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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세력 봉쇄’ 9·13 대책, 공급확대 없인 약발 안 먹혀

중앙선데이 2018.09.15 00:02 601호 2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김창우의 뉴스분석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지로 포장돼 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정책이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지적하는 서양 속담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역시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 9·13 대책이 ‘선의에 걸맞은 결과’를 거둘지도 미지수다.
 
 
왜 중과세, 대출 봉쇄에 나서나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해 발표한 8·2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지난해 8월 5억828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대책 발표 1년 만인 올 8월 7억230만원으로 21%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 12월부터 강남 4구에서 시작된 상승세가 마포·용산·성동 등으로 확산되며 84㎡ 아파트값이 2억~3억원씩 상승했다. 정부는 아파트값 급등을 다주택자들의 투기나 단지별 동호회 등이 담합한 결과로 본다. 9·13 대책의 골자는 여전히 ‘투기 세력의 가수요’를 막는 데 집중됐다. 고가 주택과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고 규제지역 내에서는 2주택자부터 대출을 원천봉쇄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국민의 98.5%는 종부세 인상을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고가 주택에 중과세하면 자연스럽게 투기 수요가 준다는 셈법이다. 대출 규제로 살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내서 다른 아파트를 전세 끼고 추가 매수하는 갭투자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청와대는 “시가 18억원 이하 1주택자는 세율 변동이 없다”며 “이번 대책은 집값을 올리는 투기는 막고, 살 집 한채를 갖고 싶은 실수요자는 적극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런 접근법으로는 집값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종부세 강화가 무사히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고 해도 적용받는 시기는 내년 12월이라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대출을 봉쇄해도 살 사람은 사고, 특히 전세를 끼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전월세 가격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연구소장은 “이번 대책으로 ‘눈치보기’가 늘 수 있지만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너무 많이 올라서 집값이 조정받을 수는 있지만 정부 대책 때문에 안정화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강남 아파트의 60~70%를 대출 없이 현금으로 구입하는 상황에서 대출 규제 강화가 자금 여력이 있는 자산가들에게 큰 영향을 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강남 집값 급등으로 덩달아 오른 일부 아파트는 교통 등 인프라가 좋지 않거나 10년 이상 된 경우 조정폭이 클 수 있다.
 
 
왜 1년 만에 집값이 급등했나
 
8·2 대책의 골자는 다주택자들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담을 늘리고,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낮춰 대출을 억제하는 한편, 청약제도를 추첨제에서 가점제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정부는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면 공급이 늘고, 대출 기준 강화와 실수요자 중심의 청약을 통해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다주택자는 양도세 중과를 피해 집을 파는 대신 공공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것을 선택했다. 8·2 대책 이후 등록한 임대사업자는 10만 명이 넘는다. 의무 임대기간인 5년에서 8년까지 낮은 가격에 전·월세 주택을 공급하도록 유도하면 전세가격 안정이 자연스럽게 집값 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도와는 달리 그만큼 매물만 잠기는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재건축 요건을 강화하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도입한 것도 공급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공급이 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마음이 급해진 수요자들은 아파트 추격 매수에 나섰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마포구 1000세대 대단지에 매물이 6개밖에 없다’ ‘분당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매물이 나오자마자 집도 보지 않고 계약금을 이체했다’ ‘지난달 계약한 아파트 값이 1억이 올랐다며 집주인이 계약금 두 배를 물어주고 해지하겠다는데 대책이 없느냐’는 등의 사연이 잇따라 올라왔다. 가점제 청약제도 역시 수요를 부추겼다. 전세로 살면서 신축 아파트 분양을 기대했던 중산층이 기존 아파트 수요자로 돌아섰다. 신혼부부특별공급도 구매력 있는 젊은 부부들이 소득기준(맞벌이 7000만원)을 넘어서는 바람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뒤늦게 아파트 구입 대열에 합류했다.
 
공급은 감소하는데 수요가 몰리자 전형적인 ‘메마른 시장(thin market)’의 이상 급등이 나타났다. 반도체처럼 공급 탄력성이 낮은 상품은 약간의 공급 초과나 수요 초과만으로도 극심한 가격 변동이 일어난다.
 
 
왜 ‘공급 확대’ 신호가 필요한가
 
서울의 아파트, 특히 ‘강남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상징하는 단어다. 1971년 반포주공아파트를 시작으로 아파트 시대가 열린 이후 누구나 갖고 싶어하지만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통계청의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975년 5만8000채이던 서울 시내 아파트는 현재 164만 채로 늘었다. 이 가운데 강남3구가 33만5000채, 마용성이 15만7000채에 불과하다. 역세권 대단지 새 아파트는 더욱 더 드물다.
 
게다가 수요자들의 주머니는 갈수록 두툼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상위 20% 가계의 연평균 소득은 1억원을 넘는다. 서울에만 100만 가구에 달한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687조원에 달한다지만 금융자산은 3667조원이다. 부채를 빼도 2000조원 가까운 돈이 있는 셈이다. 이 돈이 부동산으로 몰려 값이 뛰면서 자산 규모에 차이가 나는 중장년층과 젊은층의 세대 갈등 양상도 나타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최근 “청년들은 방 한 칸에 살면서도 매달 50만원씩 600만원을 월세로 내는데 30억원 부동산을 가진 사람 종부세가 그것보다 적은 건 문제”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9·13 대책은 한마디로 세밀하고 섬세한 데다 8·2 대책보다 더 강력해 단기적으로 가수요를 차단할 수 있다”면서도 “시장에서 원하는 것은 ‘공급이 늘 수 있다’는 확실한 신호인데 현재 공급 사인이 제대로 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는 21일 공급 대책이 나오더라도 지역 선정은 물론 토지보상 문제 등의 난항으로 실제 공급까지는 적어도 5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대중 교수도 “무엇보다 공급 대책이 동시에 나왔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매물이 말라 급히 추격 매수에 나서는 장세를 진정시키는 데는 ‘새롭고 좋은 물건이 조만간 나온다’는 것보다 확실한 심리적 유인책이 없기 때문이다.
 
김창우 경제에디터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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