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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꺼리는 일본, 아베 같은 ‘금수저’도 적폐 아닌 전통

중앙선데이 2018.09.15 00:02 601호 25면 지면보기
일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한국에서 생활하는 일본 기자가 한국과 비교하면서 일본을 바라봅니다. “일본의 현재는 10년 후의 한국”이라고도 합니다. 정치·사회·예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보는 현재 일본의 모습이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의 대표적 ‘금수저’ 세습의원인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둘은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맞붙는다. [AP=연합뉴스]

일본의 대표적 ‘금수저’ 세습의원인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둘은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맞붙는다. [AP=연합뉴스]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세습(世襲)의원이 많은 편이다. 부모나 조부모 또는 친척이 국회의원이고 같은 선거구에서 입후보해 당선된 국회의원을 세습의원이라고 한다. 특히 세습의원이 많은 자민당 정부에서는 내각의 반 정도가 세습의원인 경우도 있다. 물론 세습이라고 해도 선거로 뽑기 때문에 세습의원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같으면 ‘금수저’라고 불리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전통’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차기 총리를 결정하는 오는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도 세습의원이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다. 기시 전 총리는 태평양 전쟁 후 A급 전범으로 구속되었다가 불기소로 풀려나서 다시 정치가로 복귀한 사람이다. 어떤 독일 기자는 “전범이 총리가 된다니 독일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외할아버지한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아베 총리는 해외에서 보면 ‘전범의 손자’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총리의 손자’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의 아버지는 돗토리(鳥取)현 지사를 역임하고 자치상을 지냈던 이시바 지로(石破二朗)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는 자신과 친했던 이시바 지로 사후에 그의 아들 시게루에게 “자네가 출마하라”고 권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그 당시 무명의 은행원이었다고 하니 아버지 힘으로 정치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베 총리보다 말하는 내용에 설득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정치가라고 생각하지만 총재선거에서는 아베 총리가 압승할 거라는 전망이다.
 
결과가 뻔한 총재 선거지만 화제가 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중의원 의원의 선택이었다. 그가 아베와 이시바 둘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주목을 받았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아버지를 닮아 연설도 잘하고 잘 생겨 여성 팬이 많다. 37세로 아직 젊지만 언젠가 2세 총리가 될 만한 인물이다.
 
 
세습의원 비판론 있지만 확고한 지지층  
 
일본에서도 세습의원에 대해 문제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손자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총리가 총리였던 당시, 컵라면의 가격을 묻는 질문에 “400엔 정도?”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대부분 200엔도 안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서민의 생활을 모르는 사람이 경제대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 당시 아소 총리가 매일같이 고급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도 보도되면서 세습의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 그렇다고 아소 전 총리가 선거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다. 그만큼 뿌리 깊은 지지자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지만 일본은 총리를 국민이 직접 뽑을 수가 없다. 자민당 총재선거는 국민이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민당 당원이나 회원이 투표한다.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 자민당이 유리할 만한 ‘얼굴’을 뽑는 경향이 있다. 특정 법인에 특혜를 주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모리토모·가케 학원 스캔들’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아베 총리이지만, 그래도 아베 총리 이상으로 유리한 ‘얼굴’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일련의 스캔들은 한국에서 일어났으면 촛불집회가 열릴 만한 일인데 기시 전 총리부터 이어온 아베 총리의 브랜드 파워는 여전하다.
 
일본의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왼쪽)의 딸 코우키가 모델로 데뷔해 화제다. [중앙포토]

일본의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왼쪽)의 딸 코우키가 모델로 데뷔해 화제다. [중앙포토]

정계뿐만 아니라 연예계에도 2세, 3세가 적지 않다. 최근 일본을 대표하는 스타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와 쿠도 시즈카(工藤静香)의 둘째 딸 코우키가 모델로 데뷔해서 화제가 되었다.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부터 잡지 표지에 등장한 것은 역시 톱스타의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도 썩 닮았다. ‘금수저’라는 비판도 일부 나왔지만 환영하는 목소리가 훨씬 큰 것 같다.
 
이것은 ‘전통’을 선호하느냐 ‘변화’를 중요시하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다. 일본인은 음식점도 새로운 가게보다 ‘시니세(老舗)’라고 불리는 오래된 가게를 좋아하는 편이다. 창업 100년을 넘는 가게도 종종 있다.
 
84년 전통을 자랑하는 오사카의 마루후쿠 커피점. [중앙포토]

84년 전통을 자랑하는 오사카의 마루후쿠 커피점. [중앙포토]

예를 들어 내가 자주 가는 시니세 커피숍은 창업 80년을 넘었다. 1934년에 창업한 오사카(大阪)의 ‘마루후쿠 커피점(丸福珈琲店)’이다. 오사카의 문화인들한테 사랑을 받아 소설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커피를 좋아하는 어머니가 같이 데리고 가곤 했는데 지금도 친구들과도 자주 간다. 진하고 맛있는 커피로 유명하지만 오래된 분위기의 건물에 애착이 간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도쿄(東京)를 비롯한 전국에 지점이 생겨서 어딜 가나 같은 맛의 커피를 즐길 수 있지만, 역시 본점의 분위기를 이길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가게가 잘되면 새로 내부 개장을 해서 분위기를 바꾸거나 가게를 넓혀 변화를 주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은 개장을 하더라도 옛날 모습을 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마루후쿠’가 그렇다. 시니세는 시니세라는 이유만으로 가치를 두는 일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니세다운 오래된 외관도 중요하다. ‘변화’는 별로 안 좋아한다.
 
여행을 가도 시니세를 찾게 된다. 가게가 오래 지속할 만큼 맛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고 그 지방마다의 특색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가사키(長崎)에 갔을 때는 규슈(九州)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 ‘쓰루찬’에 갔다. 마루후쿠보다 오래된 1925년에 창업한 가게다. 거기서 나가사키의 유명 음식 ‘토루코 라이스’를 먹었다. 한 접시에 돈까스와 볶음밥, 스파게티, 샐러드를 함께 담은 양식요리다.
 
일본에서는 가게가 잘되면 자손이 이어서 대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내 친구 중에도 부모님이 경영하는 우나기(정어) 가게를 이어받을 거라며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도쿄나 오사카에서 우나기 장인이 되기 위한 ‘수행’을 10년 가까이 거쳐서 장인이 된 친구가 있다. 좋은 가게를 유지하려면 그럴 만한 투자와 노력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가게가 잘되면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을 바란다고 들었다. 그래서 오래된 가게가 드물다고.  
 
 
가게 물려받으려 대학 졸업 후 10년 ‘수행’
 
일본사람들이 ‘전통’을 좋아하는 것은 재해와 관계가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달 초에 연달아 태풍과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뉴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해는 원하지 않은 변화를 가져온다.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 그것이 전통을 선호하는 국민성을 만든 것 아닐까.
 
나는 태풍 당시 인도로 여행을 갔다가 오사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유지 홍콩에서 오사카의 간사이공항이 태풍 때문에 폐쇄된 소식을 들었다.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로 나는 일단 인천공항으로 왔지만, 같이 여행했던 어머니는 예정보다 3일 늦게 귀국했다. 어머니가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지, 집은 괜찮은지 …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와 비슷한 불안감을 느꼈다.
 
2009년 민주당이 중의원선거에서 이기고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자민당 정권에 대한 국민의 오래된 불만이 쌓일 만큼 쌓였었고 민주당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지 못한 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 대처를 잘못한 탓에 “역시 자민당이 낫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지진은 천재지만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는 인재의 측면도 있다. 솔직히 원전 건설을 추진해 온 것은 자민당이었고, 민주당에만 책임이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심리적으로는 동일본 대지진과 민주당 정권의 이미지가 겹쳐 버렸다. 2012년에는 다시 자민당이 여당이 되고, 그해 총재선거에서 승리한 아베가 다시 총리가 되었다. 그 후 민주당은 이합집산을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아래로 내려갔다고 화제가 되었지만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NHK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죽 40%대이다. 결코 인기가 높아서 장기 집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로 선택지가 없다”는 소극적 지지다. 안전운전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보다 전통 있는 자민당의 아베가 선택되는 것이 일본의 현재인 것 같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과 한국(TV REPORT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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