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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진일보한 평양회담 성과 … 비핵화 실천에 달렸다

중앙일보 2018.09.20 00:36 종합 30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남북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드릴 수 있어 참으로 가슴 벅차다”며 “남과 북이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에서도 사실상 비핵화와 관련한 말이 나왔다.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아가기로 (정상회담에서) ‘확약’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 ‘확약’ 이행해 북·미 담판 지어야
군사 합의와 경협은 속도 조절 필요

두 정상의 발언은 ‘9·19 평양공동선언’의 제5항을 가리키고 있다. 제5항은 ▶북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북한은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 나갈 용의가 있으며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두 정상이 밝힌 대로 일단 평양공동선언문 5항은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지난 4·27 판문점 공동선언의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문장보다 구체적이다. 특히 표현은 ‘참관’이었지만 김 위원장이 동창리 미사일발사대의 폐기 과정에서 사실상 미국 등의 사찰을 허용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라든지, 비록 조건부이긴 하지만 영변 핵시설도 영구폐기할 수 있다면서 새로운 카드를 제시한 것 등은 지난 6·12 북·미 회담 때보다 진일보한 점이다. 이번 방북에서 제기된 ‘비핵화의 보다 구체적인 표현’과 ‘김 위원장의 육성’이라는 두 가지 기대는 일단 충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이 요구해 온 핵시설과 핵물질 리스트 또는 핵 프로그램에 관한 ‘신고’나 ‘검증’을 허용하는 문제가 담기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선언이 나온 지 1시간30분 만에 트위터에 북한의 핵사찰 수용 소식을 전하면서 “매우 흥미롭다(very exciting)”고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인 만큼 탈선 일보 직전으로 향하던 비핵화 열차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새로운 궤도에 진입할 동력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회담의 목표로 삼았던 ‘북·미 회담의 재개를 위한 중재 역할’도 상당 부분 충족시킨 셈이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대화로 이끌 비공개 카드를 시사한 것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핵 리스트와 구체적 비핵화, 그리고 종전선언은 결국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담판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김 위원장의 비핵화에 관한 실천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번에 쓴 ‘확약’이란 단어를 실제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평양공동선언문에 비핵화 문제만큼이나 한반도 운명에 중요한 대목이 군사 분야에 대한 합의(1항)다. 두 정상이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한다. 특히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군사분계선(MDL) 5㎞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이나 야외 기동훈련을 하지 않고, 비무장지대(DMZ) 1㎞ 내의 감시초소(GP) 11곳을 철수하며, 서해와 동해에 항공기가 접근할 수 없는 비행금지구역을 만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나 군사 분야의 진전은 속도를 생각해야 한다. 전쟁 없는 한반도, 즉 항구적 평화체제의 한반도는 비핵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한 군사적 긴장 완화만 ‘과속’할 경우 국민의 안보 불안심리만 자극할 수 있다. 이는 남북 경제협력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합의된 개성공단 재개와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은 유엔제재 해제와 같이 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대북 예산 지원 역시 반드시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번 평양공동선언문 마지막 항(6항)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관한 내용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정부의 희망대로 연내에 이행된다면 그 자체가 평양공동선언문에 담긴 비핵화 방안 등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반대로 비핵화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서울 답방은 자칫 공약(空約)으로 겉돌지 모른다.
 
오늘 평양에서 돌아온 문 대통령은 오는 24일 유엔총회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 이제 평양 남북 정상회담(9·19)→유엔총회에서의 한·미 정상회담(9·24)→제2차 북·미 정상회담(미정)→서울 남북 정상회담(이르면 연내) 등으로 비핵화 시계가 다시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정상 궤도로 복귀한 북핵 협상이 구체적인 비핵화를 통해 순항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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