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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제작 명장, 한국의 명품 소리를 만든다

중앙일보 2018.09.14 10:01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8)
지난 1월 31일 한국 음악의 거장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 선생이 별세하셨다. 그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 타 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을 그의 평생 화두로 붙들고 격조 높은 창작 음악으로 한국 현대 음악사에 큰 공헌을 한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님의 연주에 대해 해외 언론은 “신비로운 영감으로 가득한 동양의 수채화 같다. 극도의 섬세한 주법으로 울리는 소리는 음악에서 청정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라고 평가한다.
 
나는 또 다른 시각으로 최고의 가야금 연주자가 있으려면 최고의 명품을 만드는 가야금 명장의 솜씨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쁜 도심 속에 우리 전통악기인 가야금을 제작하는 명장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고흥곤 장인(70)이다. 그는 20살에 시작해 50년 동안 가야금 같은 한국의 현악기를 만들고 있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 ‘국악기연구원’이라는 공방에서 작업한다.
 
벌판에서 10여년간 비, 햇빛, 바람, 눈을 맞으며 큰 오동나무 섬유질를 삭혀 소리가 잘 날 수 있는 나무를 골라야 가야금의 소리가 좋아진다.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고흥곤 장인(70)이 오동나무를 살피고 있다. [사진 이정은]

벌판에서 10여년간 비, 햇빛, 바람, 눈을 맞으며 큰 오동나무 섬유질를 삭혀 소리가 잘 날 수 있는 나무를 골라야 가야금의 소리가 좋아진다.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고흥곤 장인(70)이 오동나무를 살피고 있다. [사진 이정은]

 
“악기의 생명은 소리이기 때문에 가야금은 좋은 소리가 가장 중요해요. 제가 가야금 연주는 못 해도 연주자들과 최고의 소리를 내기 위한 연구를 함께 해왔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듣고 가야금 제작의 최종 마무리를 결정할 만큼 기본적으로 가야금을 다룰 줄 알아요. 그렇게 밤새 고민하면서 연주자에게 최고의 소리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 중이죠.”
 
가야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울림통은 오동나무이며 주로 12개의 현은 명주실로 만든다. 현을 지탱하는 나무 괘는 기러기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안족이라 부른다. 자연의 소리를 내는 가야금에 사용하는 나무는 5~10년 정도 옆에서 보살핀다. 그러다 좋은 소리를 내기 완벽한 상태에서 악기 하나를 만든다.
 
“가야금 소리에서 재료 또한 핵심인데, 가야금의 주재료는 바다 쪽에서 자라는 오동나무예요. 가장 좋은 한 토막을 사놓고 물이 빠졌을 때 작업해요. 건조만 시키면 끝이 아니라 섬유질을 삭혀야 해요. 재료 선별이 무척 중요하죠.”
 
명주실 줄 하나하나 두께를 맞춰 가야금 줄 꼬는 작업을 하는 고흥곤 장인. [사진 이정은]

명주실 줄 하나하나 두께를 맞춰 가야금 줄 꼬는 작업을 하는 고흥곤 장인. [사진 이정은]

 
명주실도 중요한 재료다. 누에고치 명주 실크는 오늘날까지도 전주에서부터 가져와서 제작한다. 명주실이 3000개가 합쳐져야 가야금 한 줄이 된다. 가장 얇은 줄은 1000개가 합쳐진 것이라 한다. 가야금은 줄 수에 따라 12현, 18현, 25현 가야금으로 나뉜다.
 
가격은 연습자용도 최소 80만원에서 100만원대가 넘어가는데, 소뼈로 된 장식 문양의 좌단(가야금 연주 시 오른손이 놓이는 부분)에 고급 호두나무 안족이나 배나무 좌단에 벚나무 안족이 대부분이다. 이때 재료와 기술적인 공정과정에 따라 천차만별 가격이 다르다. 가야금은 비쌀수록 모양이 더 섬세하며 모양은 소리의 질을 좌우한다.
 
최고가의 가야금에 관해 묻자 고 장인이 설명한다. “산조가야금이란 최고의 명인이 특별 주문 제작해 약 2000만원대부터 있어요. 30년 이상 된 조선 오동나무를 선별해 약 5년 이상 비, 바람, 햇볕, 눈을 맞히면서 재료의 섬유질을 삭혀 제작한 통에 순금가루로 전통문양인 당초 문양 속에 봉황을 그려 넣었어요. 음량이 풍부하고 음색이 탁월한 명품 가야금의 품위를 자랑하죠. 이때 안족 역시 금니화 당초 문양으로 되어 있어요.”
 
산조가야금에 금니화 봉화 문양을 넣은 최고가의 가야금이다. [사진 이정은]

산조가야금에 금니화 봉화 문양을 넣은 최고가의 가야금이다. [사진 이정은]

 
연습용 가야금은 한 달에 몇 대씩도 나올 수 있지만 최고가의 작품은 한 대당 한 달에서 때에 따라 두세 달 정도 소요된다.
 
가야금의 역사는 가야시대부터 약 1300년 정도다. 가야금 역사상 최고의 악인은 6세기 우륵이다. 가야국의 궁중 악사였던 우륵은 가야국이 어려워지자 가야금을 갖고 신라 진흥왕에게 갔다. 이렇게 해서 가야금은 신라 등 여러 곳에서 퍼져나가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음악이 되었다. 무엇보다 오늘날 한국의 가야금 연주는 맨손으로 한다.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골무 같은 것을 끼지 않고 명주실 위에서 손과 소리로만 보여주는 예술인 것이다.
 
장인이 가야금 제작을 시작하게 된 시기와 동기를 묻자 “전주가 고향인데, 초등학생 때 옆집에 살던 스승이 가야금을 만들고 계셨어요. 그 당시도 모든 문화가 서울에 집중되어 스승께서 1969년 서울로 이사 간 후 도와달라고 연락 온 것이 인연이 됐죠. 그때 저도 서울로 이사해 도제 수업을 통해 함께 제작하면서 어렵게 기본기부터 배웠어요. 스승님의 아버지도 가야금을 만드셨는데 아버님이 가야금을 제작하던 시기에는 1년에 전국에서 몇 대의 수요뿐이었고, 쌀로 치면 20~50가마의 가치였대요.”
 
고흥곤 장인이 제자와 함께 가야금을 조율하고 있다. [사진 이정은]

고흥곤 장인이 제자와 함께 가야금을 조율하고 있다. [사진 이정은]

 
장인에 따르면 1980년부터 급격히 가야금의 수요가 급증했는데, 이는 본격적으로 학교에 가야금 전공하는 학생이 늘기 시작했을 때다. 이때부터 가야금 제작·판매 시장도 활성화했다. 1984년 스승이 돌아가신 이후 고 장인이 국가무형문화재의 맥을 잇고 있다.
 
장인의 이수자는 친아들이다. 고 장인의 아들은 가야금 제작의 발전을 위해 공대 재료공학과에 들어갔다. 시대 흐름에 맞게 소리의 핵심 재료를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가야금 재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도 가야금 제작을 돕고는 했다.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장인은 말한다. “가야금의 음색을 확대하는 마이크는 한계가 있죠. 요즘은 그래서 국립국악원 같은 공연장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만드는 가야금 자체에서 최고로 좋은 자연의 소리가 나오는 것을 꿈꿔요.” 예전의 가야금은 궁중이나 안방 악기였지만, 지금은 큰 공연장에서 관중 200명 정도를 앞에 두고 공연을 하니 소리가 더 크게 나와야 한다.
 
가야금 제작 단계에서 마지막 작업 단계다. 고흥곤 장인이 통을 제작하고 난 뒤 줄과 안족을 올려 조율하는 모습. [사진 이정은]

가야금 제작 단계에서 마지막 작업 단계다. 고흥곤 장인이 통을 제작하고 난 뒤 줄과 안족을 올려 조율하는 모습. [사진 이정은]

 
장인이 도제식으로 배울 때는 어려웠지만 요새는 가야금 제작에 때론 기계도 사용해 지난 시절보다는 기술적으로 훨씬 편해졌다. 그래서 가야금 제작을 취미로 배우다가 적성에 맞는다면 은퇴 이후 전통악기 제작 전문가가 되는 것을 장인은 지지한다. 앞으로 이 전통 기술의 맥을 잇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수요에 맞게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연이 점점 고갈되는 시대에 재료 수급은 가야금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가야금은 외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졌다.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음색이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 최고의 재료로 명품 소리를 내는 가야금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고흥곤 장인은 가야금과 고군분투하고 있다.
 
“독일과 같은 악기를 만드는 유럽의 마이스터 제도처럼 한국에도 제도가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국악의 소리가 세계적인 명품이 되듯 제작하는 사람의 가치 또한 더욱 인정받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은 채율 대표 je@chey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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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이정은 채율 대표 필진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 인간문화재 등 최고 기술의 장인이 만든 최고급 전통공예품을 제조하고 유통한다. 은퇴 후 전통공예를 전수할 문하생을 찾고 있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지만 은퇴 이후가 아니면 전통예술을 배울 기회는 흔치 않다. 지방 곳곳에 있는 인간문화재 등 장인을 소개하고, 은퇴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 재취업으로 연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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