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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낮춘 조승우 “원톱보다 두루 섞이는 영화가 좋다”

중앙일보 2018.09.17 00:02 종합 22면 지면보기
13일 영화 ‘명당’으로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조승우. 작품 선택 기준을 묻자 그는 ’규모에 관계없이 새로운 시도로 정면돌파하는 작품에 끌린다“고 말했다. [뉴시스]

13일 영화 ‘명당’으로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조승우. 작품 선택 기준을 묻자 그는 ’규모에 관계없이 새로운 시도로 정면돌파하는 작품에 끌린다“고 말했다. [뉴시스]

배우 조승우(38)가 19일 개봉하는 사극 ‘명당’(감독 박희곤)에서 조선시대 왕가의 운명을 바꾼 천재 지관 역으로 추석 표심 잡기에 나섰다. ‘명당’은 ‘관상’ ‘궁합’에 이은 역학 영화 3부작의 완결판. 그가 연기한 지관 박재상은 조선시대 세도가 김좌근(백윤식 분)에 아내와 자식을 잃고,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 분)을 도와 복수를 꾀하는 사내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에게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라고 조언한 지관이 있었다는 역사 기록을 토대로 상상력을 보태 지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조승우가 곧 장르”라 호평받은 드라마 ‘비밀의 숲’ ‘라이프’처럼 극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한발 물러선 역사의 관찰자에 가깝다.
 
개봉에 앞서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조승우는 “박재상은 세도가와 흥선의 팽팽한 대결 축을 받쳐주는 인물”이라면서 “묵직함을 잃지 않되 튀지 않으려 했다. 요즘 관객에겐 좀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필요한 역할이라 봤다”고 했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에 끌렸나.
“제 역할은 아니지만, 많이 보지 못했던 흥선대원군의 젊을 적 모습과 그가 변해가는 과정, 세도정치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7년 전 야구영화 ‘퍼펙트 게임’을 같이했던 박희곤 감독님이 저한테 사극을 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퍼펙트 게임’ ‘인사동 스캔들’도 그렇고 감독님의 역동적이고 빠른 템포 연출을 좋아하는데, 이런 장점이 접목되면 조금 색다른 사극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풍수지리에 대해 관심 있었나.
“전혀 없었다. 역할을 위해 따로 지관을 만나거나 하진 않았지만, 조선 후기 궐 안의 지관이 하는 일이 오로지 왕릉을 조성하는 명당을 찾고 주변 조경을 가꾸는 등에 초점이 쏠렸단 사실은 흥미롭더라.”
 
13년 전 젊은 시절부터 중년, 결말부의 노년까지 직접 소화했는데.
“처음엔 노년 모습이 적응이 안 돼서 몹시 부담스러웠다. 막상 찍을 땐 나름 괜찮다곤 생각했는데, 관객들 반응이 어떨까 두렵다. 13년 전 장면은 감독님이 저한테 2주 시간을 주기로 했다. 살을 쪽 빼서 젊을 때를 차별화하려 했는데, 스케줄이 꼬이면서 여유가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된 것 같아 아쉽다.”
 
‘명당’ 촬영 현장의 조승우(왼쪽)와 배우 유재명.

‘명당’ 촬영 현장의 조승우(왼쪽)와 배우 유재명.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을 끄는 건 젊은 흥선의 모습이다. 권세가의 위악에 목숨을 부지하려 미친 척하며 감춰왔던 욕망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극적인 인물 곁에서 박재상이 끝까지 무게감을 잃지 않는 건 흥선을 통탄하며 지켜보는 그의 시선이 이 영화의 주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조승우는 “인간이 갖지 말아야 할 욕망을 꼬집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지 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라 했다. 영화 ‘내부자들’(2015) 이후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부각돼온, 권력 앞에 물러섬 없는 꼿꼿한 이미지가 이번 영화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
 
데뷔 초엔 ‘하류인생’‘타짜’처럼 원톱 출연작이 많았다. 최근 앙상블을 이루는 역할에 더 매력을 느끼는 건가.
“원톱이다, 투톱이다 하는 건 부담만 심할 뿐 의미 없다. 연기할 땐 작품 안에서 상대 배우들과 좋은 합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누구 하나만 우뚝 솟아있기보단 두루두루 같이 잘해나가는 걸 더 좋아한다.”
 
출연 작품을 택할 때 중시하는 부분은.
“이미 봐왔던 뻔한 형식에 소재나 캐릭터만 바꾼 시나리오는 피한다. 얼마 전 ‘서치’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는데, 형식의 새로움으로 내용의 진부함을 정면돌파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런 작품을 찾는다. 저는 TV 단막극 ‘이상 그 이상’, 영화 ‘암살’ 카메오 출연도 그렇고 역할이나 작품 규모는 별로 가리지 않는다. 시도 자체가 흡인력 있고 신선하다면 초저예산 독립영화도 기꺼이 할 생각이다.”
 
배우로서 지키려는 본분이 있다면.
“영화든, 뮤지컬이든 단순히 멋있어서, 재미로 보는 작품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조금이라도 사회적으로나,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10년, 15년이 지나도 의미 있게 남는다. 지금껏 했던 작품은 다 그랬다는 게 제 작은 자부심이다.”
 
얼마 전 종영한 의학 드라마 ‘라이프’에 대해서도 그는 “드라마로 다루지 않았다면 뉴스 한 켠에서 모르고 스쳐 지나갔을 의료 현실을 짚어냈다”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돌이켰다.
 
조승우는 오는 11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2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다. 2004년 처음 공연했던 작품이니 벌써 15년째다. 그는 “전 많이 했다고 생각해서, 이걸 또 하면 보시는 분들이 지겨워하시지 않을까, 후배들 길을 막는 게 아닌가, 했는데 이 작품을 10년 기다렸다는 분 얘기를 듣고 좀 아차 싶었다. 공연은 객석 수가 제한적이고, 티켓 전쟁이란 게 누군가에겐 상실감을 줄 수도 있더라. 이번 공연에 그분이 꼭 오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같은 역할을 하다 보면 나이가 들면서 이제야 보이는 것들도 생긴다”고 했다.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역을 스물일곱 살에 처음 했는데, 지하감옥에서 삶에 대해 말하는 대사가 쉽게 안 나왔다”는 그는 “30대에 할 때 달랐고, 40대를 바라보는 지금 또 달라지는 소소한 것들이 있다. 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즐겁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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