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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곰탕집 성추행 판결, 이런 재판이 문제다

중앙일보 2018.09.20 00:46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상언

이상언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내용, 피고인이 보인 언동, 범행 후의 과정 등에 관하여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 또한, 피해자가 손이 스친 것과 움켜잡힌 것을 착각할 만한 사정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사건 직후 많은 남성들 앞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엉덩이를 만진 것을 바로 항의하였는데, 피해자의 반응을 비추어 보더라도 피고인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피해자의 엉덩이를 스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엉덩이 움켜쥐었다는 증거는 피해자 진술 뿐
‘사또 재판’ 수준의 판단이 나온 이유 살펴봐야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오른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한 판결문의 일부다.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면서 그를 법정에서 바로 구속한 판사가 제시한 유죄 판단 이유는 이것이 전부다. ①피해자의 일관된 진술 ②피해자가 착각할 만한 사정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정황 ③피해자의 즉각적 항의, 이 세 가지가 판결 근거다. 강제추행 발생 순간에 대한 목격자 증언이나 추행을 입증하는 폐쇄회로(CC)TV 영상은 없다.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다.
 
현장 상황을 보여주는 CCTV 영상은 두 개가 있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곰탕집 신발장에 피고인의 오른손이 가려져 피해자와 접촉하는 ‘문제의 순간’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보여주지 못한다.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둘째 영상에도 피고인 오른손이 엉덩이를 움켜잡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몸에 손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두 영상을 수십 번 봤지만 고의성 없이 손이 스치게 된 것인지, 의도적으로 엉덩이를 기습적으로 만졌는지, 엉덩이를 움켜쥐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판사는 판결문에 이 영상에 대한 판단을 기술하지 않았다. 그 역시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판결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판사는 별도의 설명은 하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 사건은 지난 6일 피고인 부인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세상에 알려졌다. 이 청원에는 19일 현재 시민 29만여 명이 참여했다. 부인의 글은 ‘아침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출근한다고 했던 신랑이 오후에는 죄수복을 입고 구치소에 앉아서 너무 억울하다고 펑펑 우는데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 하늘이 노래지더라고요’로 시작한다. 판결문과 청원 글에 따르면 여덟 살 아들이 있는 가해자는 이전에 성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이 일을 계기로 만들어진 인터넷 카페의 회원들은 다음 달 27일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피고인과 피해 여성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대전의 한 곰탕집에 온 손님들이었다. 지인을 배웅하러 식당 입구로 나온 피고인과 화장실에 다녀온 피해자가 서로 선 채로 몸이 근접했다. 손과 둔부의 접촉이 있었다는 순간에 피해 여성은 등을 돌린 상태였다. 피고인이 움켜쥐었다는 것은 느낌에 따른 진술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는데, 판사는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고 엄중한 처벌의 이유를 설명했다.
 
언론인 조갑제씨가 1986년에 펴낸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한때 사법연수원생들의 필독서였다. 1979년 9월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저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절규한 오휘웅의 사건을 조명한 책이다. 오휘웅은 내연녀의 남편과 두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가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내연녀 두이분의 진술 때문이었다. 둘이 범행을 공모했고 실행은 오휘웅이 했다는 것이었다. 두이분은 1심 선고를 앞두고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망자의 진술은 결정적 증거가 됐다. 1976년 대법원 판결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두이분이가 무고한 피고인을 기어이 공범으로 끌어들이지 아니하면 안 될 사유를 발견할 수 없다.’ 이 사건을 추적해 판사가 두이분의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해 오판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드러낸 조갑제씨는 책에서 ‘어마어마한 재량권을 가진 판사의 주관적 확신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재판의 본질은 중세 암흑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진실이 진실로 통용될 수 있으려면 객관적으로 증명된 진실이어야 한다’고 쓰기도 했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 피고인이 피해자 엉덩이를 움켜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재판에서 증명되지는 않았다. 판결문은 ‘나는 그렇게 믿는다’ 수준이다. 조선 시대 원님(사또) 재판과 비슷하다. 이런 판결이 사법 불신의 근원이다. 법원은 이처럼 일반인이 수긍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요즘 검찰이 벌이고 있는 재판 거래 의혹 수사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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