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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달라고 빽빽대는 아이, 뭐가 문제인가

중앙선데이 2018.09.15 01:00 601호 32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공격성, 인간의 재능

공격성, 인간의 재능

공격성, 인간의 재능

‘공격적 성향’에 대한 새로운 성찰
인류문명 떠받쳐온 본능 같은 것
타인 파괴하는 증오와 구분해야

앤서니 스토 지음
이유진 옮김, 심심
 
오늘도 ‘지옥철’을 타고 출근한다.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콩나물시루에 몸을 구겨 넣으니, 숨이 턱 막힌다. 가만히 서 있어도 힘든데 주위 사람들까지 난리다. 게임을 하는지 스마트폰 쥔 손으로 쿡쿡 찌르는 옆 사람, 문이 닫힐 때쯤 ‘내린다’며 육탄돌격을 하는 뒷사람.
 
초주검 상태로 회사에 와 PC를 켜니, 진짜 ‘지옥도’가 펼쳐진다. 아버지가 친구 딸을 죽이고, 노래방 주인이 손님을 토막 살인했다는 엽기 뉴스가 가득하다. 뉴스에 달린 댓글들도 살벌하고 끔찍하긴 매한가지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세상은 왜 점점 ‘동물의 왕국’이 되는 걸까.’
 
잠깐 넋을 놓고 있었나. 부장이 눈으로 레이저를 쏜다. 어제 낸 보고서가 부실하다며 댓바람에 욕바가지다. 부라린 부장 눈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문득 내 안에서도 ‘동물’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든다. ‘이놈의 회사 안 다니면 될 거 아니야’ 하며 책상을 엎어버릴까. ‘헉, 내가 드디어 미쳐가는구나.’ 부르르 고개를 떨며 다시 서류 더미에 코를 처박는다.
 
가상의 얘기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경험, 비슷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였던 고(故) 앤서니 스토가 쓴 『공격성, 인간의 재능(원제 Human Aggression)』에 따르면 이 이야기에는 틀린 게 두 가지 있다.
 
공격성은 인간 본성에 어두운 그림자다. 하지만 공격성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본능이기도 하다. [중앙포토]

공격성은 인간 본성에 어두운 그림자다. 하지만 공격성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본능이기도 하다. [중앙포토]

첫째, ‘동물의 왕국’이라니. 동물은 죄가 없다. 먹이를 얻기 위해 사냥할 뿐이다. “같은 종(種)의 일원을 습관적으로 파괴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중략) 극도로 ‘야만적인’ 행동은 인간에게 국한된 특징이다.”
 
둘째, 인간이 공격적 충동을 느끼는 건 미쳐서가 아니다. 공격성은 “성적 본능이나 식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천성적 욕구”다. 저자는 공격성을 활동성과 동의어로 본다. 가령 “젖병을 달라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울어대는 아기는 공격적”이다. 이런 공격성은 “분리와 독립을 향한 긍정적 추진력”이다. 특히나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약하고 부모에 의존하는 유년기가 길다. “공격적인 동물이 아니었다면 하나의 종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란 게 저자 주장이다. 그는 나아가 공격성이야말로 오늘날 인류가 이룬 “지적인 업적의 토대”요, “한 인간으로 하여금 무리 사이에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다니도록 해주는 적절한 자존심의 근간”이라고 치하한다.
 
아니, 안 그래도 세상이 ‘정글’인데, 공격성이 인간의 본능이고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재능이라니. 살인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문명 이전의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걸까.
 
그렇지 않다. 저자는 공격성과 증오를 구분한다. 보통 사람들은 성장·사회화 과정을 통해 공격성을 긍정적으로 표출한다. 다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일부가 억눌린 공격성에 대한 ‘보복’에 나서게 되는데, 이렇게 “보복의 성격을 내포할 때” 공격성은 증오로 변한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분열병질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증오의 화살을 돌린다. 공격성은 인간 생존의 버팀목이지만, 증오는 타인과 자신을 파괴한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성’이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공격성은 개탄스럽지만, 그렇다고 “모든 공격성을 ‘나쁜’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긍정적 공격성에 대한 ‘사면복권’인 셈이다.
 
저자는 생전 대중적인 글을 많이 썼다. TV와 라디오 해설자로도 활동했다. 2001년 심장병으로 숨졌을 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의 가장 교양있는 정신과 의사가 숨졌다”고 부고 기사를 썼다. 이 책도 비교적 쉽게 읽힌다. 하지만 1968년 출간되고 1992년 개정된 ‘고전’인 만큼, 오늘의 현실과는 다소 차이 나는 대목도 간간이 눈에 띈다. 60년대 핵전쟁 위기에 대한 공포, 인구폭발·식량부족에 대한 우려 등이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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