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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한 소극장 뮤지컬의 전설

중앙선데이 2018.09.15 02:00 601호 6면 지면보기
10년 만에 운행 재개한 ‘지하철 1호선’
새로 시작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한 장면

새로 시작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한 장면

‘지하철 1호선’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1994년 시작해 2008년 4000회를 끝으로 공연을 중단했던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얘기다. 독일 그립스극단의 ‘Linie 1’을 연출가 김민기가 번안한 작품이지만, 90년대 서울을 무대로 완벽하게 재창작되어 한국 뮤지컬 초창기 ‘소극장 뮤지컬의 전설’로 통했다.  
 
당시엔 모든 게 신기했다. 한국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밴드가 무대에 올랐고, 11명의 배우가 80개 역할을 소화하는 1인 다역 연기, 소극장의 한계를 극복한 전동 계단식 무대 등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거리로 우리 관객을 소극장뮤지컬의 매력에 눈뜨게 했다. 당시 신인배우였던 재즈싱어 나윤선을 주역으로 발탁한 1994년 초연 이후 15년간 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만났고, 중국·일본·홍콩·독일 투어까지 했다. 한국판 ‘지하철 1호선’을 15번 관람한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는 “전세계 20여개 도시에서 공연되고 있는 ‘지하철 1호선’ 중 가장 감명 깊게 본 공연”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저녁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마당에는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을 비롯해 우리 공연계 주요 인사들과 그간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간 배우들이 대거 모였다. 내년 50주년을 맞는 그립스극단의 공연 초청을 계기로 10년만에 다시 달리게 된 ‘지하철 1호선’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원작자들의 흉상(오른쪽 사진) 제막식을 시작으로 공연 관람과 축하 리셉션 등 밤늦게까지 축제분위기가 이어졌다.  
 
학전에서 1000회 장기공연을 했던 고 김광석의 흉상 바로 옆으로 독일 원작자들의 흉상이 공개되자, 루드비히 작가는 영 쑥스런 표정이었다. 그는 “독일 원작보다 김민기의 작품이 2배나 더 많이 공연됐다. 나는 텍스트를 쓴 것 밖에 없고 김민기가 작품을 훌륭히 만들어줘 고맙다”면서 “독일에서는 흉상을 만드는 게 흔치 않아 지금 이 순간이 당황스럽기도 기쁘기도 하다. 나보다 김민기의 동상이 10개는 있어야 한다”고 김민기를 추켜세웠다. 초연배우 설경구도 “김민기 자체가 이 공연의 매력이다. 공연이 김민기라는 사람을 닮았다”고 말했다.  
11일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린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왼쪽에서 네 번째)·비르거 하이만(왼쪽에서 세 번째)의 흉상 제막식에 연출가 김민기(가운데)와 배우 설경구·장현성·김윤석(오른쪽 세 명)이 참석했다.

11일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린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왼쪽에서 네 번째)·비르거 하이만(왼쪽에서 세 번째)의 흉상 제막식에 연출가 김민기(가운데)와 배우 설경구·장현성·김윤석(오른쪽 세 명)이 참석했다.

 
설경구 외에도 김윤석, 장현성, 배해선 등 ‘지하철 1호선’ 출신 스타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들중 일부는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특정 회차에 단일 배역으로 깜짝 출연할 예정이다. 이들과 함께 일명 ‘학전 독수리 오형제’라 불리는 황정민·조승우까지 걸출한 배우들을 배출한 ‘배우 사관학교’답게 이번 공연에는 85: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은 11명의 신인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10년 만에 재개된 운행이지만 ‘1998년 IMF 시절’이라는 시대 배경과 텍스트는 그대로다. 정재일의 음악감독 참여로 건반·기타·베이스기타·아코디언·퍼커션·바이올린의 6인조로 새롭게 구성된 라이브 밴드가 더욱 폭발적인 사운드로 무장했을 뿐. 연변처녀 ‘선녀’의 눈에 비친 실직가장·가출소녀·노숙자·잡상인 등 세기말 한국사회의 다양한 인간군상이 똑같이 재현된다. 당시 너무나 펄펄 뛰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었던 무대였기 때문일까. 이제와 과거를 돌아보는 무대가 되니 조금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김민기에게 오랜만에 공연을 올린 소감을 묻자 평소 말이 없는 그는 “엉터리”라고만 짧게 답했다. 무슨 뜻일까. 4001회부터 시작한 이 “엉터리” 뮤지컬은 12월 30일까지 총 100회 한정으로 공연된다.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극단 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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