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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선] 애국적 오만

중앙일보 2018.09.17 00:35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다. 자신들의 문화 역시 세계 최고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나라를 천하(天下)라 불렀고 왕조를 천조(天朝)로 일컬었으며 황제를 천자(天子)라 칭했다. 이 같은 중국인들의 집단무의식은 제국주의 열강들한테 철저하게 농락당하던 19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중국인들과는 달리 깨어있었던 사상가 루쉰(魯迅)은 수필 ‘수감록(隨感錄) 38’에서 이런 미몽(迷夢)을 ‘애국적 오만’이라 개탄했다. 그리고 그 애국적 오만의 종류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중국은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며 일찍이 문명을 꽃피웠고 우리의 도덕은 세계 최고다. 둘째 외국의 물질문명이 뛰어나기는 하나 중국의 정신문명은 더욱 뛰어나다. 셋째 외국의 문물은 중국에도 이미 존재하는 것이며 이러저러한 과학적 이론은 이미 중국의 누구누구가 말한 것이다. 넷째 외국에도 거지나 초가집, 창녀, 빈대는 존재하는 것이다. 다섯째 중국은 야만적인 면에서조차 뛰어나다.
 
루쉰의 신랄한 풍자가 떠오른 건 그 애국적 오만이라는 집단무의식이 21세기 이 땅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아서다. 한국인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어쩌면 극히 소수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칼을 쥐고 있어 위험한 소수다. 루쉰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어도 현재의 권력자 그룹에서 애국적 오만의 냄새를 맡을 거라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루쉰을 패러디해 이를 다시 다섯 종류로 정리해볼 수 있을 터다.
 
첫째 우리는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고 압력과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도덕은 최고다. 둘째 이 땅을 기아에서 해방시킨 사람들도 뛰어나기는 하지만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심은 우리가 더욱 뛰어나다. 셋째 개발 독재가 없었더라도 이 땅의 경제는 충분히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며 아마도 분배 정의가 더 잘 실현되는 경제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넷째 보수주의자들한테도 무능과 무책임, 비현실성이 존재하며 ‘싸가지’ 없는 사람도 많다. 다섯째 우리는 공작적인 측면에서조차 뛰어나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누구는 이들을 좌파라 부르고 누구는 진보라 부르며 누구는 운동권이라 하고 누구는 종북(從北)이라고도 한다. 그렇게만 말하면 완전하지 않다. 그것이 다 섞인 그룹인 까닭이다. 종북이란 분류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나는 그들의 애국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쩌면 국가와 국민의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해온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손에 쥔 뒤 드러나는 그들의 오만은 아무리 그것이 애국적이라 하더라도 방과할 수 없는 것이다. 오만하지 않고서야 보수 정부가 한 짓을 죄다 적폐라 몰아붙이면서 자기들도 똑같은 짓을 저지르는 행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 출범 이후 곳곳에 떨어진 낙하산 인사가 그렇고, 요즘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헌법재판관과 장관들의 하자(瑕疵) 인사가 그렇다. 우리는 정의로우니 우리와 코드만 맞으면 도덕성이 없어도, 능력이 있건 없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거 아니냔 말이다. 다른 게 오만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덜한 오만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위험천만한 경제 실험과 국가의 운명을 운에 맡기는 듯한 천진난만한 안보 정책은 살이 떨려서 지켜보기 힘들다.
 
경세제민(經世濟民)하는 방법의 차이야 인정할 수 있지만, 지표와 통계를 왜곡해 자기 논리를 뒷받침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빈곤을 혐오하고 분배를 추구하는 좌파는 되레 빈곤을 고착시키고 나눠줄 것도 없게 만드는 정책에 매달린다’는 역설이 또 한차례 입증되고 있는데 한가하게 “성장통(成長痛)” 운운하고 있는 것은 국민을 능멸하는 짓이다.
 
남북 평화와 공존을 누가 반대하겠냐마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핵 위협 위에 경협의 사다리만 서둘러 놓으려는 태도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무시한 무책임한 짓이다. 그러면서 국회의장과 야당 대표들로 하여금 청와대의 방북 동행 요청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모독하는, 오만을 넘어 방자한 짓이 아닐 수 없다. “당리당략” “꽃할배”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루쉰은 “(중국인들이) 현상을 바꾸지 않고도 흥성할 수 있고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만 있다면 야만적인 삶도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나”라고 썼다. 그리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인이 세계인에서 밀려난다는 것(수감록 36)”이라 했다. "먼저 자신을 개조한 다음 사회를 개조하고 세상을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쉰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우리 권력 그룹의 애국적 오만을 먼저 바꾸지 않으면 결국 민심과 함께하기 어려울 것이며, 끝내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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