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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기술이 자연스레 연결되는게 표현"

중앙선데이 2018.09.15 02:00 601호 24면 지면보기
제17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작가전 시작한 오민
제17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돼 6일 서울 도산공원 앞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수상작가 개인전 ‘연습곡(Etude)’(11월 4일까지)을 시작한 작가 오민(43)의 경력은 특이하다.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다시 미대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다. 미국 예일대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렇게 사운드와 비주얼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그가 화두로 붙들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인식’ ‘기술’ ‘표현’ 같은 것들이다. 이 추상적 개념을 그는 ‘표정’과 ‘몸짓’으로 구현하려 한다. 
 
공연자에서 창작자로 … 달라진 시각
전시장에는 대형 스크린 2개와 작은 모니터 5개, 흰색 사각형 의자 7개가 있다. 모니터에 보여지는 지시문(사진2)은 동시에 대형 스크린속 여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숲 속에 있는 여자(사진1)는 진짜를, 방 안에 있는 여자(사진3)는 자신의 상상을 본다. 관람객은 그들의 표정에서 지시문에 반응하는 ‘인식’을 비교해 본다.

전시장에는 대형 스크린 2개와 작은 모니터 5개, 흰색 사각형 의자 7개가 있다. 모니터에 보여지는 지시문(사진2)은 동시에 대형 스크린속 여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숲 속에 있는 여자(사진1)는 진짜를, 방 안에 있는 여자(사진3)는 자신의 상상을 본다. 관람객은 그들의 표정에서 지시문에 반응하는 ‘인식’을 비교해 본다.

오민의 작품 미학은 일종의 지시문인 악보를 수동적으로 연주하던 연주자가 창작자가 되어 자신이 직접 세계를 촘촘하게 구축하고 세세한 지시를 하게 된 전복적 상황에 기인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본다. 지시가 전달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태도에 주목한다. 해석과 즉흥이라는 변수에도 흥미가 많다. 
 
그는 7월 24일부터 10월 14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대표작가였던 이형구와의 2인전 ‘2018 타이틀 매치’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전시는 작가가 추구하는 ‘생각의 표정’을 구현한 24분짜리 영상 ‘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2014)부터 이번 전시의 초기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연습무의 연습무’나 ‘연습곡의 연습곡’(2018)까지 8개의 작품을 7m 짜리 스크린 패널을 통해 볼 수 있는, 프롤로그 전시라고 할 수 있다.  
 
피아노를 오래 쳤다.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했다. 자아형성 이전부터 접한 음악은 내게 모국어나 다름없다. 대학에 들어와서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게 됐나.  
“세상을 더 알고 싶고 내가 가진 호기심을 스스로 풀어보고 싶었다. 미술 공부를 시작한 이유다. 디자인 학부에서 다시 2년간 공부하다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는 내가 생각하던 그래픽 디자인과 다른 것을 물어보더라. ‘너는 어떤 거에 관심 있니? 그걸 어떻게 풀거니?’라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었나.  
“구조를 만드는 것? 이를 테면 시간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흐르는 시간을 절단해 단면을 보면 거기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또 칸딘스키는 추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컴포지션을 구상했을까. 이런 게 궁금했다.”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공연 경험이 도움이 됐을 것 같다.  
“공연자는 무대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인식한다. 인식한다는 것은 관찰하고, 지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하고, 구성하고, 예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좋은 공연을 위해서는 ‘인식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전시 소책자에서 작가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은 간결하다. ‘미술가. 불안의 감각을 연구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경 큐레이터는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과정에서 ‘불안’이라는 감각과 마주하는 경험이 있는 작가는 이 불안감을 조절하기 위해 인간들이 발전시켜온 ‘기술’에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결정되지 않은 요소가 불안의 감각을 만든다. 불안은 집중력을 끌어온다. 불안과 집중력이 주는 긴장감, 나는 거기서 아름다움을 찾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연습곡’이 된 까닭이다.  
 
‘연습곡’은 보통 연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만들어진 악곡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이엘’이나 ‘체르니’가 대표적이다. 기교 연마를 위한 교본은 쇼팽과 리스트 덕분에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콘서트용 악곡까지 지칭하게 됐다. 오 작가는 “연습곡에는 작곡가의 독특한 사유가 녹아있다”며 “그 속에 있는 ‘기술’은 결국 작곡가와 연주자의 ‘생각’과 ‘표현’과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이는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하나의 지시는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가
전시장을 둘러보니 대형 스크린 2개와 작은 모니터 5개, 흰색 사각형 의자 7개가 보인다. 대형 스크린 하나에는 숲 속에 서 있는 여자가, 다른 하나에는 방 안에 있는 여자가 보인다. 작은 모니터에는 작가의 지시문이 뜨는데, “나무를 보라”고 하면 한 여자는 진짜 나무를, 다른 여자는 상상 속 나무를 본다. 의자는 관람객을 위한 것인데, 관람객 역시 지시문을 따르도록 권유받는다. 두 여자, 그리고 관람객이 하나의 지시문에 짓는 표정의 차이가 관전 포인트다. 작가는 “생각하는 대로 수행하는 게 기술이고, 생각과 기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게 표현이며, 표현이 몸에 익으면 태도가 된다”고 말한다.  
 
‘연습곡’이라는 테마는 어떻게 잡게 됐나.  
“작년에 서울대에서 12명의 작곡가와 12명의 피아니스트가 12개의 피아노 연습곡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얘기를 친구로부터 듣게 됐다. 학창시절 입시와 시험 때마다 연습곡을 연주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문득 현대의 작곡가들은 연습곡을 통해 연주자에게 어떤 기술을 요구하는지 궁금해졌다. 그것을 습득하려는 연주자의 노력도. 또 지금까지 영상과 공연을 제작하면서 나는 공연자들에게 어떤 기술을 원했나 하는 것도 생각했다.”  
 
기술이라면 테크닉을 말하나.  
“기술이라는 게 반드시 신체적인 재주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시간을 조절하고 연주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기술이다. 표현에 앞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태도를 갖느냐도 기술이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즉흥적 반응도 중요할 것 같다.  
“음악 연주와 무용은 공통점이 있다. 몸을 쓴다는 것이다. 반면 차이점은 고전 음악은 결정된 대로 연주하는데, 현대 무용은 즉흥성이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것이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용가가 곧 창작자인 셈이다. 그래서 인식의 기술이 중요하다는 발견을 한 것 같다.”  
 
제17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작가인 오민의 개인전 ‘연습곡’이열리고 있는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장. 대형 스크린 2개와 작은 모니터 5개, 흰색 사각형 의자 7개가 있다.

제17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작가인 오민의 개인전 ‘연습곡’이열리고 있는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장. 대형 스크린 2개와 작은 모니터 5개, 흰색 사각형 의자 7개가 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 미묘한 차이가 흥미로웠다. “오민의 작업은 간결한 제스처, 반복적 패턴, 최소한의 표현의 정교한 결합에 의해 때로는 성스런 의식처럼 때로는 가벼운 유희처럼 진행된다”는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심사평이 떠올랐다.  
 
이 상은 미술계 지원을 통한 한국 문화예술계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2000년 시작됐다. 외국 기업으로는 최초다. 미술상의 영문 표기도 ‘Missulsang’이다. 장영혜를 시작으로 김범(2001)·박이소(2002)·서도호(2003)·박찬경(2004)·구정아(2005)·임민욱(2006)·김성환(2007)·송상희(2008)·박윤영(2009)·양아치(2010)·김상돈(2011)·구동희(2012)·정은영(2013)·장민승(2014)·정금형(2015)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2015년부터 2년에 1번 진행으로 방식이 바뀌었다. 국내외 4인의 심사위원이 선정한 1명의 작가에게는 이듬해 파리 레지던시에서 4개월간 지내며 신작을 만들고, 이를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오 작가는 신작을 만들면서 영상 및 음향 전문가들과 본격적으로 야외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을 큰 수확으로 꼽았다. “제 작품의 특성상 저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직접 찾는 게 관건이죠. 처음엔 프로듀서를 찾고 다음엔 프로덕션 매니저를 찾는 식으로 하나씩 풀어갑니다. 오디션 지원자를 일일이 심사하면서 ‘인식의 기술’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힘들었어요. 연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반응, 즉 오버액션 없이 외부의 신체를 활발하게 사용하며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무용과 퍼포먼스를 넘어 앞으로 연극을 활용하는 방식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오 작가는 “작품은 컨셉트에 따라 선택지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그 선택지를 믿고 즐기려 한다”고 말을 맺었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에르메스 재단·ⓒ남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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