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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논설위원이 간다] 정권 색깔 좇는 교육부는 대입 손떼고 독립기구에 넘겨라

중앙일보 2018.09.17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대입제도를 연구하는 엄마모임
지난달 17일 시민·학부모단체가 청와대 앞 광장에서 대입제도 개편을 비판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17일 시민·학부모단체가 청와대 앞 광장에서 대입제도 개편을 비판하고 있다. [뉴시스]

‘내년 고1·고2·고3 학생은 제각각 다른 수능을 치른다’. 잦은 대입제도 변경이 초래한 혼란의 단적인 예다. 해방 후 17번이나 입시가 바뀐 탓에 수험생은 늘 ‘실험쥐’ 신세다. 뿔난 학부모 목소리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학부모단체들도 ‘성명전’에 가세한 까닭이다. ‘대입제도를 연구하는 엄마모임’(대표 윤세라·46)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8월 수능개편 연기를 계기로 서울의 한 독서모임 엄마들이 변신했다. “학부모가 직접 대입을 공부하고 개선안을 제안하자는 취지”라는 게 윤 대표 설명이다. 매달 모임 때마다 10명 내외가 머리를 맞댄다. 지난 11일 모임에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오늘은 내신이 공정하고 객관적인지, 교과·비교과 평가가 대학 수학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 볼까요.”
 
숙명여고 학부모들이 5일 밤 학교 정문 앞에서 시험지 유출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박태인 기자]

숙명여고 학부모들이 5일 밤 학교 정문 앞에서 시험지 유출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박태인 기자]

여느 때처럼 윤 대표가 토론 주제를 먼저 제시했다. 경찰 수사로 번진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의혹 사건이 학부모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터라 ‘내신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 싶었다. 내신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신은 공정하게 출제되고 관리되는가, 그래서 아이들이 제대로 평가되는가가 관건입니다. 그런데 학교 간에는 물론이고 같은 학교 앞·뒷반 간에도 불공정이 존재해요. 동일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끼리 출제방향을 공유하지 않아 반별 유불리가 생기는 거죠.”(이진영·46)
 
윤 대표가 거들었다. “내신 출제가 사지선다이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예요. 창의교육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대학 가서 공부할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건지도 의문입니다.”
 
표미현(45)씨는 학생들이 내신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아이들 학교생활을 보면 화가 나요. 시험 기간엔 교과에만 집중해도 모자라는데 수행 쓰나미에 새벽 1~2시까지 시간을 보내기 일쑤예요. 거기에다 독서활동과 봉사시간을 채워야 하고 수상이나 동아리 등 교내활동도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교사에게 밉보이면 학생부에 불리하게 쓰일까 봐 숨죽이고 학교생활을 합니다.”
 
내신 성토는 학부모 고충에 대한 하소연으로 바뀌었다. 대입제도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아이들 입시’가 아니라 ‘학부모 입시’란 것이다. 입시 정보와 전략을 전적으로 학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비정상적 구조 탓이란다. 이윤정(43)씨는 “입시가 너무 복잡하고 자주 바뀌다 보니 엄마의 정보력 부족으로 아이가 대입에서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박주현(50)씨의 얘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하는 부모들은 복잡한 입시를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나 여건이 미흡합니다. 아이 입시 준비를 제대로 못 시켜 준 부모는 미안한 마음뿐이죠.”
 
연구모임 엄마들의 하소연은 고통스러운 입시제도 뒤에 숨은 교육당국을 향한 질타로 옮아갔다. 공론조사까지 동원한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 마련 과정에서 교육부가 보인 ‘철학 빈곤’ ‘책임 회피’ 행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윤 대표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교육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도대체 교육이나 입시에 대해 기본 철학이나 정보가 있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듭니다. 학부모는 국민으로서 세금 내고 제대로 된 교육행정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엉망이고 불완전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입시제도를 접해야 하니까 정말 화가 납니다.”
 
이진영씨의 비판에도 날이 섰다. 그는 “교육현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탁상공론에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답습하니 현실성 떨어지는 정책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계속해서 바뀌는 입시제도 아래에선 학교도 학생·학부모도 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책이나 제도가 지속될 거라는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중3 학생들이 치르는 2022학년도 대입 방안이 지난달 확정됐다. 연구모임 엄마들의 중·고생 자녀들에게 적용될 대입틀은 좋으나 싫으나 이미 정해졌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들은 내 자녀와 상관없이 미래 세대가 바람직한 대입제도를 갖기를 소망한다. 행복한 학교생활을 누리고 입시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서다. 연구모임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리는 바람직한 대입제도는 어떤 것일까. 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잡힌 건 아니지만 대체로 공감하는 방향은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교육부가 입시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표의 설명을 들어봤다. “교육부가 입시 정책을 쥐고 있는 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도 흔들기가 반복될 게 뻔합니다. 교육부 대신 교육전문가와 교사, 학부모로 구성된 독립기구가 입시제도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일 거란 생각입니다.” 표미현씨가 의견을 보탰다. “입시제도 만큼은 정권의 색깔을 입혀서는 안 됩니다. 큰 애 다르고 작은 애 다른 입시를 이제 끝내야 해요. 교육부에서 입시를 떼내 정권의 색깔과 무관한 독립기구에 맡기는 게 방법입니다.”
 
독립기구가 만들어갈 대입제도의 방향은 우선 ‘단순화’와 ‘안정화’가 돼야 한다는 게 연구모임 엄마들의 생각이다. 윤 대표는 “수시와 정시로 나누어진 지금 입시가 우리 현실에 안 맞을 수도 있다. 공정성 확보를 전제로 입시를 단순화해 부모의 역할과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정화’는 예측 가능한 입시를 의미한다. 박주현씨는 “입시제도가 10년, 20년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줘 혼선 없이 대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대학의 자율적 학생 선발권이 이미 헌법과 고등교육법에 명시돼 있다는 근거도 들었다. “대학교육이 세계 대학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학생을 뽑아 어떻게 공부시킬지는 대학에 맡기는 게 맞다. 교육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게 이들 주장의 골자다. 물론 대입 자율화에 대한 염려가 없지는 않다. 대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가 아직은 공고하지 못한 까닭이다. 우가영(45)씨는 “대입 완전 자율화로 가기 전 단계에선 입시 결과 공개 등 불공정 선발 방지 시스템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무리수를 둔 대학은 사회적 평가를 통해 퇴출당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 스스로 제어를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이후 1년여를 대입제도 개편에 예산과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갈등만 증폭시키고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단순·공정한 대입제도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역대 가장 복잡한 대입제도를 낳은 채 무위로 끝났다는 비판과 함께다. ‘대입제도를 연구하는 엄마모임’은 교육부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해체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했다. 뿔난 엄마들이 비단 이들뿐이겠는가. 백척간두에 선 교육부 처지를 교육부만 모르는 듯하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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