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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의 퍼스펙티브] 미·중 기술 냉전, 제조업 강화만으론 위기 돌파 어렵다

중앙일보 2018.09.17 00:02 종합 29면 지면보기
미·중 무역전쟁 대처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간 5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각서에 서명할 때만 해도 협상을 통한 해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멕시코와 유럽연합(EU)의 경우 트럼프의 강력한 무역 위협이 일시적으로 후퇴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실행 단계에 접어들고 미국이 2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 부여 계획을 발표하고, 중국도 600억 달러의 미국 상품에 보복관세 부과를 예고하자 무역 마찰은 전쟁의 양상으로 비화했다. 미·중 양국이 경제적 상호확증파괴 때문에 ‘싸우되 판을 깨지 않겠지만(鬪而不破)’,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관리하는 가짜 친구(superficial friend)가 될 가능성은 커졌다.
 
 
표준 경쟁을 둘러싼 ‘기 싸움’
 
미국이 무역전쟁을 촉발한 배경에는 다양한 노림수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2017년 기준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 66.3%에 달하는 3752억 달러의 대중국 무역 적자와 지적재산권 보호에 일차적 목적이 있었다. 또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국산 제품이 미국 국민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중국 위협론’을 전파해 지지층을 결집할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미래 패권의 핵심인 표준 경쟁에서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는 데 있었다. 현재 중국은 우주항공장비와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은 뒤처져 있으나, 첨단 공작 장비, 로봇, 신소재 등 분야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고, 인공지능(AI), 신에너지 자동차, 차세대 정보통신산업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
 
이것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중국 부상을 관리할 수 있었던 패권 국가 미국이 여유를 잃게 한 배경이다. 이것은 2017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제정한 인터넷 망(網) 중립성 법안을 폐지할 때 충분히 예고되었다.
 
 
사문화된 법안 부활과 기술 보호주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과정에서 미국은 사문화된 상태로 있던 1930년 관세법, 62년 무역확장법, 74년 무역법, 88년 종합무역법 등을 모두 불러냈고, 국가 안보와 경제 복지라는 모호한 개념을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고 있다. 즉 ‘2019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D)’을 통과시켜 미국 내 외국 투자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과 보고 체계를 강화하고 심사 대상을 확대했으며, 외국 투자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 위험 현대화법’도 통과시켰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이 미국 퀄컴사 인수를 추진하자 매각 중단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중흥통신(ZTE)이나 화웨이 같은 중국 통신장비 기업은 물론이고 중화계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가 미국 통신 기밀과 5G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미국은 직접 고용 효과만 25만 명에 달하고 연간 164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군사 드론 등 국방 부분과 긴밀하게 결합한 자국의 반도체산업 등에 대해서는 강력한 보호주의 울타리를 쳤다. 중국의 미래 핵심 10대 산업을 육성하는 ‘중국제조 2025’ 계획에 맞서 철강·알루미늄·자동차·선박·항공기·반도체 등 6대 핵심 산업 육성 계획도 이러한 구상의 일환이었다.
 
심지어 포드자동차와 애플사를 향해 미국에서 물건을 만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압박과 보호정책이 한계에 부딪힐 경우,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효용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등의 추가 카드도 준비해 두었다.
 
 
중국의 맞춤형 전략: 순응·적응·대응
 
중국은 여기서 밀리면 계속 밀린다고 보고 사안별로 순응·적응·대응 전략을 짰다. 첫째, 순응이다. 무역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미국에 보내거나 수입 확대와 같은 조치는 수용할 것이다. 이것은 중국에도 산업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적응이다. 증권·금융시장 개방, 관세 인하, 외국인 투자에 대한 제한 조치 완화와 함께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에 적응하고자 할 것이다.
 
셋째, 대응이다. ‘중국제조 2025’ 전략 등은 양보가 불가능한 핵심 이익이자 발전권으로 간주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미국 미래산업의 핵심인 천연가스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등 ‘강 대 강’으로 대응하고 있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 대신 중국의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려 14억 명의 중국 인구가 미국인처럼 소비하는 전략을 짜고, 기업 법인세 인하, 소득세 개편과 같은 재정 수단을 동원해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중국 때리기’를 계속하고, 민주당도 여기에 편승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불투명한 전망, 절반의 성공
 
미·중 무역전쟁 여파는 소비자 물가가 오르고 성장 둔화 조짐도 나타나는 등 취약성이 높은 중국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실물경제가 강한 미국 경제는 올해 2분기에만 4.1% 성장하는 등 성장 모멘텀을 찾았다. 무엇보다 중국 내 외자 기업들은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공장 이전을 통해 활로를 찾을 수 있으나, 중국은 무작정 수입을 줄일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중국이 미국산 대두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수입선을 바꾸기도 했으나, 사료 가격이 급등하는 등 오히려 중국 돼지 농가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기축 통화 국가인 미국에 대항해 외환보유고를 줄이거나 미국산 국채를 내다 파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이를 의식하듯 시진핑 주석도 9월 3일 중국-아프리카협력 포럼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을 다시 환기했다. 또 지식사회에서는 “권법(拳法)으로 서양을 몰아내고자 하는 현대판 의화단”을 경계해야 한다는 자성도 나타났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에 반드시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 미국의 주 정부는 연방정부와는 셈법이 다르다. 2017년 말 기준 30개 주에서는 대중국 수출이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미국 내에서만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현실 때문에 미·중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또 동아시아에서 안정적인 규범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면서 미국의 지도력이 약화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지적재산권 침해 등에 대해서는 효과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글로벌 무역의 대부분이 중간재이고 대부분 중국을 중심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국가의 경제적 피해가 크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해 15~25% 관세를 부과하면 내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예상치인 2.7%에서 1.2%, 5%에서 3.7%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근본적으로 다른 국가가 미국에 상품을 팔고 미국 외부로 달러를 가져 나와 세계 금융시장, 특히 미국 자본시장에 재투자했으나, 미·중 무역전쟁으로 무역 규모가 줄면서 국제 금융시장에 나오는 달러 규모가 줄고, 달러 가격이 높아져 미국 자본시장 내 투자도 줄어드는 악순환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의 와신상담(臥薪嘗膽)
 
한편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년과 건국 100년이라는 ‘두 개의 100년’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앞두고 강대국의 꿈을 여기서 접을 수는 없다는 결기를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금융 안정 방안 등 선제적 조정 과정을 통해 금융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12조 달러에 달하는 중국 경제가 연간 6.7%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속해서 10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독려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기존의 경로 의존을 버리고 미래 표준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무너뜨린 신소매 시대를 열었고, 군사 드론,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과 결합해 표준을 바꿀 기술 혁신을 위해 2020년 5G 기술 상용화와 이에 대한 73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4차산업혁명이 주도하는 초불확실성의 시대에 기술 혁신을 시장에만 맡겨두지 않고 유능한 정부와 효율적 시장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미·중 무역전쟁은 우리에게 위기와 기회의 요소가 동시에 있다. 우선 국가자본주의에 갇힌 중국을 보다 규범에 가까운 국제 질서로 끌어내고 비관세 장벽을 낮추며, 중국 시장의 추가 개방과 미국 시장 내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무역 전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보복과 추가 보복의 악순환에 대한 부담 때문에 미·중이 잠정 합의(modus vivendi)에 이른다 해도, 글로벌 교역이 위축된 상태에서 중국이 미국 제품 수입을 확대할 경우, 한국은 대체 시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요즘 트럼프 리스크 때문에 ‘답이 없는 세계’라고 한다.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칼끝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올 일도 멀지 않았다. 이를 위해 우선 다자통상체제가 약화된 상황에서 지역통상체제인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미국이 빠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메가 자유무역지대, 한·중·일 FTA 등 다자주의 그물망을 엮어야 한다.
 
또 글로벌 가치사슬 체계가 급변하는 현실에서 제조업 경쟁력 강화만으로는 위기 돌파가 어렵다. 따라서 한·중 FTA 서비스 분야를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협력망을 신속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핀테크 등 낙후된 기술 금융을 포함한 산업생태계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제조 2025’ 구상이 기술의 자주 혁신으로 발전하고 미국도 국가 보안을 이유로 한국의 중국 통신설비 활용을 제약하는 기술냉전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기 때문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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