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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비결이요? 자신의 삶을 사세요"

중앙선데이 2018.09.15 02:00 601호 30면 지면보기
영화 '타샤 튜더' 
105분의 러닝타임 동안 카메라의 앵글은 허름한 나무집과 정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다. 그저 사계절에 따라 정원이 무시로 바뀌고, 그 정원을 맨발의 할머니가 오가며 무심히 말할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 놓치는 게 많아요. 사람들은 행복의 비결이 뭐냐고 묻죠. 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답하죠. 나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일도 많고요. 이렇게 앉아 음미할 수 있어 정말 좋아요. 꽃ㆍ수련ㆍ석양ㆍ구름ㆍ자연에 모든 것이 있어요. 인생은 너무 짧아요. 즐겨야죠. 그렇지 않나요?” 
 
다큐멘터리 속 아흔 한 살의 행복한 할머니는 타샤 튜더(1915~2008)다. 100여 권의 그림책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동화 작가이자 『비밀의 화원』『소공녀』와 같은 동화책의 삽화를 그린 화가다.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미국 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매해 가장 뛰어난 그림책을 쓴 사람에게 주는 상인 칼데콧 상을 두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부드러운 색감의 세밀하고 생생한 그림을 잘 그려서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 삽화를 그린 이력도 있다. 책 본문과 삽화의 테두리를 꽃ㆍ새ㆍ동물 그림으로 장식해, 원본 책이나 그림은 소장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돼 전세계 수집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런 타샤 튜더의 삶은 그의 그림과 빼닮았다. 타샤는 작가로 성공했지만 되려 시골 생활에 파묻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잔잔한 물과 같은 삶”을 추구했다. 56세에 미국 버몬트 주에 30만 평의 땅을 사서 정원 가꾸기에 돌입했다. 그리고 30년간 가꿨다.  
 
그의 정원은 ‘꽃들의 천국’ ‘비밀의 화원’이라 불리며 전세계 원예가들이 부러워하는 정원 중 하나로 꼽힌다. 타계 후에도 수많은 사람이 들리는 명소가 됐다. 쉴 때조차 손을 움직이며 정원을 보살피는 타샤의 정원 가꾸기 1원칙은 ‘인내심’이었다. 그는 “실현하기까지 과정을 즐기면서 인내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타샤는 크래프트 정신이 살아 있는 옛 삶을 동경했다. 모두가 변하느라 바쁠 때에 그는 18세기 영국식 전원풍 정원을 가꾸고, 직접 천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양초와 비누도 만들어 썼다.  


사실 그는 보스턴 사교계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의 자제였다. 당시 조선 기사였던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는 타샤가 일찌감치 사교계에 진출하길 원했다. 하지만 타샤는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길 거부했다. 그는 농부로, 원예사로,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답답하고 고루하다고 여겨졌던 타샤의 라이프스타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미국 아동문학편집자이자 타샤의 오랜 친구인 앤 케이 베네듀스는 “위기의 시대일수록 전통이 이어지길 바라는데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 타샤의 세계관이 돋보이기 시작했다”며 “단순히 즐기는 삶이라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라는 의미였고, 아직도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다”고 소회했다. 
 
흥미롭게도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일본인이다. 마츠타니 미츠에(58) 감독은 2005년부터 NHK에서 제작하는 ‘전 세계의 정원사’를 위해 취재하다 타샤 튜더의 이야기를 가는 곳마다 듣게 됐고,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고 전한다. 마츠타니 감독은 “타샤가 하고 싶은 것은 자연과 마주하는 생활이었다”며 “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지만, 타샤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사람들과 현대사회에 대해서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타샤와 그의 큰아들과의 대화였다. 아들이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묻자 타샤는 아흔 한 살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답을 한다. “이번 생애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단다. 지금도 가장 행복하단다.” 타샤가 들려주는 인생동화가 잔잔하면서 따뜻하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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