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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토종 흑돼지를 맛봤다 입에 착착 붙었다

중앙선데이 2018.09.15 01:00 601호 21면 지면보기
 박찬일의 음식만행(飮食萬行) 충남 홍성 원천마을의 재래돼지 마을잔치 
토종 흑돼지로 끓인 돼지국밥. 국물이 진득하니 입에 착착 붙었다. 김경빈 기자

토종 흑돼지로 끓인 돼지국밥. 국물이 진득하니 입에 착착 붙었다. 김경빈 기자

진부하지만 꿈은 이루어진다. 진짜 재래 흑돼지를 먹었다. 
 
우리 국민이 토종 흑돼지라고 생각하는 고기는 대부분 검은색 수입 혈통 돼지인 버크셔에 백색계 돼지의 혼합종일 확률이 99.9%다. 토종 흑돼지 피가 조금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는 정도. 재래돼지는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고, 정부 기관에서 일부 천연기념물로 보존하기 위해 기르거나, 30여 년 전에 재래돼지를 수집해 보존하는 경북 포항의 ‘송학농장’ 외에는 자치단체 같은 곳에서 보급을 위해 소량 기르는 단계다. 종 보존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살찌는 속도가 느린 재래돼지는 자연스레 시장에서 쫓겨났다. 
 
그러니 한국인치고 재래돼지에 대한 궁금증이 없을 리 없다. 이미 우리 세대는 재래돼지를 모른다. 1908년에 백색계 돼지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재래돼지는 일찌감치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부터 도태에 가까운 천대를 받았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품질보다 양! 세계는 당시 배고팠다. 조선총독부 산하기관의 이런 평가들을 상기해보자. 
 
“조선 돼지는 체질이 강하나 체격이 왜소하다. 살이 잘 안 찌고 늦게 자란다. 경제가치돈 중 최열등하다(농촌진흥청 전신 ‘권업모범장’ 평가).” 
“특히 육미는 조선사람 입맛에 맞는다(『조선농업편람』).” 
 
조선 후기 민속화가 김준근의 그림 ‘돼지 팔러 장에 가는 장면’에도 조선 돼지가 나온다. 총독부의 묘사처럼 작다. 당시 기록에 보면 20~30㎏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재래돼지를 먹었다. 맛이 궁금하실 게다. 돼지국밥을 끓이고 수육을 삶았다.
돼지농장주로 변신한 글로벌 금융 전문가 
충남 홍성 성우농장 이도헌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마을에 재래돼지를 기증해 특별한 마을잔치가 열렸다. 김경빈 기자

충남 홍성 성우농장 이도헌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마을에 재래돼지를 기증해 특별한 마을잔치가 열렸다. 김경빈 기자

“기가 멕혀유. 짠득하니 입에 착착 붙고 국물도 끝내주네유.”
 
원천마을 송영수(57) 이장의 말씀이다. 이장 나이가 웬만한 청년회 막내급이다. 젊다. 기운이 넘치는 마을이란 뜻이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의 한 마을. 한우와 돼지를 기르고 농사도 많다. 원천마을에 가게 된 건 한 남자 때문이다. 이도헌(51) 성우농장 대표. 90년대 이미 뉴욕 월가에서 헤지펀드 운용에 참여해 금융에 눈을 떴으며 95년 불과 28세에 한국에서 금융컨설팅-ICT 회사를 설립하여 코스닥에 상장시킨 귀재다. 나중에는 한국투자신탁에서 해외금융을 담당했으며 2010년 40대에 안정된 직장을 던지고 돼지 기르기에 나선 특이한 이력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벌써 1년에 1만3000두를 출하하는 규모 있는 농장을 운영한다. 글로벌 금융 전문가에서 돼지농장 주인으로 변신해 화제가 되었고 그 과정을 책으로 쓰기도 했다. 한 마디로 사양산업 취급받는 농업과 축산업이 장차 첨단 산업이 될 것이라는 신념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홍성의 시골 마을에 온 사람이다. 그리고 마을 청년회의 일원이 될 정도로 동화됐다. 
 
그와 나는 우연히 SNS 친구가 됐고, 그의 돼지농장에 구경을 가기로 했다. 마침 이 대표가 재래돼지를 원천마을에 기증했고, 마을잔치에서 잡는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런 제안이 있었다. 
 
“박 셰프가 마을에 와서 재래돼지로 직접 요리를 해주시겠습니까?”
 
어어, 하다가 재래돼지를 먹는 것은 물론이고 요리도 하게 됐다. 영광(?)이다. 그래서 독자께 그 생생한 맛을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재래돼지가 노는 방목장 구경부터 했다. 멀리서 보니 황토 질의 비탈진 땅에서 시커먼 녀석들이 논다. 돼지가 아닌 줄 알았다. 커다란 개인가? 그럴 만도 하다. 재래돼지들이 날씬하기 때문이다. 
재래돼지가 귀한 이유 
충남 홍성 원천마을 성우농장에서 키우는 재래돼지. 서양 돼지보다 날씬해서 언뜻 커다란 개처럼 보인다. 이마에 잘게 팬 주름이 도드라진다. 재래돼지의 특징 중 하나다. 김경빈 기자

충남 홍성 원천마을 성우농장에서 키우는 재래돼지. 서양 돼지보다 날씬해서 언뜻 커다란 개처럼 보인다. 이마에 잘게 팬 주름이 도드라진다. 재래돼지의 특징 중 하나다. 김경빈 기자

“방목장에서 뛰어노니까 군살이 없어요. 살이 차진 대신 비육도 잘 안 됩니다. 1년 길러야 100㎏이 될까 말까 해요. 튼튼해서 겨울에도 여름에도 잘 견딥니다.” 
 
돼지 이마에 주름이 잘게 패어 있다. 재래돼지의 특징 중 하나다. 엉덩이의 ‘햄’ 부분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많이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종의 특성도 그렇다. 무게가 안 나가는 이유다. 일반 돼지는 6개월 이내에 보통 115㎏의 규격돈에 도달한다. 생산원가가 38만원 대 90여만 원. 효율에서 상대가 안 된다. 더디 자라고 살도 덜 찌니 재래돼지는 비싸다. 
 
고깃집에서 만날 가능성이 현재로써는 거의 없다. 두 배는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소고깃값이다. 식당이 돼지 한 마리 전체를 이용하는 쪽으로 가지 않으면 상업성이 부족하다. 일반 돼지고기 식당은 삼겹살 같은 특정 부위만 부분육으로 구매한다.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안 그래도 비싼 재래돼지는 머리·내장·족발 등을 일괄 처리한 메뉴를 개발해야 원가를 낮출 수 있을 듯하다. 
 
언뜻 귀여운(?) 멧돼지 같다. 다부져 보이지만 살이 크게 찌지 않은 데다가 머리가 작고 민첩하다. 본디 재래돼지는 멧돼지 혈통이 강하다고 한다. 야성이 살아 있는 듯하다. 검은 털이 고르고 윤기가 난다. 내가 다가서서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다. 돼지는 원래 호기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머리와 털을 쓰다듬어준다. 털이 의외로 억세지 않다. 
 
“이 돼지는 제 것이 아니고 포항 송학농장(대표 이한보름)에서 소량 분양받은 겁니다. 송학농장은 재래돼지를 팔지 않습니다. 제게는 일종의 시범 사업으로 나눠준 것인데, 장차 이 마을에서 소득원이 될까 하여 받아왔습니다.” 
 
홍성군은 유기농 작물과 소로 유명하지만, 실은 돼지 사육 전국 1위의 군이다. 곳곳에 축사가 있다. 이곳에서 그는 돼지를 둘러싼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장차 돼지가 바이오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환경도 보호하고 우리도 먹여 살릴 아이템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돼지 똥은 축산업과 환경의 최대 골칫거리다. 그러나 순환을 잘 시키면 엄청난 에너지가 된다. 바이오 가스다. 돼지고기도 얻고, 차를 굴리고 난방도 할 수 있는 천연가스가 나온다는 뜻이다. 
 
국제 금융 전문가가 설계하는 돼지농장의 미래, 뭔가 감이 오지 않는가. 그는 전례가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금융에서도 그랬고, 돼지 치기에서도 특기를 발휘한다. 외국 인터넷을 뒤지고 아이디어를 낸다. 그의 돈사는 올해 같은 혹서에도 시원했다. 에어컨 대신 바닥에 차가운 물을 돌게 해서 돼지가 스스로 몸을 식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깔았기 때문이었다. 사물 인터넷의 일환이었다. 
국물 잡내 없고, 고기 감칠맛 풍부 
박찬일 셰프가 원천마을 주민과 함께 재래돼지로 돼지국밥을 끓이고 수육을 삶았다. 김경빈 기자

박찬일 셰프가 원천마을 주민과 함께 재래돼지로 돼지국밥을 끓이고 수육을 삶았다. 김경빈 기자

마을회관에 차일이 쳐지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재래돼지를 시식하기 위해서다. 돼지를 써는데 칼이 달라붙는다. 차진 고기라는 느낌이다. 육색은 일반 돼지보다 살짝 더 붉고 고깃덩이가 작다. 일반 돼지라도 느리게 기른 돼지는 맛이 좋다. 그 품종이 재래돼지라면? 
 
100인분 솥을 걸었다. 50인분짜리도 하나 더. 고기가 끓는다. 천천히 자란 돼지니까 예우상 나도 천천히 끓이기로 했다. 낮은 불에 오래 끓이면 고기가 더 부드럽다. 1시간이 표준인데, 3시간을 잡았다. 뼈 없이 끓이는 일종의 부산식 돼지국밥에 가깝다. 첫 국물을 떠봤다. 기름이 둥둥 떴다. 기름이 고소하고 비리지 않다. 예감이 좋다.  
재래돼지로 만든 수육. 고기가 차지고 감칠맛이 강했다. 김경빈 기자

재래돼지로 만든 수육. 고기가 차지고 감칠맛이 강했다. 김경빈 기자

부녀회가 고기를 썰었다. 칼에 착착 붙는다. 소금 찍어 한 점 먹어본다. 지방이 깊게 먼저 온다. 다음으로 감칠맛이 깊게 퍼진다. 고기 말고 별다른 걸 넣지 않았는데도 잡냄새가 전혀 없다. 전혀. 이 마을은 돼지요리로 본디 한몫하는 곳이다. 마을 특유의 돼지내장육개장으로 최불암 선생의 기행 프로그램에도 나왔다. 주민들이 돼지 맛을 안다. 노인회 어른이 먼저 시식했다. 돼지국밥에도 순서가 있는 법.
 
“머시여, 허. 뼈두 안 넣는다구 해서 먼 국밥이 멀건 거 아녀 걱정했는디. 맛있네 맛있어. 아주 그냥 맛이 땡기는구먼?” 
 
수육을 숭덩숭덩 썰고 국밥을 연신 말았다. “국물 더 주시오.” “수육 추가요!” 주문이 쏟아졌다. 말하자면, 나는 조금 긴장했다. 재래돼지가 살아 있다! 나는 그 요리를 복원한다! 옛 잔치에서는 이 돼지가 솥에서 국이 되었을 것이다. 결혼식, 장례식의 음식이 되었을 테다. 국이 오래 끓었다. 더위가 가시고 최고의 하늘이, 차일 밖으로 보였다. 
 
박찬일 chanilpark@naver.com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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