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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때 새엄마 존재 알게 된 남편, 날 콩쥐 보듯

중앙일보 2018.09.16 07:01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46)
며칠 전 메일함을 보니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있었다. 35년 전 탄광에서 만나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분으로 서울에 먼저 올라와서도 남편에게 큰 도움을 주던 든든한 이웃 동생이었다. [사진 네이버 캡쳐]

며칠 전 메일함을 보니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있었다. 35년 전 탄광에서 만나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분으로 서울에 먼저 올라와서도 남편에게 큰 도움을 주던 든든한 이웃 동생이었다. [사진 네이버 캡쳐]

 
며칠 전 메일함을 보니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있었다. 신문에 난 내 글을 본 아들이 아버지가 애타게 찾고 있는 분이라며 신문사로 보낸 메일을 전달받은 것이었다. 35년 전 탄광에서 만나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분으로, 서울에 먼저 올라와서도 남편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든든한 이웃 동생이었다.
 
전쟁이 따로 있나? 가난과 함께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살며 이리저리 이사하다 보니 서로 연락이 끊겼지만 마음으론 항상 기억하고 사람이다. 메일을 보면서 반갑고 기쁜 마음에 엉엉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요즘 가끔 안부 전화를 하는데 며칠 전 통화가 생각나 추억을 더듬어 본다.
 
“형수, 그때 내 나이가 20대 중반이었제. 언젠가 내가 대구 간다고 하니 돌아가신 형님이 북부 터미널 근처에 처가가 있는데 꼭 안부 전해 달라며 전화번호를 줬잖아. 가서 공중전화기를 찾아 전화하니 그 자리서 꼼짝하지 말고 있으라고 해서 기다리지 않았겠수? 그랬더니 아버지가 나와 내 손을 잡고 말없이 집으로 데리고 가는 거야. 집에서는 어머니가 잠깐 사이에 진수성찬으로 밥상을 차려 놓고는 내 두 손을 잡고 어린 내 딸과 사위 잘 부탁한다며 눈물을 흘렸거든.

어린 동생들은 전쟁터에 나간 매형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겠다 싶어 모두 조용히 옆에 앉아 있었지. ‘나도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부탁은 무슨 부탁’ 속으로 생각하며 어려운 자리에 앉아 차린 밥을 꾸역꾸역 먹는데 어머니가 계속 눈물을 훔치시고 있었지. 그렇게 내가 형수네 가족을 모두 알게 됐잖아. 그런데 말이여, 신문에 나온 글을 쭉 읽어 보니 그 어머니가 새엄마라는 거야? 정말? 그분의 행동은 새엄마가 아니었어~”
 
한참을 옛날이야기로 울면서 대화하다가 이 대목에서 그만 빵 터졌다. 새엄마는 무슨 색깔일까? 새엄마는 모습이 다른 걸까?


나를 가슴으로 낳은 자식으로 끌어안았던 새엄마
20~30년 전쯤 여동생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고 한티재 계곡으로 물놀이 가서 찍은 사진이 한장 남아있다. 왼쪽이 여동생, 오른쪽이 엄마다. 올해 57세인 여동생과 환갑인 나는 당시 58세에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다. [사진 송미옥]

20~30년 전쯤 여동생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고 한티재 계곡으로 물놀이 가서 찍은 사진이 한장 남아있다. 왼쪽이 여동생, 오른쪽이 엄마다. 올해 57세인 여동생과 환갑인 나는 당시 58세에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다. [사진 송미옥]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엄마가 새엄마라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새엄마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이 불러준 거였지 우리에겐 그냥 엄마였고 엄마도 우리를 당신의 가슴으로 낳은 자식으로 끌어안고 사셨으니 그런 단어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 혼인신고를 하려고 서류를 떼니 거기에 새엄마의 존재가 나와 있었다. 남편은 너무 놀라 나를 쳐다봤다. 동화책에 나오는 계모에게 구박받으며 살아온 콩쥐 혹은 신데렐라의 주인공을 보는 듯 측은하게 쳐다보며 말을 못했다.
 
거기에 시어머니의 한마디는 오랫동안 내 가슴에 상처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잘 키웠다 해도 계모는 계모다. 손이라고 해도 손등과 손바닥이 다르듯이.”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어머니도 새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시어머니에게 새엄마는 동화책에 나오는 나쁜 새엄마의 모습이었나 보다. 한동안 시어머니가 서럽게 하거나 미울 때는 그 불씨를 끄집어내어 남편과 싸우곤 했다.
 
엄마는 내가 5살 때 처녀의 몸으로 우리 집에 오셨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우리는 잘 알지만 서로가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툴러 대화를 많이 못 한 게 한이 되었다. 그래서 대화도 배워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요즘은 재혼가정이 많아 그 환경의 아이들을 만날 때는 남다른 애정과 관심이 생긴다. 우리 동네에도 재혼해 딸아이를 기르고 있는 분이 시댁에 오는 길이라며 딸과 함께 가끔 동네에 들린다. 사춘기 딸과 엄마가 대화를 많이 해 ‘잘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알아 새로운 환경을 이해하려고 한다. 또 새엄마가 생겨도 친엄마같이 해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새로운 사람끼리 만났으니 서로 투덕거리더라도 대화를 많이 하며 살다 보면 마음이 통하고 정이 흐르게 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사랑이 머리서 가슴까지 내려가는 데 30년"
고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가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고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가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그리고 꼭 어른이 먼저 손을 내밀어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다. 너의 아픔을 이해하고 싶다”고 애정으로 다가가면 참 좋겠다. 그 옛날엔 내 엄마가 5시간 기차를 타고 우리 집에 다녀갈 때 나를 안고 울어주지 않아 섭섭했다. 지금 생각하니 돌아가는 기차 칸에서 내내 울었을 듯하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이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가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한 것 같다.
 
주말엔 새 가족 같은 동생 내외와 아들들이 벌초하러 가는 길에 인사차 들리겠다고 한다. 이산가족들끼리 만나는 것처럼 반갑고 벌써 마음이 설렌다. 새엄마도 새 형제도 새롭다는 말은 다시 시작하는 시간을 만들어 간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사랑한단 말을 못해서~” 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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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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