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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는 기억하고 있다

중앙선데이 2018.09.15 02:00 601호 28면 지면보기
빵요정 김혜준의 빵투어: 서울 서초동 ‘초초 베이크숍’ 
▶초초 베이크숍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449-1 초초베이크숍ㅠ 9:00-22:00 (토요일 9:30 오픈), 일요일 휴무 02-3471-1220

▶초초 베이크숍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449-1 초초베이크숍ㅠ 9:00-22:00 (토요일 9:30 오픈), 일요일 휴무 02-3471-1220

운이 좋게도 주변에 맛과 멋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덕분에 믿고 따르는 ‘맛 스승’들의 알찬 추천으로 숨겨진 맛집과 새로운 먹거리를 맛보곤 한다. 손맛 좋은 서울 이촌동 식당 ‘수퍼판’ 우정욱 셰프의 추천으로 알게된 것이, 그 당시 ‘애니 초초’라는 이름의 쿠키다. 뉴욕 스타일의 베이크 숍이자 카페인 ‘초초 베이크숍’의 제품이었는데, 그때 맛봤던 상자 안을 가득 채웠던 진득하고 촉촉한 쿠키의 맛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 혀로 기억하는 맛을 잊지 못해 실제 매장을 찾아가봤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맞은편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2011년 12월 문을 연 이후 내부 리뉴얼을 했던 1월을 제외하고는 현재의 자리에서 지금까지 지켜 온 모습이다. 번화가나 역세권과는 꽤 동떨어진 상권이지만, 7년 동안 꾸준히 드나드는 단골들의 발걸음은 끊임이 없단다. 과연 그들이 ‘초초 베이크숍’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컵케이크

컵케이크

답을 얻기 위해 구움과자와 디저트들을 만드는 조민진 파티시에를 만났다. 조 파티시에는 처음부터 제과를 전공한 이는 아니다. 다른 업종의 회사에서 10년쯤 일을 하다 서른아홉이란 나이에 동생이 살고 있던 뉴욕으로 가게 되었다. 그토록 열망하던 요리 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뒤 5년여는 노부(Nobu), 불레이(Bouley)를 거쳐 교토푸(Kyotofu) 뉴욕 현장에서도 일을 했다.  
 
하지만 요리사의 길에 체력적 한계를 느꼈고, 한국에 나와 톨릭스 카페를 컨설팅·총괄 관리 하면서 완전히 귀국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가게를 열었다. 초콜릿을 좋아해서 초초, 직장 동료였던 애니의 이름을 따 ‘애니 초초’라는 이름이었다. 4년이 지난 뒤엔 동업 관계를 마무리하고 지금의 ‘초초 베이크숍’이라는 이름으로 홀로서기를 했다.  
 
그가 일했던 레스토랑이나 같은 시기의 미식 트렌드는 ‘퓨전’과 밀접했다. 덕분에 그는 여러 가지 재료를 어떻게 조합할지, 낯선 메뉴를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는 작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너무 달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간이 모자란 것처럼 허전해서는 안 되는, 양질의 재료가 돋보이는 디저트를 목표 삼았다. 단순한 공정의 쿠키는 되려 자신 있게 재료의 품질을 보여주는 품목 중 하나다. 설탕의 종류와 양에 따라 구워져 나왔을 때의 질감도 달라지고 풍미 또한 영향을 받는다.  
 
애플파이

애플파이

이 작은 공간에서 만들어 내는 메뉴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당시 맛보았던 쿠키들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컵케이크는 레드 벨벳을 비롯해 아홉 종류나 되고, 바 형태의 브라우니, 캐롯 파운드, 애플파이, 맛차생초콜릿, 휘낭시에, 2종류의 브리오슈와 스콘 등이 망라해 있다. 초코 더블 점보, 콩가루 믹스넛 쿠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가장 뉴욕스타일을 잘 느낄 수 있는 뉴욕 치즈케이크와 마시멜로 역시 존재감을 드러낸다.
 
너무 많아 뭘 먹어야 할 지 모를 땐 대표 메뉴부터 맛보는 게 정석이다. 조 파티시에는 단연 애플파이를 꼽는다. “수플레를 좋아하다 보니 애플파이에 적용을 시켜서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시켰어요. 뉴욕적인 것을 한국시장에 선보이려는 메뉴이기도 하고요.”  
 
먹어 보니 자랑으로 내세울 만하다. 과하게 달지 않고 충분히 폭신한데다 느끼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뜨거운 스킬릿(냄비의 일종)에 나오는 파이 형태는 매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데, 손님들 요청에 바 형태로 구워 식힌 후 테이크 아웃이 가능하게 만든 버전도 만들었다.  
 
파티시에 한 명과 보조 스태프 한 명뿐인 이곳에서 이리 많은 메뉴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메뉴 하나하나가 고른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라는 괜한 걱정도 앞선다. “매니어라 할 만한 단골들이 메뉴 하나하나에 대해 애정을 보여주시니 차마 종류를 줄일 수 없어요.” 조 파티시에의 답이다. 비싼 원두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손님들을 위한 감사의 의미란다.  
 
물론 꿈은 이곳의 메뉴만큼 방대하다. 지금도 행사 답례품이나 선물로 예약하는 경우가 많아 여기에 걸맞은 시스템과 인력을 꾸리는 게 일차 목표. 강의를 여는 것도 또 다른 계획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얼 먹을지부터 고민했던 그가 꿈을 이룬 지금, 이 행복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작은 빵집이 맛있다』 저자. ‘김혜준컴퍼니’대표로 음식 관련 기획·이벤트·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 숙명에서 프랑스 제과를 전공했다. ‘빵요정’은 그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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