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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구하다 숨진 구급대원 아들 "엄마는 국립묘지 안 가요?"

중앙일보 2018.09.20 03:16
지난 5월 3일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에서 동료 소방관이 추도사를 마치고 고인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3일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에서 동료 소방관이 추도사를 마치고 고인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큰아들이 '엄마는 국립묘지에 언제 가냐'고 물어봐요. 나중에 '위험직무순직'이 인정되면 그때 설명해 주려고요."

강연희 소방경 유골, 군산 추모관 안치
일반순직 인정돼 '공무상 사망' 인정
국립묘지 안장되려면 '위험순직' 돼야
소방공무원, 순직자보다 자살자 많아

 
지난달 일반순직이 인정된 강연희(51·여) 소방경의 남편 최태성(52) 소방위의 말이다. 전북 익산소방서 소속 구급대원인 강 소방경은 자신이 구한 취객에게 폭언과 함께 구타를 당한 지 한 달 만에 숨졌다. 두 사람은 부부 소방관이었다. 슬하에 초등학교 6학년과 고교 1학년인 두 아들을 뒀다.    

 
최 소방위는 1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지난달 30일 가결한 '순직유족보상금 결정통보서'를 최근 우편으로 받았다"고 했다. 공무원연금급여심의위원회의가 심의를 거쳐 강 소방경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한 것이다. 전북소방본부가 "직무를 다하다 목숨을 잃은 강씨에 대해 순직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힌 지 넉 달 만이다.

 
지난 4월 2일 오후 1시 20분쯤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윤모(48)씨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경(사망 후 소방위에서 1계급 특진)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캡처. [뉴스1]

지난 4월 2일 오후 1시 20분쯤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윤모(48)씨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경(사망 후 소방위에서 1계급 특진)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캡처. [뉴스1]

강 소방경은 지난 4월 2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본인이 구한 취객 윤모(48)씨가 휘두른 주먹에 머리를 맞았다. 주먹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설과 함께 날아들었다. 사건 이후 불면증·어지럼증·딸꾹질에 시달린 그는 지난 4월 24일 뇌출혈로 쓰러졌고, 일주일 만인 5월 1일 숨졌다.  
 
화재진압대원인 최 소방위는 지난 15일 김제소방서 교동119안전센터로 복귀했다. 지난 7월 말 병가를 낸 지 50일 만이다. 소방관 동료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아내가 꿈에 나타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혼자 있으면 '어떡하다 이렇게 됐을까' 괴롭고 더 그립다"고 했다.  
 
최 소방위는 여름방학 동안 두 아들과 주로 시간을 보냈다. 축구 선수인 작은아들이 떠난 전지 훈련에 큰아들을 데려 가기도 했다. 그가 '엄마가 생각 나냐'고 물으면 두 아들은 "그럼 안 나냐"고 되묻는다. 두 아들은 소방관인 부모를 자랑스러워했다. 현재 강 소방경의 유골은 군산에 있는 한 추모관에 안치돼 있다.  
 
취객을 구하다 한 달 만에 숨진 고 강연희 소방경 유족에게 국민연금공단이 보낸 '순직유족보상금 결정통보서'. [사진 강 소방경 유족]

취객을 구하다 한 달 만에 숨진 고 강연희 소방경 유족에게 국민연금공단이 보낸 '순직유족보상금 결정통보서'. [사진 강 소방경 유족]

최 소방위는 "애들 엄마가 사람을 구하다 죽었기 때문에 국립묘지로 가야 한다. 그래야 덜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소방청과 전북소방본부와 상의해 위험직무순직을 신청할 계획이다. 위험직무순직이 인정되면 강 소방경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국가 유공자 예우를 받는다. 국가 유공자가 되면 일반순직보다 더 많은 보상금과 연금이 유족에게 지급된다.  
 
일반순직은 공무원연금공단, 위험직무순직은 인사혁신처에서 심사한다. 행정직 공무원이 출·퇴근하다 교통사고로 숨져도 일반순직이지만, 위험직무순직은 소방공무원·경찰·군인·교도관 등 위험한 직군에 한해 인정된다.  
 
'순직유족보상금'이 결정됐다는 건 일단 강 소방경의 사망이 '공무상 재해'로 인정됐다는 의미다. 순직유족보상금이란 공무원이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해 재직 중 사망했을 때 유족에게 주는 보상금을 말한다. 지급액은 공무원이 사망한 날이 속하는 달의 기준 소득 월액(월급)의 23.4배다.  
 
지난 5월 3일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에서 동료 소방관들이 고인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3일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에서 동료 소방관들이 고인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공무원연금공단이 보낸 통보서에 따르면 강 소방경의 직접 사인은 '뇌출혈'이다. 통보서에는 '제3자 사고'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공무원연금공단 재해보상팀 관계자는 "사건(사망) 발생에 가해자가 있다는 의미"라며 "보상금은 안건마다 다르지만 (순직) 결정 후 이르면 2주 안에 지급된다"고 했다.  

 
소방공무원들은 일상적으로 위험한 직무를 수행하지만, 스트레스·우울증·불면증 등을 앓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인 질병이나 건강 관리 문제로 치부돼 왔다. 강 소방경의 직속 상관이던 정은애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장(소방경)은 "몸에 난 외상(外傷) 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숨져 순직이 인정된 건 강 소방경이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정신적 외상)를 경험한 뒤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을 일컫는다.

 
당초 "강 소방경이 숨지고, 사회적 이슈가 안 됐다면 순직 인정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정 센터장은 "소방관들은 아주 큰 상처가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에 쓰러졌더라도 공무상 재해 신청은커녕 외부에 밝히길 꺼린다"고 했다. 그는 "강 소방경의 사례가 이런 분위기를 바꾸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5월 2일 전북 전주시 대송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강연희 소방경의 빈소에서 강 소방경의 남편 최태성(52) 소방위를 위로하고 있다. [뉴스1]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5월 2일 전북 전주시 대송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강연희 소방경의 빈소에서 강 소방경의 남편 최태성(52) 소방위를 위로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기준 전국 소방공무원은 4만7457명이다. 이 가운데 화재 진압 및 구급 임무를 맡은 현장 인력이 74%(3만5224명)다. 이러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소방공무원이 많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등이 지난 2015년 소방관 85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방공무원의 인권 상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디스크(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은 소방공무원이 전체의 39.5%(3025명)에 달했다.  
 
소방공무원의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건 오래됐다. 순직자보다 자살자가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의 '소방관 자살 현황 및 순직자 현황'에 따르면 2010년~2014년 5년간 자살한 소방관(35명)이 순직한 소방관(33명)보다 많았다. 자살 원인 중 과반인 19건(54%)이 우울증 등 신변 비관, 가정 불화가 10건(29%)이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 지는 소방공무원들이 정작 본인들의 정신 건강은 챙기지 못하고, 국가도 이를 외면하는 것이다.

 
지난 5월 3일 전북 익산시 익산소방서에서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에 참석한 동료 소방관 일부가 고인의 운구차가 떠나자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3일 전북 익산시 익산소방서에서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에 참석한 동료 소방관 일부가 고인의 운구차가 떠나자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뉴스1]

사회의학 전문가들은 줄곧 소방공무원 등 위험 직군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업무 연관성을 주장해 왔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소수 의견'이다. 사회의학(social medicine)은 사회적 차원에서 건강 문제를 연구하는 의학을 말한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어떤 질병도 100% 개인적이거나 환경적이지 않다"며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소방공무원들은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 소방경이 구급 임무를 다하다 희생됐다는 사실이 온전히 인정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정 센터장은 "소방관들은 일상적으로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 일을 한다"며 "공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해 준다면 소방관들이 현장에 나갈 때 위험을 각오하고 더 많은 인명과 재산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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