니다”

중앙일보 2018.09.20 10:23
‘업력 평균 40개월, 영업이익 마이너스, 매출도 적자.’ 지난 6월 국내 은행권 최초로 벤처기업 투자 공모를 시행한 우리은행이 최근 최종 선발한 12개 업체의 현재 평균 스펙이다. 지금 상태만 놓고 보면 현재의 은행권 투자 심사를 통과 못 할확률이 높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이 업체들에 최대 10억원씩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은행 '벤처기업 투자 공모' 12개社 최종 선발
은행권 첫 실험…'영업이익·매출 모두 마이너스'
사업성, 기술력, 성장 가능성만 따져 심사·선발
"12개 중 한 개만 살아남아도 의미 있는 투자"
'손태승 은행장 "담보만 보고 대출, 투자하지 말라"
판교 '혁신발굴 지점장' 발령, 10월 中 2차 투자공모

투자 심사를 담당했던 우리은행 강영호 혁신성장센터 부장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기준’을 뒀다”며 “사업성과 기술력, 성장 가능성 세 가지만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태훈 투자금융부 부장도 “지금까지 은행권의 투자 결정 기준과는 사뭇 다르다”며 “벤처기업 특성상 12개 중 1개만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모두가 성장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사에서 만난 강 부장과 김 부장은 우리은행이 은행권 최초로 실시한 ‘혁신성장 지원을 위한 투자 대상기업 공모’ 심사를 담당했다. 강 부장은 총 250여개 업체의 서류심사와 프레젠테이션 심사 등을 담당했고, 김 부장은 마지막까지 올라온 20여개 업체 중 가장 투자 가치가 있는 기업 12개를 최종 선별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최종 선발된 업체는 ‘대외비’라는 게 우리은행 측의 설명이다. 구체적인 업체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업종별로 따지면 소프트웨어·플랫폼 업체 6개, 제조업 5개, 바이오 업체 1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도 전통적인 제조업체보다는 점자 보조, 반려동물 케어 등을 개발하는 업체들이고, 소프트웨어·플랫폼 업체 중에는 금융 핀테크와 인공지능 딥러닝 개발업체 등이 포함됐다.
 
강 부장은 “모두 시작한 지얼마 안 된 ‘성장’ 단계의 기업이지만, 제대로 투자받아 운용될 경우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12개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새로운 곳을 찾아 투자하는 게 은행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미비’한 지표를 두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 부장은 “투자 부서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익성을 중점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벤처 투자인 만큼 회사에서도 ‘실패’를 용인해줄 수 있는 폭이 크다”며 “좋은 투자, 나쁜 투자가 있겠지만, 지금은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은행권도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손태승 우리은행장 [자료:우리은행]

손태승 우리은행장 [자료:우리은행]

 
이런 벤처 투자 실험은 기존의 대기업이나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영업으로는 은행이 더 클 수 없다는 손태승 우리은행장의 철학도 반영됐다. 은행도 새로운 수익원을 계속해서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강 부장은 “담보만 보고 투자하거나 대출하지 말고 기존과 다른 프로세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일하자는 은행장님의 정책 의지가 많이 반영됐다”며 “실무진에서도 투자 활성화를 위한 고민이 있었던 만큼 서로의 의지가 잘 맞아 떨어져서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의지가 있더라도, 투자 대상을 심사하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영업이익이나 매출 등의 전통적 지표가 아니라 미래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벤처기업 중 어디가 어떻게 성공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 “기업 대표의 역할과 철학이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가 됐다”고 말했다. 단순히 투자를 받아 ‘돈놀이’를 하는 게 아닌, 자신의 기술과 상품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대표의 기업이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강 부장도 “투자를 받으려는 이유와 기술의 가치,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 등 1차 서류 심사에서 기술하게 하는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대표와 그렇지 않은 대표가 있다”며 “서류심사에서도 확신을 가진, 성공 가능성이 높은 대표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된다”고 말했다.
 
프레젠테이션 심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강 부장은 심사에 벤처기업 대표들을 ‘독립군’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부 대표들은 지나치게 기술력에만 매몰돼 있어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강 부장은 “특히 엔지니어 출신 대표들은 시장에 적용되는 기술보다는 무조건 ‘새로운 기술’이기에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라며 “기술을 평가하는 게 30%라면 나머지 70%는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인데 그게 충족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부장은 “이번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해서 그 업체의 기술력이나 성장 가능성이 적은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강 부장은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우리가 잘못 평가했을 수도 있고, 업체 대표가 서류 심사 때 필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상시 투자 대상 발굴팀을 두고, 공모도 다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이를 위해 오는 10월 중순 2차로 투자 대상 기업 공모를 진행할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인 세부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지원대상이나 지원 규모는 1차 때와 동일하다. 김 부장은 “1차 때 떨어진 기업들도 다시 응시할 수 있고, 우리은행과 거래가 없어도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며 “은행의 투자를 받은 업체는 다른 금융권으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기도 매우 용이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실시한 우리은행 벤처투자 공모 포스터. 우리은행에 따르면 오는 10월 중순 1차 때와 같은 형식으로 2차 벤처투자 공모를 실시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원 대상과 선발 기준은 1차 때와 거의 비슷할 것"이라며 "최대 10억원까지 지원할 계획도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실시한 우리은행 벤처투자 공모 포스터. 우리은행에 따르면 오는 10월 중순 1차 때와 같은 형식으로 2차 벤처투자 공모를 실시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원 대상과 선발 기준은 1차 때와 거의 비슷할 것"이라며 "최대 10억원까지 지원할 계획도 같다"고 말했다.

판교에 혁신기업 투자 발굴 업무만을 담당하는 지점장과 직원도 최근 발령했다. 기존 지역 중심으로 이뤄지던 지점장 업무와 달리, ‘판교 지점장’은 투자해도 좋을 혁신 기업을 찾아내는 역할만을 하게 된다. 물론 ‘판교’ 지역 벤처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 측은 “‘판교’가 상징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그쪽에 지점장을 발령하는 것일 뿐, 성장이 가능한 혁신기업이라면 어디나 투자 발굴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투자 대상 기업을 찾아다니고, 혁신 기업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은 이미 시장의 트렌드라는 게 두 부장의 설명이다. 강 부장은 “앞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은행의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한 트렌드가 될 것”이라며 “그 변화에 우리은행이 조금 빨리 승선을 한 것인데, 미래 수익을 찾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혁신성장 기업의 직접 투자는 은행권의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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