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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링부터 패션·전시까지… 전방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영희

중앙선데이 2018.09.15 00:27 601호 8면 지면보기
패션&아트&전통의 교집합 
루이비통과 함께 스페셜 오더 함 트렁크를 제작한 서영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0개월 동안 함 트렁크는 물론 의상 트렁크(왼쪽)까지 추가로 완성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루이비통과 함께 스페셜 오더 함 트렁크를 제작한 서영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0개월 동안 함 트렁크는 물론 의상 트렁크(왼쪽)까지 추가로 완성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파리장식미술관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전, 서울패션위크 명예디자이너 루비나 회고전, 반클리프&아펠 아트클립전 화보, 보그 코리아 ‘모드 & 모멘트: 한국 패션 100년’전, 국립오페라단 ‘동백 아가씨’ . 최근 손꼽히는 국내외 패션 행사 카탈로그를 보면 반드시 들어있는 이름이 있다. 들어가는 직함도 전시 큐레이터부터 디렉터, 스타일리스트까지 다양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영희(57)다.  


그가 이같은 전방위 작업을 맡게 된 이유를 주위에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다. “한국 패션계에 이런 걸 해줄, 그만한 인물이 없다.” ‘이런 걸’이라는 세 글자는, 28년간 그가 진행해온 패션-아트-전통의 트라이앵글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업을 지칭한다.  
 
2015년 파리장식미술관에서 열린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전 ‘코리아 나우’. 서영희 디렉터가 전시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2015년 파리장식미술관에서 열린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전 ‘코리아 나우’. 서영희 디렉터가 전시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5일 공개한 ‘함(hahm) 트렁크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협업 파트너는 바로 그였다. 다양한 스페셜 오더 트렁크를 만들어 온 루이비통이 전통 혼례함을 모티브 삼은 트렁크를 만드는데 그를 초대한 것.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헤리티지와 한국 전통문화 사이에서 추의 균형감을 잡는 그의 장기가 빛났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대체불가능한 존재인 셈이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떤 시간의 담금질을 거쳐 이 자리에 이른 것일까. ‘함 트렁크 프로젝트’로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를 써낸 그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지난 5일 마주했다.  
 
전통 함으로 변신한 명품 트렁크  
5일 서울에서 공개된 함 트렁크. 루이비통의 대표적 모노그램 캔버스로 외관을 장식했고 내부는 한국 전통 함의 구성을 따랐다. 덮개를 열면 김윤선 장인이 수놓은 봉황 모란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5일 서울에서 공개된 함 트렁크. 루이비통의 대표적 모노그램 캔버스로 외관을 장식했고 내부는 한국 전통 함의 구성을 따랐다. 덮개를 열면 김윤선 장인이 수놓은 봉황 모란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완성된 함 트렁크에는 우리 전통 문화를 곳곳에 녹이려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겉에서 보면 일반적인 루이비통 트렁크지만, 함을 지고 가는 전통 문화를 반영해 높이를 40㎝로 만든 점이 우선 다르다. 덮개를 열면 안쪽으로 전통 색실누비 김윤선 장인이 곱게 새긴 봉황 모란도 자수가 보인다. 내부 양쪽은 싸개 형식으로 디자인한 예물 트레이로 채웠다. 가운데에는 부부가 평생 간직하는 혼서지가 봉투에 곱게 쌓여 있다. 하이라이트는 가장 밑에 숨어 있는데,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한 쌍의 기러기 조각이 마치 퍼즐 조각처럼 놓여 있다. 단순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루이비통의 3세손인 가스통 루이비통이 만든 나무 조각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 기획이나 화보 촬영과 달리 제품을 만든 건 처음 아닌가.
“처음 제안이 왔을 때 정말 날 찾아온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내가 공예 쪽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제품 디자이너도 아니니 말이다. 2017년 루이비통이 국내에서 했던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에 갔을 때 트렁크를 함으로 활용한 섹션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나한테 그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뒷감당할 수 있겠나 싶었다가도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실 지금껏 해왔던 많은 일들이 그렇지 않았나 싶었기도 했고.”  
 
루이비통 3세손이 만든 나무 큐브 퍼즐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기러기 목재 조각

루이비통 3세손이 만든 나무 큐브 퍼즐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기러기 목재 조각

혼례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나.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공부 밖에 답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는 도서관인데, 거기서 일단 함에 관련된 걸 배워나갔다. 이걸 토대로 전통함과 루이비통 트렁크 사이즈를 조율했고, 함처럼 덮개를 열면 한 번 더 천이 쌓여 있는 모양새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오방색을 이용한 가죽 패드도 제작했다.”  
 
결과물은 만족스럽나.  
“10개월 동안 브랜드와 작업하며 얻은 게 많다. 돈을 받을 게 아니라 내가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시에 아쉬움도 많이 느꼈다.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는 결국 트렁크 하나로 시작해 살아남았는데, 우리는 함이라는 비슷한 전통 유산이 있었으면서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통과 관련한 작업을 할 때마다 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라는 의구심과 반성이 많이 든다.”    
함에 들어가는 오방 주머니 대신 오방색 가죽 패드를 만들었다.

함에 들어가는 오방 주머니 대신 오방색 가죽 패드를 만들었다.

 
패션의 가벼움을 채워준 현대 미술
루이비통 아니에르 공방에서 장인과 함께 함을 만드는 모습

루이비통 아니에르 공방에서 장인과 함께 함을 만드는 모습

‘전통 지킴이’처럼 사명감에 찬 발언이지만, 사실 여기에 이르기까지에는 긴 시간의 굴곡이 있었다. 그는 이를 “먹고 살려고 스타일리스트를 했고, 내재한 욕망으로 아트에 발을 들였다가, 책임감 때문에 전통에 눈 떴다”는 말로 짧게 정리했다.  
 
함 트렁크에 추가로 제작된 의상 트렁크

함 트렁크에 추가로 제작된 의상 트렁크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가 스타일리스트로 첫 발을 들인 건 1991년. 육아 때문에 일을 관뒀다가 애들이 유치원에 가면서 다시 사회로 나왔다. 스타일리스트 경력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당시 한 패션지에 실린 화보를 보고 ‘내가 이보다는 잘할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에 문을 두드렸단다. 이후 국내에 쉬즈·엘르·마리끌레르·바자 등 패션 잡지가 속속 생겨나면서 활동 영역이 넓어졌고, 2001년엔 보그코리아의 전속 스타일리스트가 됐다. 그의 색깔은 분명했다. ‘예술적 감각의 화보’. 오골계 목에 주얼리를 걸고, 연탄 위에 럭셔리 핸드백을 올려놓는 식이었다. 
 
미술 전공도 아니었다.  
“스타일리스트 일을 하면서도 패션이 너무 작다는 생각, 입는 것이기에 태생적으로 지니는 가벼움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미학적 대안으로 찾은 게 현대미술이다. 패션의 동시대성과 현대미술을 같이 본 거다. 20년 전에도 런던·뉴욕 패션위크에 가면 끝나고나서 꼭 이틀씩은 더 묵고 왔다. 미술관을 돌면서 패션으로 채워질 수 없는 감각들을 보충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보다보니 내가 모르는 언어들로 채워진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래 모범생 타입이라 뭔가 주어진 조건에 성실한 편이다. 미술사도 잘 몰라서 테이트모던에서 연대표를 사다가 내가 본 작가들을 하나씩 동그라미 쳐 가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독학했다.”  
함 트렁크 스케치

함 트렁크 스케치

 
서영희식 화보는 많이 튀었을 것 같다.  
“일단 정물화처럼 찍는 시도를 많이 했다. 화보 일정이 잡히면 경동시장에 가서 장부터 봤다. 주변에선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었을 텐데, 당시 보그코리아 이명희 편집장은 달랐다. ‘이렇게 하고 싶다’고 제안하면 ‘재미있다’고 해줬다. 그래서 럭셔리 제품들 옆에 연탄도 놓고 옥수수도 놨다. 그때 편집장이 ‘노’라고 했으면 그냥 모델에 옷 입히고, 찍고, 끝이었을 텐데 . 지금도 감사한 일이다.”  


함 트렁크 내부 구성. 싸개 봉투 형식의 트레이로 제작했다. 가운데엔 부부가 간직하는 혼서지와 기러기 조각을, 양쪽엔 예물을 담을 작은 트레이를 배치했다.

함 트렁크 내부 구성. 싸개 봉투 형식의 트레이로 제작했다. 가운데엔 부부가 간직하는 혼서지와 기러기 조각을, 양쪽엔 예물을 담을 작은 트레이를 배치했다.

그러다 아트북까지 만들었다.  
“당시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정말 무서울 때였다. 그런데 어느 날 진태옥 선생님이 부른다고 하셔서 덜덜 떨면서 갔다. ‘아트북을 낼 건데 일본 스타일리스트랑 견주다가 너랑 해보겠다’고 하시더라. 이후 촬영을 일 년 넘게 했다. 박물관 가서 공부하고, 도표 찾아 확인하고, 작가들을 익히고 . 그건 내게 패션 이외의 멋진 세상이 있다는 걸 제대로 알려준 계기가 됐다. 지금도 나는 스승의 날이 아니라 어버이날에 진 선생님께 카드를 보낸다. 그때를 계기로 패션과 예술이 겹쳐지는 미학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게 됐다.”  


염색 머리에 족두리, 풀어헤친 당의… 신 한복 스타일  
2006년부터 선보인 새로운 방식의 한복 화보. 염색 머리에 족두리를 씌우는 등 파격적 스타일링으로 서영희식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 보그코리아

2006년부터 선보인 새로운 방식의 한복 화보. 염색 머리에 족두리를 씌우는 등 파격적 스타일링으로 서영희식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 보그코리아

2006년부터 선보인 새로운 방식의 한복 화보. 염색 머리에 족두리를 씌우는 등 파격적 스타일링으로 서영희식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 보그코리아

2006년부터 선보인 새로운 방식의 한복 화보. 염색 머리에 족두리를 씌우는 등 파격적 스타일링으로 서영희식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 보그코리아

스타일링과 아트가 자리잡을 시기, 한복이 그의 스케치 속에 들어왔다. ‘모던 한복’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2000년대 중반, 그는 한복을 찍었다. 한옥을 배경으로 쪽 머리한 전통 복식이 아니라, 현대 의복과 조합한 새로운 스타일이었다. 염색 머리에 족두리를 쓴다거나, 당의를 재킷처럼 풀어헤쳐 입혔다. 이 새로운 도전은 그가 이후 한복은 물론 전통 공예와 관련된 국내외 전시의 디렉팅을 맡게 된 계기가 됐다.  
 
패션 화보에서 왜 한복을 다뤘나.  
“우리 시대만 해도 엄마가 한복 입고 집안일 하고 학교도 찾아왔다. 내 유전자 안에 한복이 있는 거다. 그런데 패션 일을 한창 하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수입 브랜드가 물밀듯 들어왔다. 이게 괜찮을까, 패션 식민주의가 아닐까, 내가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2년 황학동 시장에서 한국적 느낌이 나는 첫 화보를 찍었다. 골목에 봉황 원피스를 놓거나, 검은콩 더미 위에 물건을 올려놓는다거나. 그러다 2006년 본격적으로 한복 화보를 찍었다.”
 
그에 대한 비난은 없었나.  
“스타일링 자체가 파격적이라 걱정을 했는데, 이영희 선생님 같은 분도 ‘뭐 이런 화보가 다 있나’ 면서 ‘나중에 내 옷도 한 번 이렇게 찍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사극 드라마 스타일링을 하는 후배가 언젠가 그랬다. 자기가 서영희 화보를 보고 자란 세대라고. 그 말을 듣고 보람을 넘어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다. 계속 한복을 찍으면서 전통 공예하는 분들도 알게 되고, 전국 투어도 하면서 한복과 전통이 한 덩어리로 다가왔다.”  
2017 봄·여름 서울패션위크 오프닝 행사였던 한혜자 디자이너의 아카이브전. 서 디렉터가 전시 기획과 스타일링을 맡았다. 사진은 ‘유사한 영혼들’(1988)이란 제목의 작품으로, 수레 위에 자연 그대로의 소재인 마닐라 삼을 꼬아올려 희노애락을 싣고 어떻게든 굴러가야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표현했다.

2017 봄·여름 서울패션위크 오프닝 행사였던 한혜자 디자이너의 아카이브전. 서 디렉터가 전시 기획과 스타일링을 맡았다. 사진은 ‘유사한 영혼들’(1988)이란 제목의 작품으로, 수레 위에 자연 그대로의 소재인 마닐라 삼을 꼬아올려 희노애락을 싣고 어떻게든 굴러가야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표현했다.

 
아트든 전통이든 이미 전문가들이 있는데, 부담되지 않았나.  
“물론이다. 특히 전시는 시공간의 종합적 작업이고 오래 공개되기 때문에 못했다는 소리 들을까 봐 매번 엄청난 부담을 느낀다. 파리장식미술관 전시 때가 가장 힘들었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작품 수는 적고 . 매일 밤 ‘그 세션에 그 작품이 그렇게 들어가는 게 최선일까’를 자문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2016년 열린 대규모 한국 패션 전시 ‘Mode & Moments: 한국 패션 100년’. 국내 패션 아카이브와 한국의 전통 및 현대 예술을 접목시켰다. 미술가 최정화가 예술 감독을 맡고, 서 디렉터가 패션 감독으로 참여했다.

2016년 열린 대규모 한국 패션 전시 ‘Mode & Moments: 한국 패션 100년’. 국내 패션 아카이브와 한국의 전통 및 현대 예술을 접목시켰다. 미술가 최정화가 예술 감독을 맡고, 서 디렉터가 패션 감독으로 참여했다.

여러 가지 작업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원칙은.  
“내가 했다면 나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영희다운 스타일링이, 전시가 나와야 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갖고 있다. 그걸 드러내려면 스스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낮춰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요즘 고궁 앞 대여 한복을 가지고 말들이 많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싶다. 요즘은 그렇게 한복 입는 걸 좋아하나보다, 안 입는 것보단 입는 게 낫지 않나 여길 수도 있을텐데. 시간이 지나면 교통정리가 되고, 뭔가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올바르게 한복을 입기 위한 과도기라고 여긴다.”  
 
지금껏 하지 않은,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2년 전 한국 영화 의상 100년사 전시를 맡아보니, 한국 영화 의상 100년사를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영화사를 공부 중이다. 영화와 패션은 아주 밀접한 관계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 하나로 지방시가 미국에서 명성을 얻지 않았나. 60년대 국내 영화가 성장했을 때 디자이너 부티크도 이름을 날렸다. 지금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우리에게도 이런 패션의 역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루이비통·서영희·보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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