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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sorry, 205"…잘못 온 문자 본 경찰, 대북사업가에 영장신청

중앙일보 2018.09.14 05:00
보안법 위반 근거로 제시된 영어 문자 정체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대북사업가 김모(46)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 당시 구속 필요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됐던 정체 불명의 ‘영어 문자’는 원룸 건물주가 파키스탄 세입자에게 보내려던 문자메시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건물주가 외국인 세입자에게 에어컨 수리 안내 영어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번호를 잘못 입력해 경찰의 수사 공용전화로 착신된 것이다. 
 
12일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경기 안산에 사는 파키스탄 출신 유학생 A씨는 지난 7월 세 들어 사는 원룸의 에어컨이 고장 나 수리를 요청했다. 이에 건물주가 A씨에게 ‘205호실. 7월 22일 에어컨 수리를 위해 4시쯤 집을 방문할 예정. 어제 방문하지 못해 유감’이라는 내용의 영어 문자를 보내면서 전화번호 하나를 잘못 써넣었다. 하필이면 이 번호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청 보안수사대 수사 공용전화였다. 이 전화는 평소 서랍에 넣어뒀다가 기록조회 등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해당 영어 문자가 와 있다는 사실을 경찰은 20일 넘게 확인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사업가 사건 문자메세지

대북사업가 사건 문자메세지

 
북한에서 개발한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국내에 납품하고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김씨를 수사 중이었던 경찰은 지난달 9일 김씨를 긴급체포한 뒤 아내에게 연락을 취하길 원하는 김씨에게 이 수사공용전화를 빌려줬다. 김씨가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 뒤 공용전화를 돌려받은 경찰은 그제야 이상한 영어 문자가 와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영어로 된 해당 문자를 김씨가 증거인멸을 지시하기 위해 암호를 사용해 보낸 것으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완전한 착오였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영어 문자를 보낸 건물주에게 재확인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건물주가 공범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재확인을 위해 연락을 취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경찰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다음날인 지난달 12일 서류 검토과정에서 문자를 착각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검찰에 알렸다. 이어 검찰과 논의한 뒤 김씨의 변호인을 불러 구속적부심(피의자의 구속이 과연 합당한지를 법원이 다시 판단하는 절차)을 안내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안산의 건물주 휴대전화에 해당 날짜에 해당 문자를 보낸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 감찰을 진행 중인 경찰청 청문감사관실도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변호인단 "엉터리 문자로 구속 부당"
이에 대해 김씨를 변호하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장경욱 변호사는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보낸 에어컨 수리 문자가 김씨 구속의 증거가 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며 "이미 김씨가 기소된 상황이라 구속적부심이 아닌 보석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은 검찰이 구속취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장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지난달 16일 서울청 보안수사3대를 증거조작 및 무고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오인 있었지만 국보법 위반은 분명" 
경찰 관계자는 "구속의 필요성을 소명하기 위한 자료 중 하나에서 오인이 있었던 것일 뿐, 김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며 "구속영장 신청 자료 가운데 증거인멸과 관련된 자료에 착각이 있었던 만큼 이는 즉시 바로 잡았고, 앞으로의 검찰 수사에도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사 과정에서의 작은 실수가 김씨의 범죄 전체에 면죄부를 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1990년대 후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산하 기구인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서총련)에서 투쟁국장을 지낸 김씨가 2007년 북한 정보기술(IT) 조직을 접하고 이들로부터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넘겨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국내 전산망을 마비시킬 수 있는 악성코드도 담겨있는데 경찰은 김씨가 2013년 이 프로그램을 군에 납품하려 한 것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주요 근거로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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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자메시지 오착신과 별도로 경찰이 고의로 구속영장청구 신청서에 이를 포함했는지는 증거조작 수사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씨 변호인단 측은 서울청 보안수사대 소속 B경위가 공용폰의 해당 문자를 자신의 개인폰으로 옮겨 보낸 뒤 원본이 아닌 복사본(캡처본)을 바탕으로 상부 보고와 영장신청이 진행됐다는 측면에서 의도적인 증거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찰 측은 "영어 해석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인터넷이 되는 개인 휴대전화로 문자를 옮겨 변역기를 돌렸던 것"이라며 "이후 공용전화는 증거 보존을 위해 보관 절차에 들어갔고 캡처본을 통해 보고가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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