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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 상위 0.001%가 영생하는 초계급사회 오나

상위 0.001%가 영생하는 초계급사회 오나

중앙일보 2018.09.20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미드’ 얼터드 카본에선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뇌와 연결된 컴퓨터 칩에 저장할 수 있다. 사립탐정인 주인공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가 죽기 전 목격한 영상을 스크린에 띄어 보고 있다. 칩만 있으면 죽은 이의 기억도 재생 가능하다. [사진 넷플릭스]

‘미드’ 얼터드 카본에선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뇌와 연결된 컴퓨터 칩에 저장할 수 있다. 사립탐정인 주인공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가 죽기 전 목격한 영상을 스크린에 띄어 보고 있다. 칩만 있으면 죽은 이의 기억도 재생 가능하다. [사진 넷플릭스]

“신(神)인줄 알았으나 결국엔 악마였다.”
 
미국 드라마 ‘얼터드 카본(Altered Carbon)’에서 주인공 타케시 코바치가 자신에게 새 삶을 준 므두셀라에게 한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오래 산 인간(969년)인 므두셀라는 이 작품에서 상위 0.001%의 상류층을 부르는 말로 쓰입니다. 이들은 부와 권력, 명예를 모두 쥐고 있죠. 무엇보다 이들은 죽지 않습니다.
 
수백 년 후 인간은 ‘스택(stack)’이라는 장치를 신생아의 뇌에 심어 기억과 의식을 저장하게 됩니다. 육체가 병들거나 사고로 다쳐도 스택만 이식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므두셀라는 젊고 건강한 신체를 갈아타며 영생을 누립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갖게 되죠.
 
‘스택’이라는 칩을 뇌에 연결하면 USB처럼 컴퓨터에 기억과 감정을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스택’이라는 칩을 뇌에 연결하면 USB처럼 컴퓨터에 기억과 감정을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인 그라운더(grounder)는 므두셀라를 신처럼 받들고 동경합니다. 그라운더는 기술문명의 혜택을 얻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연명하죠. 대부분의 일자리는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자동화 돼 변변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불멸하는 므두셀라는 온갖 부패와 범죄를 저질러도 쉽게 처벌을 면합니다. 돈으로 더 좋은 신체를 사주겠다고 꾀어 살인도 서슴지 않습니다.
 
‘얼터드 카본’은 극단적인 양극화로 ‘초계급사회’가 고착된 미래를 그립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잉여가치가 많아질수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된다’는 장 자크 루소의 이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처럼 기술혁신이 가져온 문명의 혜택은 소수에게만 집중돼 있죠. 므두셀라는 우리가 상상했던 그 어떤 유토피아보다 멋진 삶을 살지만, 대다수는 문명이 발달하기 전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얼터드 카본’처럼 앞으로 불평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농경 사회엔 누구나 기술을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었지만 산업이 발달할수록 소수의 사람들이 기술을 독점했다”며 “발전한 과학문명의 혜택을 소수만 누리고 다수는 받지 못하는 ‘기술소외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도 “자본과 지식을 가진 엘리트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돼 중산층 붕괴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죠.
 
 
소수에게만 기술발전 혜택
 
실제로 2017년 서울대 유기윤 교수팀이 발표한 ‘2090 미래 보고서’는 이 같은 전망을 구체적으로 뒷받침 합니다. 2090년 미래는 4계급으로 나뉘는데 최첨단 기술을 독점한 기업인 0.001%가 최상위층을 차지하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대중의 선망을 받는 인기스타(연예인·스포츠인·정치가)가 2계급을 형성합니다. 그 다음은 사회 각 분야의 중요한 일자리를 대체할 AI가 3계급이고, 나머지 99.997%의 사람들이 4계급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의 대부분을 AI에 빼앗기고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거나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거란 이야기죠.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이들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고 부릅니다. AI가 주축인 사회 구조에 종속돼 단순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계급이란 뜻이죠. ‘불안정하다(precario)’는 이탈리어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입니다.
 
지금도 이미 불평등은 우리가 처한 가장 위험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에 따르면 양극화 문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상위 1%의 소득은 1980년경 평균소득의 9배에서 2010년 20배로 늘어났습니다. 같은 기간 영국에선 6배→14배, 호주에선 5배→9배, 일본은 7배→9배로 증가했습니다. 부유층일수록 일을 해서 버는 돈(노동소득)보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소득의 증가율이 훨씬 크기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는 게 피케티의 설명입니다.
 
 
더욱 커져가는 양극화
 
벌어지는 상·하위층 소득 격차

벌어지는 상·하위층 소득 격차

문재인 정부가 펼치는 소득주도성장도 피케티의 이론과 일부 맞닿아 있습니다. 기업의 이윤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경제가 성장한 만큼 노동자의 소득(임금)이 늘지 않아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피케티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릅니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부동산, 주식, 예금 등 자산에 더 높은 누진세를 매기자고 제안합니다. 다만 세계 모든 나라가 동시에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전제죠. 부자들이 더 낮은 세율의 국가로 자산을 이전시킬 출구를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부의 정책은 출구가 뻥 뚫려 있습니다. 임금을 인상하는 대신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자동화로 바꿔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최근 식당과 편의점에서 시급을 올리지 않고 무인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불평등 해소의 핵심은 일자리
 
기술의 발달로 가뜩이나 ‘무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격입니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고용 없는 미래’를 앞당기는 꼴이라 일터에서 쫓긴 서민들은 오히려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실제로 배달의 민족은 최근 인공지능(AI) 바리스타를 적용한 로봇카페를 오픈했고, 테이블 사이를 ‘자율주행’하는 서빙 로봇도 개발했습니다. 이미 상용화 된 AI 의사 왓슨, AI 변호사 로스처럼 인공지능의 일자리 침투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기술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막을 순 없습니다.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된다”는 일론 머스크의 지적처럼 기술의 발전은 늘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했기 때문이죠. 다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직업증발’을 맞이해야 할 사람들만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이처럼 앞으론 소득격차로 인한 불평등보다 일자리를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양극화가 더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될 전망입니다.
 
김중백 교수는 “미래엔 누가 돈을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상황이 온다”며 “단순히 최저임금만 올릴 게 아니라 자동화로 인한 직업증발을 연착륙시키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고용창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을 시장의 효율성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불평등은 시장의 장점인 역동성과 생산성을 마비시켜 사회 전체를 침몰시킨다”(『불평등의 대가』)는 것이죠. 적절한 양극화 해소 정책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성장을 견인할 수 있지만 당장 눈앞의 통계치를 올리려는 대증요법은 오히려 ‘직업증발’ 시대만 앞당깁니다. 미래사회에서 불평등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AI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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