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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오늘밤 김제동’과 KBS

중앙선데이 2018.09.15 01:00 601호 34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솔직히 그래도 뭔가 한 방이 있을 줄 알았다. ‘공영방송 정상화’가 한창인 KBS에서 사장이 바뀐 뒤 첫 개편의 간판으로 내세운 프로였다. 게다가 김제동이다. 균형감이 필요한 공영방송 시사 프로 진행자로 적격인가와는 별개로, 어쨌든 능력있는 스타 MC다. 팬층도 확고하다. KBS의 올드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젊은 층에 어필하는 새로운 형식이라고도 했다. 밤 11시 30분이라는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월~목 주 4회 방송, 주중 매일 밤을 김제동과 함께 마무리하는 식의 파격 편성이다. 10일 첫 방송을 한 KBS1 시사토크쇼 ‘오늘밤 김제동’ 얘기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 실망스럽다. 편파 시비는 두 번째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건 편파가 문제가 아니라 노잼이 문제’다. 김제동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혀, 하는 이도, 보는 이도 다 불안하고 불편한 프로를 만들었다. 미스 캐스팅, 기획의 실패다. 2.8%로 시작한 시청률도 계속 내려앉아 목요일은 2.3%였다(닐슨코리아).
 
매회 2~3명의 정치인이나 사건 당사자들을 라이브로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편파 시비를 의식한 듯 여야 인사를 돌아가며 초대했다. 문제는 내용이다. 하필이면 입담만으로는 안되는 시사 이슈 라이브 인터뷰다. 라디오나 팟캐스트와는 시청자의 기대가 다르다. MC의 역량과 경험 부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중구난방식 구성에, 4일 내내 크고 작은 방송사고, 진행 실수가 잇따랐다. 아무리 생방송이고, 방송 첫 주라 해도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혹 그저 김제동만 모셔오면 끝, 어차피 호불호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린다고 본 건가.
 
사회 전반의 ‘적폐청산’ 분위기는 방송가도 예외가 아니다. KBS, MBC 모두 지난 보수 정권 아래 무너진 ‘공영방송 바로 세우기’가 한창이다. 과거 10여 년의 흔적이 깊기는 하다. KBS는 ‘진실과 미래위원회’, MBC는 ‘정상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적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불협화음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정부도 ‘공영방송 정상화’에 힘을 몰아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초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바로 세워 달라. 정부도 방송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세간에는 “디지털 격변기 이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오직 공영방송 살리기 하나뿐”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통합방송법 개정안 초안에서도 공영방송 살리기가 큰 축이다. 공영방송 위상 강화, 수신료 징수 근거 강화가 눈에 띈다.
 
물론 공영방송은 중요한 가치다. 상업적 가치가 팽배한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국의 공영방송은 어느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공정성, 다른 공영성을 실천하는 정파적 방송, 정치투쟁의 장처럼 돼버렸다. 진보 보수 극단의 가치가 충돌하는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아우르고 타협점을 찾으며 중립지대를 마련하는 일을 공영방송 아니면 누가 할까 싶지만 그건 별 관심 없어 보인다.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KBS의 공영성을 드높였던 프로그램으로 ‘차마고도’ ‘누들로드’ 같은 대형 다큐가 생각난다. ‘불멸의 이순신’ 같은 대하사극들도 있었다. 1990년대, 근현대사 재조명 다큐들을 벅찬 마음으로 시청했던 기억도 있다. 오늘 KBS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설마 ‘오늘밤 김제동’이 최선인 건가. 부디 정치구호를 넘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공영방송만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진정 공영방송다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공영방송 살리기는 그저 공영방송의 자기 수호 선언일 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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